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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블랙 2025 : 9인의 경험 설계자,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을 말하다

한이룸
이커머스
2024. 11. 28.
11월 27일 아침의 서울은 온통 새하얬어. <롱블랙 컨퍼런스 2025 : 경험과 공감> 둘째 날 행사가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창밖엔 한 폭의 그림이 펼쳐져 있었어. 눈을 이고 선 소나무와 봉은사 풍경이 마치 수묵화 같았지.
눈길을 지나, 롱블랙 피플이 아침 일찍부터 1000여 석의 컨퍼런스장을 가득 채웠어. 기다렸다는 듯 노트북과 태블릿, 메모장을 펼쳤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약 8시간의 강연이 이어지는 동안 자리를 떠난 사람은 거의 없었어.
오늘은 그 뜨거웠던 컨퍼런스 현장에서 아홉 명의 연사*가 들려준 이야기를 정리해 볼게.
나가사카 조 스키마타 건축 대표, 양태오 태오양스튜디오 대표, 안성재 모수 셰프, 홍성태 한양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이진민 아이소이 대표, 김성준 시몬스 부사장, 김지수 작가, 조승연 작가, 호소다 다카히로 TBWA 하쿠호도 CCO.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창밖으로 보이는 눈 덮인 봉은사. <롱블랙 컨퍼런스 2025 : 경험과 공감> 둘째 날은 갑작스레 찾아온 함박눈과 함께 시작했다. ⓒ롱블랙
Chapter 1.덜어냄이 만드는 몰입의 경험
롱블랙이 그동안 만난 대가들은 공통점을 가졌어. 한 분야를 오랜 시간 파고들다 보면, 무엇을 ‘덜어낼까’를 고민하게 된다는 거야.
컨퍼런스 첫 세션의 문을 연 세 연사도 딱 그랬어. 그들이 설계한 경험은 하나같이 ‘몰입감’이 높기로 유명해. 공간에 들어서고, 커피를 마시고, 손가락만 한 음식 하나를 먹어도 오래 기억에 남지.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낸 공간은, 사람들의 소통을 만듭니다.” 나가사카 조 스키마타 건축 대표가 던진 화두야. 그는 르 라보Le Labo와 이솝Aesop, 블루보틀Blue Bottle의 매장을 설계한 인물이야. 모두 미니멀하고 단순한 게 특징이지.
실제로 그의 건축사사무소에도 외벽과 문이 없어. 사무실 한편이 길과 연결된 공터처럼 보일 정도야. 술 취한 사람이 들어와 쉬기도, 동네 커플이 만남의 장소로 쓰기도 하지.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공간이 있으면 그 공간 안에서 보여지는 사람, 보는 사람이 자연스레 섞이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벽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작은 변화들이 생겨나요. 완벽하게 꽉 찬 공간이 아닌 덜어낸 공간은, 부족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공백은 그곳에 사는 사람 그리고 이웃들의 취향과 삶이 채울 겁니다. 전 그런 작업이 굉장히 즐거워요.”_나가사카 조 스키마타 건축 대표

컨퍼런스 둘째 날의 문을 연 나가사카 조 스키마타 건축 대표. 그는 건축물을 디자인할 때 채움이 아닌 덜어냄을 먼저 생각한다고 말했다. ⓒ롱블랙
양태오 태오양스튜디오 대표도 덜어냄의 매력에 공감해. 국립경주박물관과 망향휴게소, 블루보틀 명동점 등 다양한 공간에 ‘한국적인 분위기’를 입힌 그는 덜어냄이 한국의 미학과도 맞닿아 있다고 했지. 그중 하나가 ‘무미無美’야. 다양한 미를 경험해 본 후 꾸밈과 장식의 덧없음을 깨닫는 상태를 말해.
“무미는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 본질과 단순함을 찾는 한국적 미니멀리즘이에요. 우리 선조들은, 자연은 단순하고 인간은 복잡하다고 생각했어요. 봄에 싹 틔우고 가을에 열매 맺으며 성장하는 자연에서 아름다움과 우주의 이치를 깨달았죠. 그렇기에 인간을 복잡하게 만드는 욕심을 버리고 단순함을 취하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라 생각했어요.”_양태오 태오양스튜디오 대표

