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컨텐츠
몽벨, 유행을 거부한 50년, 일본의 파타고니아가 일하는 방법

한이룸
이커머스
2025. 11. 4.
몽벨 : ‘유행’을 거부한 50년, 일본의 파타고니아가 일하는 방법
날이 갑자기 추워졌어요. 경량 패딩을 꺼내입은 사람들이 제법 보여요. 특히 이 브랜드가 요즘 눈에 띄는데요, 일본의 아웃도어 브랜드인 ‘몽벨Montbell’ 입니다. ‘일본의 파타고니아’라고 불리죠.
사실 본국에서 몽벨은 중년들의 아웃도어 브랜드예요. ‘몽벨 오지상(おじさん, 아저씨)’이라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2030 세대가 주요 소비자예요. 모델 출신 방송인 주우재와 블랙핑크의 제니도 몽벨 제품을 착용해 화제가 됐습니다.
흥미로운 건, 지난 50년간 몽벨은 딱히 변한 게 없다는 거예요. 디자인이나 브랜딩이나. 여전히 1970년대 디자인 그대로 출시하는 옷들이 많아요.
심지어 창업자인 타츠노 이사무辰野 勇는 “몽벨은 패션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대체 몽벨의 무엇이 한국 젊은이들을 빠져들게 한 걸까요?
Chapter 1.두려움을 견디고 맞이한 아침의 감동
몽벨의 창업자 타츠노는 산악인입니다. 산을 정말 사랑해요. 그가 쓴 에세이에는 그 마음이 온전히 담겨 있어요.
“중학생 시절, 자주 산에 올랐습니다. 매형의 낡은 배낭, 아버지가 군대에서 썼던 도시락통, 헌 담요를 꿰매 만든 침낭을 챙겨 혼자 산으로 들어갔어요. 처음엔 해가 지고 인적이 끊기면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밤이 끝나길 기다렸어요. 그러나 날이 밝으면 불안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다시 힘이 솟았습니다. 두려움을 견디고 맞이한 아침은 눈부시게 감동적이었습니다.”_타츠노 이사무 몽벨 대표, 저서 『자연 그대로 살다(自然に生きる)』에서
처음엔 체력이 약해서 산을 타기 시작했다고 해요. 어릴 적 몸이 약했던 탓에 학교에서 산으로 소풍을 가는 등의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거든요. 아쉬움이 컸던 걸까요? 점점 산에 대한 동경이 생겨났어요. 자꾸만 혼자서 산에 오르게 됐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타츠노는 결심했어요. ‘성인이 되면 반드시 알프스의 아이거 북벽*을 오르겠다!’
마테호른 등 알프스의 6대 북벽 중 하나이다. 그 높이가 3967m로, 6대 북벽 중 세 번째로 높다.
타츠노는 정말로 꿈을 이뤘어요. 21살 나이에 아이거 북벽을 오르며, 아이거 북벽을 오른 두 번째 일본인이자 세계 최연소 등반가라는 기록을 써냈어요. 학생 시절 내내 암벽 등반을 연습하고, 졸업 후엔 등산용품점에서 일하며 돈을 모은 덕분이었어요.
그런 타츠노에겐 또 하나의 목표가 있었어요. ‘28살이 되면 내 사업을 하자’. 산과 관련한 사업을 직접 꾸려보고 싶었던 거예요. 그는 한 섬유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처럼 사업 아이템을 떠올렸죠.
“신소재 섬유의 출시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섬유로 등산 문화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한 건 저에게 행운이었어요.”
1975년. 타츠노는 어머니에게 빌린 자본금 200만엔(약 1800만원)으로 몽벨을 설립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나이 28살이었어요.

타츠노 이사무(오른쪽)는 당시 아이거 북벽을 오른 세계 최연소 등반가였다. 그는 28살에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의 ‘몽벨’을 설립했다. ⓒmontbell
Chapter 2.제품 : 쓸모가 미감을 창조한다
일본 안에서 몽벨의 존재감을 처음 알린 건 ‘침낭’이었어요. 1976년 출시한 ‘다크론·슬리핑백’. 몽벨 최초의 히트상품입니다. 생긴 건 보통의 침낭이에요. 하지만 기능은 특별합니다. 미국의 화학섬유회사 듀폰DuPont이 제작한 신소재 ‘홀로필Hollofil®’*을 사용했어요.
속이 비어 있는 폴리에스터 섬유 구조로, 무게가 가볍고 물에 젖어도 보온성이 유지되는 것이 특징이다.
