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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기유 : 쇠락하던 90살 목욕탕이, 하라주쿠 도심 한복판에 들어간 법

한이룸
이커머스
2025. 5. 6.
목욕탕 조명이 하얗고, 벽은 파스텔톤이다. 뭔가 아이돌 뮤직비디오 촬영장 같잖아? 목욕 끝내고 카운터로 나오면 만화책을 볼 수 있다. 스트레칭 존도 있고, 언더아머 운동복도 빌릴 수 있음.
이게 뭐냐고요? 얼마 전 일본 출장 때 다녀온 목욕탕에서 쓴 메모예요. 제가 간 곳은 도쿄 하라주쿠原宿에 있는 고스기유小杉湯. 1933년에 시작된 이 목욕탕은 2024년 도쿄 한복판에 2호점을 내놓았어요.
창업자의 성씨인 고야마(小山)의 고(小)와, 창업 지역인 스기나미구(杉並区)의 스기(杉)를 합쳐 만들어졌다.
고스기유는 어렵다는 일본 목욕탕 시장에서 ‘트렌디한 브랜드’로 살아남은 곳이에요. 목욕탕의 물만 바꾼 건 아니에요. 사람들을 끌어들일 공간 디자인은 물론, 경험까지 기존 목욕탕과 다르게 설계했죠. 그 결과 중년은 물론, 2030 여성까지 팬으로 끌어들였어요.
90살이 넘은 목욕탕은 어떻게 생존을 넘어, 도쿄 한복판에 2호점을 낸 걸까요? 그 비결을 정리해 봤어요. 갤러리에는 직접 다녀온 고스기유 2호점 사진까지 담았으니, 끝까지 읽어주세요!
Chapter 1.궁금해서 다녀왔습니다, 고스기유 체험 일지
2025년 4월 11일 오후 8시. 도쿄 시나가와구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전철을 30분간 타고 시부야구 하라주쿠역으로 향했어요. 고스기유 2호점이 위치한 하라카도ハラカド에 가기 위해서였죠. 하라카도는 번화가에 있는 9층짜리 복합 상가 시설이었어요.
근처에는 3층짜리 나이키 매장과 거대 쇼핑몰로 가득했죠. 화려한 옷을 입고 걸어 다니는 사람도 많았고요. 여기에 목욕탕이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지하 1층으로 갔어요. 바로 왼쪽에 입구가 보였죠. 전체 넓이는 50평쯤 되는 공간. 대부분의 가구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어요.
안내를 받아 노란 천으로 가려진 여탕으로 들어섰어요. 나무로 만들어진 탈의실과 유리문 너머 탕이 보여요. 탈의실과 탕은 그리 크지 않았어요. 탈의실은 성인 여성 15명 정도면 꽉 찰 것 같았고, 샤워할 수 있는 자리도 10곳 정도?
눈길을 끈 건 목욕탕 안이었어요. 공간이 스튜디오에 온 것처럼 화사했거든요. 새하얀 조명과 흰 타일, 그리고 둥근 거울이 제 시선을 끌었어요. 한쪽 벽엔 후지산이 그려진 벽화가 있었고요.
탕은 세 가지로 이뤄져 있었어요. 우유탕과 약재탕, 냉탕. 41도의 희뿌연 우유탕에선 밀키스처럼 산뜻한 냄새가 났어요. 약재탕에서도 흐릿한 한약 냄새가 났고요.
탕에서 몸을 녹이던 중,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한 여성분이 제게 말을 걸었어요. 당황해 일본어를 못한다고 손사래 치자, 제게 머리끈을 건넸죠. 그제야 피곤해 머리도 안 묶고 탕에 들어간 걸 깨달았어요. 그는 머쓱해하는 절 보고 웃으며 “괜찮다”고 했어요.
목욕을 마친 후에도 여정은 끝나지 않았어요. 카운터 근처 음료를 진열한 냉장고가 있길래, 직원의 추천을 받아 병에 담긴 우유를 마셨죠. 한국처럼 깔끔한 느낌의 우유였는데, 목욕 후 마시니 더 개운했어요.