양태오 태오양스튜디오 대표. 그의 디자인 철학인 ‘무미’는 ‘무기교의 미’이자, ‘무작위의 미’다. 그는 공간을 디자인할 때 "의미 없는 장식을 최소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롱블랙
파인다이닝의 세계에서도 ‘덜어냄’은 중요해.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모수를 운영하는 안성재 셰프도, 음식을 만들 땐 ‘무엇을 덜어낼지’ 고민한다고 말했어.
“세상엔 재료가 너무나도 많고, 내가 받은 영감을 모두 다 표현할 수도 없어요. 창의성은 무한한 자유가 아닌 제약에서 나오죠. 내가 정말 좋다고 생각해서 손님에게 전하려는 것 하나를 기준으로 잡고, 그걸 살리기 위해 ‘무엇을 덜어낼까’를 고민해야 해요.”_안성재 모수 셰프
불필요한 걸 덜어낸다면, ‘꼭 필요한 것’을 잘 담는 일도 중요하겠지? 모수의 대표 요리인 ‘전복 타코’가 딱 그래. 한입 크기의 음식에, 안성재 셰프가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어린 시절을 담았지.
“제가 어린 시절 맛있게 먹은 음식이 타코였어요. 여기에 한국을 표현하기 가장 좋은 재료인 ‘감태’를 감쌌죠. 마지막으로 손님이 접시에 놓인 라임을 직접 짜 타코에 뿌리는 경험까지 유도해, ‘나는 여기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겠구나’하는 기대감을 높일 수 있죠.”_안성재 모수 셰프
치열한 고민 끝에 덜어내고 남은 것은, 끝내 ‘오리지널’이 돼. 안성재 셰프의 요리는 전통 한식이나 일식, 미국식도 아니지만 사람들이 “장르가 안성재”라고 부르는 이유야. 그가 경험한 ‘가장 개인적인 기억’을 결과물로 만들어냈거든.
“익숙해 보이는 전통도 누군가 만든 거예요. 치킨이든 부대찌개든 어디선가, 누군가의 개인적인 일 때문에 만들어진 음식이죠. 이게 널리 퍼지고, 문화가 되고, 전통이 된 거예요.”_안성재 모수 셰프

강연 중인 안성재 모수 셰프. 그는 “파인다이닝은 개인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경험한 것 중 가장 좋다고 생각한 것을 정제해 손님에게 전한다는 뜻이다. ⓒ롱블랙
Chapter 2. 트렌드와 브랜드 사이 균형잡기
개인적인 경험을 세상에 제안한다고, 누구나 사랑받을 순 없겠지. 어떻게 하면 나만의 감각이 세상과 만날 수 있을까?
15년 차 화장품 브랜드 ‘아이소이’를 이끄는 이진민 대표는, 지금도 트렌드와 브랜드 사이에서 줄다리기하고 있대. 트렌드를 놓치면 관심이 떠나고, 본질을 놓치면 돈이 떠난단 거야.
“기업이 10년을 넘기니 올드해 보였어요. 2030 고객도 줄었죠. 큰일 났다, 젊은 사람들이 우리 싫어하나 보다. 그 생각하며 트렌드를 잡기로 했어요. 올해 6월에 캐릭터 ‘슈’로 마케팅 캠페인을 벌였죠. 2000년대 유행한 플래시 게임의 캐릭터라, 젊은 분들이 기억할 것 같았거든요.”_이진민 아이소이 대표
어떻게 됐을까? 캠페인 공개 24시간 만에 무려 3만 명이 아이소이 홈페이지를 찾아 가입했어. 그런데 정작 매출이 오르질 않더래. 트렌드를 따라간다고, 꼭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단 걸 깨달았지.
그렇다고 실패한 캠페인일까? 이 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 소비자가 브랜드에 공감하고, 연결될 ‘단서’를 선물한 거니까. 이때 맺은 인연은 언젠가 꽃을 피울 거라 보는 거야.
트렌드 따라잡기가 단발성 이벤트라면, ‘브랜드의 본질’을 바로잡는 일은 늘 필요해. 이 대표는 트렌드보다 반 박자 느리게 내놓은 니들샷* 제품을 예로 들었지.
세럼 속에 미세침을 넣어 화장품 흡수율을 높인 제품.
“올 초 화장품 업계에선 니들샷이 굉장한 트렌드였어요. 피부에 스크래치를 내서 영양분을 침투시키니 효과가 좋잖아요. 저도 써봤는데 너무 따가운 거예요. 그런데 신상 팀에선 ‘우리도 빨리 나오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해요. 그런데도 훨씬 늦은 9월에 내놨죠.”_이진민 아이소이 대표
왜 그랬을까? 이진민 대표는 아이소이의 원칙 중 하나를 말했어. ‘유해성이 의심되는 성분은 넣지 말아야 한다’는 것. 제품을 빠르게 만드는 대신, 개발에 매달린 건 그래서야.
“‘그냥 만들면 우리답지 않아.’ 이런 생각을 밀고 나갔어요. 따갑게 만드는 성분을 빼고, 더 부드럽게 진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덕분에 지금은 내놓으면 품절일 만큼 잘 팔리는 중이에요.”_이진민 아이소이 대표
잠깐의 매출 상승 때문에 트렌드에 매달리지 않는 것.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관심사에 ‘호응’할 줄 아는 것. 이 대표는 지금도 트렌드와 브랜드 사이에서 줄다리기 중이야. 그러는 사이 15년의 세월을 버텨낼 수 있었지.