당시 일본의 침낭은 부피가 컸고 그 안에 든 화학 섬유 솜도 무거웠어요. 휴대가 불편했죠. 그렇다고 가벼운 구스다운(거위털)을 사용하면 가격이 비싸졌고요. 가볍고도 기능성 좋은 침낭을 고민하던 타츠노. 하루는 섬유 회사 시절 선배로부터 ‘홀로필’이란 신소재에 대해 듣게 됩니다.
곧장 재직 시절 알고 있던 연락처를 모조리 뒤져 듀폰사에 연락했어요. 마침내 200km가량의 홀로필 원단을 구매했죠. 하지만 무명에 가까웠던 몽벨의 주문을 받아주는 공장을 찾기 어려웠어요. 타츠노가 일본 전역으로 이불 공장을 찾아다닌 끝에, 딱 한 군데에서 샘플을 만들어 줬습니다.
그 프로토타입 침낭을 매고, 타츠노는 몇 번이고 산을 올랐어요. 기능을 테스트한 겁니다. 타츠노가 기존에 쓰던 침낭은 미군용 중고품이었어요. 물에 젖으면 무거워지고 보온성이 떨어졌죠. 하지만 홀로필로 만든 침낭은 젖어도 따뜻했습니다.
몽벨의 이 슬리핑백은 출시 직후 일본 산악인들의 필수템이 됐어요. 몽벨이라는 이름도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산악인에게 정말로 필요한 장비를 만드는 곳’으로.
실제 타츠노는 그 누구보다 산악 장비의 중요성을 잘 압니다. 19살 무렵, 저렴한 장갑을 끼고 등반하다가 손가락에 동상을 입었거든요. 그때 다친 손가락이 여전히 구부러진 채입니다.
때문에 타츠노는 단호하게 말하죠. “몽벨은 패션이 아니”라고.
“등산 장비는 옷이라기보다 도구입니다. 보온성과 방수성이 핵심이기 때문에 ‘패션’이라고 부르기 어렵죠. 하지만 패션이 아니라고 해서 외형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 기능을 밀도 있게 탐구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돼요. 가령, 스티브 잡스의 애플 역시 단순함을 끝까지 추구하다 보니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이 됐죠.”_타츠노 이사무, 2025년 내셔널지오그래픽 일본 인터뷰에서

당시 제작된 몽벨의 침낭. 타츠노는 듀폰사에 전화해 신소재였던 ‘홀로필’ 원단을 샀다. 타츠노는 “기능을 밀도 있게 탐구하면 제품은 아름다워진다”고 말했다. ⓒmontbell
Chapter 3.‘모두에게’ 말고, ‘누군가에겐’ 필요한 것
산악인이라면 몽벨 매장을 지나칠 수 없는 이유가 또 있어요. 등산과 관련한 것이란 전제하에, ‘별의별 아이템’이 다 있기 때문이죠. 기타를 넣을 수 있는 ‘악기용 레인 커버’, 화장실로 쓸 수 있는 휴대용 ‘변기 키트’, 야외에서 붓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야외 붓 세트’까지.
솔직히 야외 붓 세트를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매할까 싶습니다. 그러나 몽벨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느냐가 아닙니다. 이 야외 붓세트가 누군가에겐 정말로 필요한 산악 장비라는 확신으로 제품을 만들죠. 어떤 이는 정상을 찍으러 등반하지만, 또 어떤 이에겐 산 중턱에 앉아 가만히 주변 경관을 그리는 여유로움이 산을 오르는 이유일 테니까요.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산악 장비를 만든다는 철학입니다.
그래서 몽벨은 산악 마니아가 대부분인 직원들의 제품 아이디어를 수집해요. 필요한 아이템의 개발을 요청하는 ‘리퀘스트 시트’가 사내에 있어요. 반년마다 아이디어를 취합하죠. 진짜로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을 적기 때문에, 시트에 적힌 요구는 상당히 까다롭고 세세합니다. 직접 사용자의 목소리를 내는 거예요.