카운터 왼편에는 편히 쉴 수 있는 평상과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었어요. 바둑판은 물론 만화책이 꽂힌 책장까지 있어요. 헤드셋으로 음악을 듣거나,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년 남성들도 있었어요. 그냥 목욕탕이 아니라, 트렌디한 마을 사랑방 같은 느낌이랄까요?

도쿄의 대표 번화가 중 하나인 하라주쿠의 복합 상가 시설 ‘하라카도’에 위치한 고스기유 2호점. ⓒ도큐부동산, 고스기유
90살 넘은 고스기유 1호점, 어떤 모습이었을까
2호점이 이런 모습이라면, 1933년에 만들어진 1호점은 어떨까요? 1호점은 도쿄 서부 주택가 코엔지高円寺의 조용한 골목에 있어요. 고층 빌딩인 하라카도와 달리, 짙은 목재로 만들어진 일본 전통 가옥이었어요.
물론 탕 안은 2호점과 비슷해요. 후지산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높은 천장과 다섯 개의 큰 창이 시원한 느낌을 줘요. 다만 새롭고 트렌디한 느낌보다는, 오랜 세월을 품은 고즈넉한 모습이죠.
그럼에도 이곳은 여전히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어요. 붐빌 땐 하루 1000명이 넘게 방문하죠. 게다가 “항상 사람이 북적이지만 서로를 배려해 거슬리지 않는다”는 리뷰도 있고요. 이 오래된 목욕탕의 인기 전략은 뭘까요? 지금부터 알아볼게요!

도쿄의 주택가 지역인 코엔지에 위치한 고스기유 1호점. 오래된 역사가 느껴지는 전통적인 스타일의 건물이다. ⓒ고스기유
Chapter 2.목욕탕에도 ‘콘텐츠’가 필요하다
고스기유는 1933년에 시작해, 3대째 이어지고 있어요. 1대 사장인 히라마쓰 요시히로平松吉弘*부터 아들인 시게루平松茂, 손자 유스케平松佑介까지. 3대가 시대에 맞춰 생존 전략을 짜왔죠.
초대 사장은 고야마 소타로小山惣太郎로, 중간에 히라마쓰 요시히로에게 물려주었다.
창업자이자 1대 사장인 히라마쓰 요시히로는 먼저 목욕탕이 성장할 수 있는 ‘판’을 깔았어요. 지금 고스기유의 시그니처 탕인 ‘우유탕’을 만들었고, 손님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서비스도 제안했죠. 이게 부모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 고스기유는 하루 고객 600명을 받을 정도로 성장했어요.
2대 사장인 히라마쓰 시게루는 탕을 ‘콘텐츠’처럼 운영했어요. 매일 향과 재료가 바뀌는 ‘일일탕’, 한 달에 한 번 바뀌는 ‘풍류탕’을 만들었죠. 지난 달엔 복숭아잎탕을, 이달 여름귤탕을 선보이는 식이에요.
그는 공간에도 콘텐츠를 입혔어요. 손님이 적은 점심 시간대엔 ‘목욕탕 축제’를 열었어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와서 노래를 부르며 쉬게 했죠. 그렇게 고스기유는 동네의 사랑방처럼 자리를 잡아나갔어요.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위기가 찾아와요. 거의 모든 주택에 욕실이 생기며, 목욕탕을 찾는 사람이 갑자기 줄어든 거예요. 또 목욕탕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가 늘면서 ‘늙었다’는 이미지까지 얻었죠.
이때 나선 구원 투수가 바로 창업자의 손자 히라마쓰 유스케예요. 그는 2016년부터 고스기유 경영에 뛰어들었어요. 그가 부임한 뒤 고스기유의 손님은 도쿄 목욕탕의 평균 세 배 이상으로 늘었어요. 평일에도 하루 400~500명이 올 정도였죠.
또 하나의 성과는 젊은 세대와 여성을 목욕탕으로 오게 했다는 거였어요. 원래 일본의 전통 목욕탕은 중년 남성의 전유물이었거든요. 그가 운영한 후로 2030 비율은 절반 이상 늘었고, 남녀 성비도 6:4 정도로 균형 있게 잡혔죠.