이진민 아이소이 대표는 제일기획의 최연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한 적 있다. 2000년 “선영아, 사랑해”라는 마이클럽의 카피를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롱블랙
Chapter 3.불안에 공감할 때 기회가 열린다
트렌드 읽는 일은 사업가나 마케터에겐 늘 숙제 같아. 너무 빠르게 바뀌다 보니 헤맬 때도 많고.
말을 살짝 바꿔보면 어떨까? 트렌드가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에 공감하는가’로 말야. 보다 근원적인 감정을 파고들어 보는 거야.
불안감. 홍성태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명예교수가 짚은 ‘이 시대의 감정’이야.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우린 뭐라도 놓치지 않았는지 불안해한단 거야.
“변화에 대한 불안, 소외당하는 것에 대한 불안, 유행에 뒤처지는 것에 대한 불안… 우린 알게 모르게 굉장히 많은 불안과 두려움을 품고 살아요. 성공한 많은 비즈니스는 우리의 불안을 ‘해결’해 주는 대가로 돈을 가져가죠.”_홍성태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명예교수
그래서 홍 교수는 말해. 우리가 품은 ‘불안’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찾으라고.
“부정적 감정은 나쁘고, 긍정적 감정은 좋다는 것도 일종의 고정관념 같아요. 많은 마케팅 캠페인도 ‘부정적 감정’을 건드린 뒤, 해결할 방법을 제안해 주거든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당연하다 생각하지 말고, 잘 활용해 보세요.”_홍성태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명예교수