“무엇이 팔리고, 어떤 게 유행하는가. 이런 마케팅적 수법을 믿지 않습니다. ‘이런 게 있으면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제품을 만들 때, 소수라도 공감하는 사람이 있고, 그 공감이 커지면 자연스레 히트되는 거죠. (...) ‘만들고 싶은 제품의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직원들에게 호소합니다. 매년 3000~4000개의 아이디어가 직원들로부터 들려오죠.”_타츠노 이사무, 2022년 AAR 재팬 인터뷰에
타츠노의 말대로, 몽벨은 한 번도 유행을 의식한 적이 없어요. 인기 제품인 경량 패딩 ‘수페리어 다운 재킷’ 역시, 1997년 출시된 초기 모델 ‘다운 이너 재킷’과 디자인이 크게 다르지 않죠.
젊은 세대가 몽벨에 끌리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유행 없음’ 때문입니다.
“몽벨은 정말 변하지 않아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1970년대 디자인이 지금도 똑같이 출시되죠. 그러니 ‘예쁘다’, ‘안 예쁘다’ 할 게 없어요. 이러한 ‘한결같음’이 요즘처럼 영혼 없는 유행은 기피하는 시대에, 가장 필요한 디자인이 아닐까요?”_이정민 트렌드506 대표, 롱블랙 인터뷰에서
덕분에 고어텍스 트렌드가 슬슬 사그라드는 지금, 오히려 몽벨은 스테디셀러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몽벨은 2023년 연 매출 약 1250억엔(약 1조 1600억원)에서 2024년 약 1640억엔(약 1조 5000억원)으로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요. 파도에 올라타려던 브랜드들은 파도와 함께 휩쓸려 가지만, 중심을 잃지 않은 브랜드는 물결이 걷힌 뒤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죠.

몽벨의 야외 붓 세트. 소수를 위한 제품이라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만드는 게 몽벨의 원칙이다. ‘유행 없음’은 점차 몽벨의 정체성이 됐다. ⓒmontbell
Chapter 4.돈을 보지 않는 경영
몽벨의 꾸준한 인기 요인으로 가성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등산화만 봐도 아크테릭스는 20~30만원대인 반면, 몽벨은 10만~20만원대예요. 나일론 백이나 레인부츠는 10만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어요. 반사경 스티커 같은 소품은 1만원도 안 합니다.
몽벨이 가성비 브랜드가 된 이유는 단순하되 절실합니다. 창업자인 타츠노 본인이 젊은 산악인들의 고달픔을 직접 겪어 봤기 때문이에요.
“저렴한 가격 정책의 근본에는 저의 젊은 산악인 시절의 기억이 있어요. 그땐 정말 돈이 없었거든요. 나도 동료도, 비싼 유럽제 장비를 선뜻 살 수 없었어요. 그게 몸에 밴 탓에, 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능한 한 쉽게 살 수 있는 가격으로 물건을 내놓고 싶어요. 창업 때부터 이어온 몽벨의 기본 컨셉입니다.”_타츠노 이사무, 2023년 BE-PAL 인터뷰에서
실제로 몽벨은 1995년 다른 산악 브랜드보다 30% 저렴하게 팔기 시작했어요. 일본에서 제조사가 직영 매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도 1990년대, 몽벨이 시초였습니다. 유통 단계를 줄여 가격을 낮춘 겁니다.
타츠노는 이를 ‘돈을 보지 않는 경영’이라 말합니다. 돈 버는 일은 중요하지만, 돈을 최우선으로 보고 의사결정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가령, 몽벨은 1980년부터 미국 파타고니아 제품을 수입 판매하는 일본 총판 역할을 해왔어요. 하지만 1987년 이 제휴를 포기합니다. 파타고니아 매출이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했는데도 불구하고요.
파타고니아로 버는 돈이 늘수록, 몽벨의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아이러니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그해 몽벨 자사 제품의 매출은 두 배 넘게 성장했어요.
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지금도, 타츠노는 여전히 ‘돈을 보지 않는 경영’을 중시해요.
“제가 몽벨을 만든 목적은 돈이 아닙니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죠. 이 믿음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 오늘날 기업 중에는 ‘매출’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 많습니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무엇을 할까’가 중요하지 않게 돼요. 몽벨은 매출이나 이익을 위해 회사를 키우는 게 아닙니다.”_타츠노 이사무, 2025년 경제계 웹 인터뷰에서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왼쪽)와 타츠노(오른쪽). 파타고니아 매출이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했지만, ‘돈을 보지 않는 경영’을 추구했던 몽벨은 1987년 파타고니아와의 제휴를 포기했다. ⓒmontbell
Chapter 5.세상을 돕기 위해 ‘구호대’까지 만들다
젊은 산악인들의 얇은 지갑, 재해로 망가지는 자연. 몽벨이 사업 못지않게 신경 쓰는 주제입니다.
