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신청 잘못해 하프 마라톤 나간 썰

한이룸
이커머스
2025. 11. 9.
올해 부터 마라톤을 나가고 있습니다.
처음에 5키로, 2달전엔 10키로, 이번이 세번째입니다.
마라톤을 신청하면 몇가지 용품을 보내주는데요.
배에다 붙이는 번호표에 이상한 글자가 있는걸 발견했어요.

하..하프?
처음엔 하프마라톤이니까 10키로를 하프로 표기하나 싶었습니다.
확인해보니 제가 잘못 신청한 게 맞더군요. 신청 페이지에서 ‘10K’와 ‘Half’가 한 화면에 붙어 있어 선택을 헷갈렸고, 결제 확인 메일을 대충 보고 넘어간 게 원인이었습니다.
교훈: 대회 신청은 결제 전 최종 확인(코스·시간·픽업)을 꼭 체크.

너무 당황스러워 전화했더니, 거리변경은 안된다네요.
얼마 전 인대 파열 후 달리기 연습도 통 못하고, 10키로도 제대로 뛰기 힘들었거든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별의 별 생각이 다들었어요. 2시간 30분이 컷 오프고 그럼 교통통제 해제되고, 걸어서 와야 하는데 버스카드를 챙겨야 되나 부터,
“10키로만 뛰고 원래 10키로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10키로 주자들과 섞여볼까?” 같은 꼼수까지요.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석으로 플랜을 세웠습니다
컷오프(2:30)를 기준으로 “완주 우선” 전략: 초반 페이스를 보수적으로, 경사·다리 구간은 워크런 허용.
워크런 규칙: 통증 신호가 오면 즉시 1~2분 걷기 후, 호흡이 안정되면 다시 조심스레 달리기.
심박·호흡 기준: 대화가 가능할 정도를 유지(무리 금지).
그러다 이 고민은 스레드에 올렸고, 정말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해주셨어요.

쥐가 날 것을 대비해, 바르는 젤도 추천해주셨는데, 그날 약국가서 바로 구입했어요.

그리고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ㅋ

코스는 여의도 공원에서 출발해 서강대교를 건넜다 와서 한강 고수부지로 이어져 돌아오는 약 21.2km였어요(공식 하프 21.097km 대비 이 대회 안내상 약간 길게 표기).

역시, 마라톤이 인기라 많은 분들이 참여를 해주셨네요.
하프가 시작되었고 바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하프는 상대적으로 인원이 적었는데, 초반 페이스가 전반적으로 빨랐습니다.
초반 5분45초..
처음에 서강대교쪽으로 가는길이 비탈이고 다리 올라가는 길이 경사가 있어서 뛴지 2키로만에 숨이 헐떡여졌어요. 이미 땀이 쏟아지고 있었어요. 그만 달리고 싶었습니다.
서강대교를 돌아오는 5키로 지점에서는, 허리에 슬쩍 통증이 시작되었어요.
여기에서도 머릿 속엔 10키로만 뛸까 라는 생각이 가득합니다.
8키로 정도 되니, 손이 저리기 시작합니다. (손이 왜 저리지?)
10키로를 지나서 조금 더 뛰어볼까 생각합니다.
(사실 포기하고 싶었..)
이미 10키로에서 체력은 다 쓴 상태였어요.
이 구간에서 초반 오버페이스였다는 걸 인정하고, 보폭을 줄이고 팔각도를 좁혀 상체 긴장을 낮추는 쪽으로 조정했습니다.
워크런을 허용하며 호흡을 되찾는 데 집중.
12키로 되니 신발 양쪽에 돌이 들어간 모양입니다.
뭔가 스스스하게 걸리적 거립니다.
(나중에 보니 발바닥 중간에 물집이 생겼더군요 - 이런데도 물집이 생길 수도 있는 거군요!)
15키로 되니 하루키가 80키로 달릴때 증상하고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근육들이 컵을 집어 던지며,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고 소리를 지르는 듯 했습니다.
몸속에선 이게 뭔일이냐며 다들 사이렌 킨 것 같았어요.
16키로 쯤에 이 고통은 모두 내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라고 이상한 생각과 동시에 명상을 해봤습니다.
소용 없었습니다 ㅋ.
18키로를 지나니 온몸의 피곤이 몰려오네요.
이 때부터 발에 힘을 주면 종아리에서 쥐가 날것 같아 뛰질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걷다 뛰다 합니다.
워크런 규칙은 “짧게 뛰고 충분히 걷기”로 바꿨습니다. 보폭을 더 줄이고 발끝 들림을 의식하며 종아리에 과부하가 가지 않도록 조절.
20키로에서는 거의 걷다 시피 했는데, 걸어도 힘들고 그래서 뛰면 또 힘들고, 누군가 500미터 남았다고 했는데 왜이렇게 먼지.. 결국 들어왔습니다.

태어나서 몸에서 가장 힘들어한 순간이 아니였나 싶어요.
앉아서 쉬는데, 내가 자세가 안좋은 부분이 모두 여실히 들어났어요. 허리통증과 어깨가 아팠어요. 뛰는 자세와 팔 움직임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종아리는 쥐가 나려고 해서 연신 제를 발랐습니다. 발바닥엔 물집이 잡혔고, 집에 오고 나니, 다른덴 많이 괜찮아 졌는데 무릎통증이 심해졌습니다.
한마디로 완전 몸에서 난리가 난거죠.
그래도 하프를 뛰었다는 성취감과, 이 고통 속에서 무언 가를 더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올 초(4월인가?) 마라톤을 처음 나갔고, 그땐 5키로를 겨우 뛰었어요.
그 뒤, 7월에 나간 마라톤에서 10키로를 처음 나가봤죠.
10키로는 정말 사람이 달릴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런 제가 20키로를 뛰게 되었네요.
무라카미하루키는 마라톤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고 이야기를 해요. 체력이나 심박수, 장거리를 뛸 수 있는 신체는 유전적으로 타고 나야 했어요.
저처럼 달리기를 거의 안 해봤고 5키로도 겨우 뛰던 사람도 하프를 완주했습니다. 다만 ‘누구나 도전’은 조건과 계획이 있을 때만 안전합니다.
다음 레이스에서 바꿀 5가지(교훈)
신청 실수 방지: 결제 전 코스·시간·수령 옵션 3중 체크.
초반 페이스: 집단 페이스에 휩쓸리지 말고 보폭 줄이기·케이던스 유지.
폼 교정: 상체 긴장 완화, 팔 각도 좁히기, 힙 드롭 방지 코어·둔근 강화 루틴 추가.
발 관리: 두툼한 러닝 양말·발바닥 테이핑으로 물집 예방, 급수대에서 짧은 정지 허용.
워크런 프로토콜: 통증 신호 시 즉시 걷기→호흡 안정→짧게 재가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