‘뒤처지는 것에 대한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홍성태 교수. 그는 “공감도 감정이며, 모든 감정의 근원엔 불안이 있기에, 마음을 움직이려면 불안을 건드리고, 공감하고, 해결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롱블랙
자신의 불안을 인정하고, 해소할 방법을 찾아 나선 사람도 있어. 2300만 조회수의 인터뷰 시리즈 ‘인터스텔라’를 만든 김지수 작가야. 그는 스스로 “인터뷰를 통해 구원받았다”고 말해.
“저는 의존적인 사람이라 혼자 살 수 없었고, 몰라서 물어야 했고, 그래서 인터뷰어가 됐어요. 전 어린 시절 고통과 결핍, 수난을 겪었지만, 그 ‘오염 서사’를 붙잡고 있으면 오염된 구술자가 되는 거예요. 반대로 나를 구원할 만한 이야기와 사람을 찾아 나선다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게 되죠. 제겐 그 방법이 인터뷰였어요.”_김지수 작가
이병헌부터 류승룡, 송강호까지. 초창기 김 작가는 유명 배우 중심으로 인터뷰했어. 매력적이지만, 섭외가 어렵고 힘든 일도 많았지.
그래서 인터뷰이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어. 인터뷰이가 누구든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라는 보편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지. 그 인터뷰이를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그렇게 쌓은 인터뷰를 돌이켜 보니 “시대가 공감하는 키워드”가 보이더래.
“세상은 복잡한 정보로 넘쳐나고 늘 바쁜데요. 그래서 쉽게 이해되는 것을 원해요. 그래서 시대의 신호를 ‘꽂히는 언어’로 바꾸는 일이 중요해요. 마치 누가 어떤 제품을 살 때 좌표 찍어주듯, ‘당신은 어디에 있다’고 꽂히는 언어를 말해주는 거죠.”_김지수 작가
지금 김 작가의 눈에 보이는 화두는 ‘의젓한 어른’이야. 개인의 욕망과 취향 대신 ‘사회에서의 역할과 의미’를 찾는 사람이지. “타인에게 의젓한 존재가 되어라”고 말한 김기석 목사, “그럴 수 있어”라며 툭툭 위로를 건네는 가수 양희은과의 인터뷰에서 마주친 키워드야.
“의젓한 사람들의 시대가 열렸다고 생각해요. 내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란 걸 깨닫고, 자기 운값을 함께 나누려는 사람들이죠.”_김지수 작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와 질문'을 주제로 강연 중인 김지수 작가. 그는 오랜 인터뷰 경험을 통해 ‘시대의 공감대’가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었다. ⓒ롱블랙
Chapter 4.얼마나 버는가보다, ‘어떻게 버는가’에 공감한다
사람들이 무엇에 공감하는지 알려면, ‘무엇을 사는지’ 보면 돼. 과거엔 높은 품질, 취향에 맞는 디자인이 선택 기준이었지. 지금은 달라. 제품을 만든 개인이나 회사의 ‘가치관과 태도’가 매력적일 때, 우린 소비자를 넘어 ‘팬’이 되기도 해.
김성준 시몬스 부사장은 이런 흐름을 가장 기민하게 읽는 인물 중 한 명이야.
“예전엔 철저히 취향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이야기’가 소비의 기준이 돼요. SNS가 대중화되면서 소비자가 브랜드의 여정을 따라가고, 의견을 보태고, 응원할 수 있게 됐거든요.”_김성준 시몬스 부사장
하지만 이야기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냐. 긴 역사를 가졌거나, 쉬지 않고 이야길 만들거나. 둘 중 하나는 채워야 하지. 홍성태 교수는 말해. 오래된 브랜드와 요즘 브랜드가 서로 어울리는 것도 그래서라고. 서로의 결점을 채워 ‘공감 서사’를 만들어야 하니까.
“모든 오래된 브랜드는 ‘그러나But’를 갖고 있어요. 모나카로 유명한 태극당, 참 맛있죠. ‘그러나’ 오래된 이미지를 가졌어요. 왕십리의 노포는 언제 가도 정겨워요. ‘그러나’ 누군갈 데리고 가기에 선뜻 내키지 않죠. 위생이 아쉬우니까요.
헤리티지를 가졌다고 이야기가 완성되는 건 아냐. 김성준 부사장은 브랜드가 스스로를 100% 정의하면 안 된다고 말해.
“브랜드는 정의당할 수 있어야 해요. 30%만 브랜드를 규정해 주면, 나머지 70%는 소비자와 서로 이야길 나누며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업 입장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안 됩니다. 유연하게 시류를 타면서, 소비자의 피드백을 반영해야 하죠.”_김성준 시몬스 부사장
소비자의 피드백을 반영한다는 건, 고객 문의에 ‘적절한 답변’을 보내는 게 아냐.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제대로 이행하는 일. 다시 말해 ‘과정’을 보여줘야 하지.
“예컨대 기업에 부정적인 이슈가 납니다. 매스미디어 시절엔 그 이슈가 지나가길 기다렸어요. ‘이슈를 이슈로 덮는다’는 한 영화 대사처럼요. 요즘은 기업에 이슈가 생기면 곧바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해요. 개선을 약속하고, 그 과정을 보여줘야 하죠. 만약 제 브랜드에서 실수가 나오면, 저는 ‘개선’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업로드할 것 같아요.”_김성준 시몬스 부사장