“몽벨이 소중히 하고 있는 것은, 주주가 아니고 사원, 그리고 그 앞에 있는 고객입니다. 이익 추구가 목적이 아니고, 사원이나 고객, 그리고 사회 전체에 있어서 아늑한 장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죠. 사업은 이를 위한 수단일 뿐이고요. (...)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깨닫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_타츠노 이사무, 2025년 경제계 웹 인터뷰에서
1995년 창업자인 타츠노를 필두로 아웃도어 업계인들이 모여 ‘아웃도어 구호대’를 만들었습니다. 1995년 1월, 한신·아와지 지역에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였어요.
“당시 지인에서 전화가 왔어요. ‘지붕이 무너졌으니 비닐 덮개가 필요하다’고. 제가 곧장 차를 몰고 현장으로 갔는데, 고베 시내가 완전히 변해 있었어요. 무너진 주택들, 가스 냄새, 폭격을 맞은 것만 같은 풍경. 그 장면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거리에는 집을 잃은 사람들이 잔해를 태워 추위를 막고 있었어요.”_타츠노 이사무, 2025년 경제계 웹 인터뷰에서
타츠노는 동종업계 사람들에게 무작정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구호 활동을 하자”고. 몽벨의 직원들 역시 업무를 중단했어요. 침낭과 텐트를 재해 지역으로 운반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시작된 아웃도어 구호대는 지금까지 활동 중입니다. 2024년 일어난 노토반도 지진 때도 간이 화장실을 만들고 각종 등산용품을 지원하는 등, 약 120여명의 구호대 멤버가 활약했어요.
몽벨은 사회 활동에 직원이나 업계인들만 참여시키는 게 아닙니다. 고객 역시 사회 활동의 일원이 되도록 독려해요. 바로 ‘몽벨클럽’입니다. 1985년 출발한 회원제 클럽으로, 일반적인 멤버십과는 조금 달라요. 지금은 포인트 적립이나 할인 같은 혜택이 있지만, 초기에는 회보지를 선물로 주는 게 다였다고 해요. 연 1500엔(약 1만3000원)의 유료 회비도 받았는데 말이죠.
그 회비는 다 어디에 쓰이는 걸까요? 회비 중 50엔(약 460원)을 펀드로 전환해 매년 기부해요. 몽벨클럽의 회원 수는 2025년 기준, 약 120만 명이 넘습니다. 그 연회비로 약 17억엔(약 158억원) 이상 걷힌다고 하니, 기부 액수도 상당하겠죠.
“무료로 회원을 모으면 멤버십 숫자는 순식간에 늘어났겠죠. 하지만 지속성이 중요했습니다. 몽벨클럽의 기부는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부예요. 만약 회삿돈으로 기부했다면, 경영이 나쁠 땐 기부가 중단됐을 겁니다. (...) 돈벌이가 목표고, 등산이 그 수단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예요. 등산이라는 행위가 먼저 있고, 그걸 파고들다 보니 (몽벨클럽과 같은) 아이디어가 자연스레 이어졌을 뿐입니다.”_타츠노 이사무, 2023년 포브스 재팬 인터뷰에서

몽벨은 재해로 피해를 입은 이들을 돕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은 2016년 구마모토 지진 현장에서 몽벨의 구호물품을 나르는 아웃도어 구호대. ⓒmontbell
Chapter 6.특이점이 온 한국에서의 인기
신기하게도 지금 몽벨의 인기는 본국인 일본보다 한국에서 특출납니다. 현지 매체인 니시니혼신문西日本新聞도 이 현상을 특이하게 생각해 취재하기도 했어요. 니시니혼신문의 현장 취재에 따르면 일본 내 몽벨 매장에서 쇼핑하는 대부분의 고객은 한국 관광객입니다.
유독 한국에서만 ‘몽벨 붐’이 부는 이유는 뭘까요? ①헤리티지 브랜드에 대한 동경, ②접근 가능한 가격대 덕분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입니다. 한국 젊은이들의 해외 아웃도어 브랜드에 대한 동경은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파타고니아나 아크테릭스는 가격대에 다소 진입장벽이 있었죠. 반면 몽벨은 접근이 쉬웠던 겁니다.