비결이 뭐냐고요? 그가 생각한 답부터 먼저 들려드릴게요.
“목욕탕은 그 지역의 축소판 같은 공간이에요. 세대도 다르고, 직업도 다른 사람들이 모이는데 막상 다들 벗고 물속에 들어가면 다툴 이유도, 벽도 사라지죠. 전 그런 광경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봐왔어요. 그래서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감각이 제 안에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_히라마쓰 유스케, 2023년 오카네칩스 인터뷰에서
유스케는 이런 감각을 느낄 수 있다면, 젊은 세대도 목욕탕을 찾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걸 ‘사일런트 커뮤니케이션silent communication’이라는 단어로 정의했죠.

고스기유의 3대 사장인 히라마쓰 유스케. 어린 시절에는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30대까지 부동산에서 일하고 스타트업도 창업했지만,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고스기유로 돌아왔다. ⓒ센토구라시 블로그
Chapter 3.아무 말 않아도 괜찮은, ‘사일런트 커뮤니케이션’을 제안하다
사일런트 커뮤니케이션. 말 그대로 조용한 소통이에요.
다들 한 번쯤 있을걸요? 동네 카페나 헬스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에게 ‘내적 친밀감’이 생긴 적. 이름도 모르고 인사도 하지 않지만, 얼굴을 아는 것만으로도 묘한 안정감이 들죠.
유스케도 이 감정에 주목했어요.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목욕탕에 오는지 고민하다 이런 답을 얻었대요. ‘사람들은 안정감을 얻고 싶지만, 무턱대고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건 아니다.’
“저는 손님들이 고스기유에 기분 좋게 목욕하기 위해 온다고 생각합니다. 달리 보면, 적극적으로 대화하려고 오는 분은 많지 않다는 거였죠. 다만 목욕탕을 다니다 보면 익숙한 동네 사람, 항상 같은 시간에 마주치는 사람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걸 중中거리적인 이웃 관계라고 봐요.저는 이런 관계서도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고 봤어요. 이걸 ‘사일런트 커뮤니케이션silent communication’이라 불렀고, 목욕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봤습니다.”_하라마쓰 유스케, 2023년 Marketeer 인터뷰에서
‘사일런트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만들었냐고요? 고스기유 내부를 잠깐 살펴볼게요. 먼저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면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있지만, 조용히 머무는 사람도 보여요. 누군가 즐겁게 대화하고 있어도 소외된 기분은 들지 않아요. 벽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거든요.
“아무 말 하지 않는 시간도, 좋은 것입니다.”
유스케는 읽을 만한 콘텐츠도 준비했어요. 욕탕 벽에는 물에 젖지 않게 코팅된 책자 몇 개가 붙어 있죠. 목욕을 다룬 동화나, 매달 바뀌는 목욕탕의 재료 이야기가 담겨있어.
탈의실엔 ‘고민 게시판’이라는 칠판이 보여요.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말을 걸까’,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와 같은 고민을 포스트잇에 써서 붙일 수 있죠. 실제로 사람들이 그 아래 달아 준 정성스러운 답변도 볼 수 있어요.
유스케가 설계한 이런 분위기, 젊은 세대에겐 힐링 장소로 통했어요. “고스기유 덕분에 살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고스기유 1호점에 있는 여탕의 ‘고민 게시판’. 오른쪽에 포스트잇으로 고민을 적는 곳이 있다. ⓒ고스기유
Chapter 4.고스기유 단골 10명이 함께 살 때 벌어지는 일
유스케는 목욕탕의 분위기만 바꾸지 않았어요. 브랜드 ‘고스기유’가 영향력을 발휘할 방법을 고민했죠.
그래서 2017년에 ‘주거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욕실 없는 낡은 아파트에 고스기유의 단골 10명이 1년간 함께 살아보자는 제안이었죠. 이름은 ‘센토구라시銭湯ぐらし 프로젝트’. 한국어로 ‘목욕탕 생활’이라는 뜻이에요.
웬 집이냐고요? ‘목욕탕만으로는 고스기유를 키우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거든요.