김성준 시몬스 부사장. 그는 30분의 강연 동안, 그가 경험으로 깨달은 ‘브랜드가 소비자와 대화하고 공감하는 법’을 전했다. ⓒ롱블랙
Chapter 5.더 널리 공감받는 기술, 스토리텔링
공감을 만들 때 중요한 조건이 있어. 타인이 내 이야기에 귀를 열어야 한다는 것!
당장 내 친구의 공감을 사는 건 쉬워. 반대로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이라면? 장벽이 느껴질 거야. 나고 자란 배경이나 문화가 다르니까.
이 장벽을 허무는 게, 바로 ‘스토리텔링’이야. 스토리텔링을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은, 친구 몇 명이 아니라 ‘내가 잘 모르는 100만 명’과도 이어질 수 있지. 유튜브 181만 구독자를 가진 스토리텔러 조승연이 산 증인이야.
“저는 유럽 역사가 너무 좋아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구독자가 5만 명일 때는 너무 즐거워요.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만 들어오니까요. 그런데 10만 명을 넘기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우리나라에도 힘든 일 많은데, 왜 남의 나라 이야길 하냐’는 식의 반응이 생겨났죠.”_조승연 작가
조 작가는 깨달았어. 무슨 일이든 규모가 커지면, 가치관이 안 맞는 사람과 만나게 된다고. 이때 불쾌한 기분에 빠지는 사람은 더 큰 성공을 만들지 못한단 거야.
“내 카테고리가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뻗어나갈 때, 큰 가치를 만들 수 있어요. 가령 내가 스마트폰 사업을 시작해요. 제품을 ‘스마트폰이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만 팔면, 거기까지가 한계예요. 더 큰 시장으로 나가려면 ‘내가 왜 스마트폰 사야 해?’라고 의심하는 사람을 설득해야죠.”_조승연 작가
더 큰 시장으로 나가는 역량, 조 작가는 ‘스토리텔링’이 그 무기라고 생각해. 스토리엔 정답이 없기 때문이야. 나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도, 내 이야기가 ‘왜’ 중요한지 설득한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단 거지.
“지금까지 한국 사람은 애써 공감대를 만들 필요가 없었어요. 획일화된 가치관과 문화를 공유했으니까요. 어른들이 좋아하시는 말도 있잖아요. ‘긴말이 필요 없어’, ‘이심전심이야’, ‘척하면 척이지’. 이런 걸 하이 컨텍스트 커뮤니케이션high context communication*이라고 해요. ‘왜’는 건너 뛰고 ‘무엇을’, ‘어떻게’만 이야기하면 되니까요. 한국이 빠르게 성장한 비결이기도 하죠.”*문화나 사회적 배경이 서로 일치하는 사람끼리의 의사소통 방식. 주로 간접적인 언어를 사용한다._조승연 작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해. ‘왜’를 설득할 줄 아는 사람이, 앞으로 의사결정의 ‘주도권’을 가져갈 거란 거야.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늘고 있으니까. 그러면서 좋은 스토리텔러가 되는 방법 두 가지를 알려줬어.
“내가 무시당한다는 기분에 대한 ‘민감성’을 낮춰야, 좋은 스토리텔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치가 다른 사람과 만날 때 ‘무시당한다’는 기분을 가장 먼저 느끼거든요.
그리고 조 작가는 강조했어. 3P 하지 않기. 각각 Preach(설교), Prosecute(고발), Politicing(정치질)을 뜻해.
“‘내가 맞다’며 설교하고, ‘네가 잘못했다’며 비판하고, ‘너 쟤랑 친해?’라며 정치질하는 태도를 버려야 해요. 그러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해요. 그래야 공감하지 않는 사람과 ‘왜’로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겁니다. 끝내 여러분은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스토리텔러가 될 수 있을 거예요.”_조승연 작가

181만 유튜브 구독자를 가진 조승연 작가. 그는 자신의 유튜브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적은 역사와 인문학을 재밌게 풀어내는 콘텐츠를 만들어왔다. ⓒ롱블랙
Chapter 6.질문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라
공감으로 타인을 이끌려면, 말하는 기술만큼 ‘질문하는 기술’도 중요해. 좋은 질문은 상대방의 마음을 열고, 나아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거든. ‘정답’보다 ‘이야기’가 많은 세상이 더 성숙할 테고.
30년 동안 ‘질문하는 사람’으로 살아온 김지수 작가는 말해. 누군가를 인터뷰할 땐, ‘좋은 질문’을 애써 고민하지 않았다고. 복잡한 질문보다 소박한 질문, 천진한 질문이 필요하단 거야.
“질문이 좋아야 한다는 건 착각이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궁금한 마음’을 정중하고 천진난만하게 표현하는 자세예요. ‘요즘 기분이 어떠세요?’,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어떻게 그래요?’처럼요.”_김지수 작가
질문이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때, 김 작가는 우리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간다고 말했어.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은, 우리를 전혀 다른 세계로 안내해요. 종착지가 없는 ‘정처 없음’이 데려다주는 완전한 미지의 세계로요.”_김지수 작가
호소다 다카히로 TBWA 하쿠호도 CCO도 질문의 잠재력에 공감해. 그는 질문을 조금만 바꿔도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
“질문은 하나의 틀이에요. 모든 답은 그 틀 안에서 태어나죠. 만약 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땐, 질문을 바꿔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전 이걸 리프레이밍reframing이라고 불러요.”_호소다 다카히로 TBWA 하쿠호도 CCO
리프레이밍할 때 중요한 건, 질문을 명사형에서 동사형으로 바꿔보는 거야. 명사는 고정관념을 만들기 쉽거든.
“우린 보통 명사형으로 생각하고 질문합니다. 새로운 스마트폰은, 새로운 차는 어때야 할지 고민하죠. 하지만 이런 질문으론 창의적인 결과가 나올 수 없습니다. 가령 학생들에게 ‘새로운 스쿨버스’를 만들자고 하면 평범한 답이 나와요. 그런데 ‘새로운 통학 방법’을 질문했더니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죠. 로켓이나 새, 이동하는 놀이터까지요.”_호소다 다카히로 TBWA 하쿠호도 CCO