“한국에는 헤리티지 있는 브랜드를 찾으려고 해도 잘 없죠. 헤리티지 브랜드에 대한 동경이 무의식적으로 한국 젊은 세대에 깔려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몽벨은 아웃도어 하나로만 50년을 팠잖아요. 게다가 가격대도 합리적이고요. 그 점이 한국 젊은 소비자들에게 통한 것 같아요.”_조엘 킴벡 스튜디오 핸섬 대표, 롱블랙 인터뷰에서
젊은 세대의 호응에 몽벨코리아도 나서기 시작합니다. 몽벨은 2009년 LS네트웍스가 운영하는 라이선스 브랜드로 출발했어요. 2016년 몽벨코리아로 법인이 분리되긴 했지만, 2024년까지만 해도 라이선스 브랜드였어요. 그런데 2024년 한국에서의 몽벨 인기가 심상치 않자, 2025년 직수입 브랜드로 탈바꿈합니다.
“몽벨코리아가 직수입으로 전환한 건 영리한 선택 같습니다. 국내 2030 소비자의 니즈를 빠르게 파악한 결과이겠죠. 브랜드가 지닌 본래 가치에, 한국 소비자의 독특한 수요, 그리고 유통의 적시성. 이 세 가지가 잘 맞았다고 봅니다. 이미 시장에 흐름이 형성됐으니, 이제부터가 중요하겠죠.”_박성조 온큐레이션 매거진 디렉터, 롱블랙 인터뷰에서
이후 몽벨의 한국 매출은 크게 늘었어요. 2025년 6월 연 플래그십 스토어 감사제의 경우, 사흘간 총 5억원의 매출을 달성했습니다. 전년 동기간 대비 60% 성장한 수치예요. 매장 실적 역시, 2025년 10월 기준 절반 이상의 매장이 월 매출 1억원을 내고 있습니다.
몽벨코리아는 이제 유행을 넘어, 일상에 자리 잡은 아웃도어 브랜드를 지향해요. 이를 위한 브랜드 체험을 기획하고 있죠. 2025년 4월에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한티가는 길’ 코스를 150여명이 함께 걸었어요. 단 2분 만에 모집인원 150명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였습니다. 이번 11월에는 제천 옥순봉 생태공원에서 행사를 엽니다.
“일본에서의 몽벨은 전 연령층을 타겟으로 하는 전통적인 아웃도어 브랜드 입니다. 다만 한국 몽벨의 경우, 소셜미디어상에서 고프코어 감성의 패션 브랜드로 주목받았어요. 몽벨코리아는 이러한 흐름을 적극 받아들여 직수입으로 유통 방식을 전환하는 한편, 브랜드 체험을 늘리는 캠페인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몽벨이 ‘트렌디한 아웃도어 브랜드’로 자리 잡는 것이 목표예요.”_이혜지 몽벨코리아 영업부 매니저, 롱블랙 인터뷰에서

몽벨코리아는 유행을 넘어 고객의 일상에 파고드는 아웃도어 브랜드를 지향하고 있다. 사진은 참가자가 ‘한티가는 길’ 코스를 걷는 모습. ⓒmontbell
Chapter 7.마치며: 벽돌 쌓기에서 대성당이 되기까지
1947년생. 만 78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대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창업자 타츠노. 그는 자주 ‘등산’과 ‘사업’을 비교해요. 늘 새로운 고비를 맞이한다는 점에서, 등산과 사업은 비슷하다는 겁니다.
“등산가는 원래 겁이 많아요. ‘비가 오면 어쩌나, 바람이 불면 어쩌나.’ 늘 계산하죠. 그래도 산을 올라야 합니다. 경영도 똑같아요. ‘회사를 무너뜨릴 순 없다’는 마음으로 해왔습니다. 앞으로의 50년이 어떻게 될지는 모릅니다.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되, 넘어지지 않게 상의하며 산을 오르듯 나아가겠죠. 다만 ‘여기까지 올라가면 성공’이라며 가능성을 좁히기는 싫습니다.”_타츠노 이사무, 2025년 내셔널지오그래픽 일본 인터뷰에서
50년 동안 몽벨을 지켜온 타츠노. 앞으로의 50년은 쭉 함께 할 수 없겠지만 그의 정신만큼은 유지될 거라고 확신해요. 그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고 합니다.
“명심하십쇼. 기업 활동의 중심은 ‘돈’이 아니라 ‘일’이에요. 그 ‘일’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게 진짜 목표입니다.

마테호른에 올라 차를 마시는 타츠노. 등산가가 비와 바람이 두려워도 산을 오르듯, 경영 역시 두려워도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montbe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