롱블랙 컨퍼런스 강연을 위해 일본에서 온 호소다 다카히로 TBWA 하쿠호도 CCO. 책 『컨셉 수업』의 저자인 그는, “좋은 컨셉과 아이디어를 내는 힘은 좋은 질문에 있다”고 말했다. ⓒ롱블랙
좋은 질문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지자, 한 청중이 Q&A 시간에 이런 질문을 던졌어.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자기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애초에 안 들으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이 장벽을 넘어설 방법은 없을까요?” 조승연 작가가 질문에 대답했어.
“저는 SNS가 토론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특정한 목적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설득당할 가능성은 0.1% 정도죠. 스토리텔링은 충분한 길이의 대화를 풀 공간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오프라인 모임이나, 이런 롱블랙 컨퍼런스 같은 곳에서요.

강연 후 이어진 QnA 시간에 연사들이 롱블랙 피플의 질문을 받고 있다. 왼쪽부터 조승연 작가, 김지수 작가, 호소다 다카히로 CCO, 통역을 맡은 이승민 한국리노베링 대표, 모더레이터를 맡은 김진영 롱블랙 에디터. ⓒ롱블랙
Chapter 7.마치며 : 영감의 원천을 말하다
사람들이 경험하고, 공감하고 싶은 대상은 계속 변하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 시대가 반응하는 이야기를 꾸준히 제안할 수 있을까? 롱블랙 피플이 경험과 공감을 이끄는 연사들에게 ‘영감의 원천’을 물었어.
일상에서 영감을 찾는다는 연사들이 많았어. ‘내가 좋다고 생각한 순간’을 쌓아뒀다,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꺼낸단 거야.
“멀리 가서 유명 건축물을 본다거나 하는 게 제 스타일은 아니고요. 전철 타고 가다가 ‘이 스테인리스 손잡이 멋있네’ 혹은 잠시 들른 가게에서 ‘검은 테이블 멋있다’. 이런 식으로 일상 속 작위적이지 않은 모습에서 영감을 얻으려고 합니다.”_나가사카 조 스키마타 건축 대표
안성재 셰프는 커리어 초반에는 비주얼에 많이 영감을 받았대. 라이온 킹 연극의 화려한 색감에 영감을 받아, 접시 위에 식재료로 그 색감을 되살리기도 했지.
“삶 속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감정을 간직하려 해요.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비쳐드는 순간, 오늘 같은 경우엔 첫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느낌. 이걸 재해석하는 게 아니라, 이런 감정을 내 마음속과 머릿속에 지니고 있다가 음식을 만들 때 같이 풀어놓는 거예요.
의외지만 재밌는 답도 있었어. 양태오 디자이너는 영감의 원천이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이라고 하더라고.
“제 영감은 저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옵니다. 저는 남은 잘 믿는데 저는 못 믿어요. ‘내가 한 게 맞나?’ 본질적 질문을 정말 엄청나게 하며 저 자신과 함께 일하는 스튜디오 직원들도 괴롭히죠. 다시 질문하고, 하고 또 해요. 그 답을 찾기 위해 봤던 책, 공간, 영화 그 모든 것이 지나고 보면 영감이었더라고요.”_양태오 태오양스튜디오 대표
이진민 아이소이 대표는 “영감이 솟아나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말했어. 본인의 아이디어는 모두 “농민적 근면성”, 다시 말해 성실함의 결과물일 뿐이라고 했지.
“저는 마케팅할 때 잘한다고 들어본 적 없어요. 열심히만 했던 사람이에요. 선배들이 “아휴 저거 그래, 열심히는 한다”하고 얘기했죠. 그래서 제 별명이 ‘농민적 근면성’이었어요.

코엑스 오디토리움의 강연장을 가득 채운 롱블랙 피플. 11월 26일과 27일 이틀에 걸쳐 2000명이 넘는 롱블랙 피플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리를 지켰다. ⓒ롱블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