“목욕탕뿐 아니라 동네 서점, 카페 등도 붐이 일지만, 점포의 절대적인 수는 해마다 줄어드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고스기유만 하나의 ‘점(장소)’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스기유를 중심으로 여러 점을 연결한 반경 500미터의 ‘면’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봤어요.”_하라마쓰 유스케, 2023년 Marketeer 인터뷰에서
즉, 목욕탕 밖에서도 고스기유를 이야기하며 모일 장소가 필요하다고 본 거였어요. 마침 할아버지가 그에게 남긴 낡은 아파트도 있었고요.
그렇게 유스케는 공유주택 기획자로 변신했어요. 입주 조건은 단 하나. 고스기유 단골이어야 한다는 것. 그 외에는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았어요. “우리 삶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자”는 한 문장만 주고, 운영은 모두 알아서 하게 했죠.
덕분에 입주자들은 스스로 논의하며 원칙을 세웠어요. 이런 것들이었죠.
무리하지 않는다애써 친해지려고 하지 않는다스스로에게 솔직하고, 꾸미지 않는다서로의 직함을 강요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단골들은 고스기유 1호점을 기획 놀이터로 만들었어요. 목욕탕 안에서 라이브 공연을 열었고, 집을 꾸며 또 다른 숙박 시설로 운영하기도 했죠.
고스기유를 발판으로 커리어를 바꾼 사람도 나왔어요. 건축사무소를 퇴사한 한 손님은, 그림 솜씨를 살려 고스기유 풍경을 그렸어요. 이걸 ‘목욕탕 도감’이라는 이름으로 SNS에 올렸고, 이 기록이 나중엔 책이 됐죠. 지금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하는 엔야 호나미塩谷歩波 이야기에요.
롱블랙은 2024년 5월 엔야 호나미를 인터뷰했다.
1년 만에 성과가 나오자, “이대로 끝나긴 아깝다”는 말이 입주민들 사이에서 나왔어요. 유스케와 입주민들은 ‘주식회사 센토구라시’라는 법인을 설립해요.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만들기로 한 거죠.

유스케는 고스기유의 단골 10명이 함께 사는 공유주택 활동 ‘센토구라시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기획이 나왔다. ⓒ센토구라시 블로그
Chapter 5.입장권 말고도 목욕탕이 돈을 벌 수 있을까?
흠, 재미도 좋지만 이게 돈이 될까요?
고스기유 1회 입장권은 520엔(약 5200원). 일본 문화재로 지정돼 입장권 가격을 올리거나, 다른 시설을 설치하는 것도 어려워요. 심지어 공간이 한정돼 있으니 받을 수 있는 손님 숫자도 한정적이고요.
그래서 유스케는 입장권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어요. 대신 새로운 비즈니스를 연결해 ‘회원권’이라는 구독형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로 하죠.
해결책의 실마리는 공간에서 찾았어요. 2020년 ‘고스기유 이웃집となり’을 만들었거든요. 고스기유 바로 옆의 3층짜리 주택 겸 공유오피스예요.
1층은 카페. 커피와 간단한 식사를 즐길 수 있어요. 2층 다다미방은 공유 오피스. 좌석마다 콘센트와 프린터기가 놓여있어요. 3층은 1인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죠.
핵심은 공유오피스 옆에 ‘목욕탕’이 있다는 거예요. 작업 도중 고스기유로 넘어가 씻고 쉴 수 있는 거죠. 즉, 목욕탕을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판 거예요.
고스기유는 이 전략으로 매출을 끌어냈어요. 월 2만 엔(약 20만원)에 언제든 이곳을 이용할 수 있는 회원권을 팔았죠. 고스기유 이용권 10장도 함께 줬어요. 런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원 50명을 모으며 성공적으로 사업을 띄웠다는 평을 들었어요.

‘목욕탕이 있는 삶’을 제시한 고스기유 토나리. 1층(오른쪽 아래)은 카페, 다다미가 깔린 2층은 작업 공간이다. ⓒ센토구라시 블로그
반대로 운영비를 줄이는 전략도 찾았어요. 달마다 재료가 바뀌는 ‘아낌없는もったいない 목욕탕’으로 말이에요. 감귤 같은 과일은 물론, 일본의 ‘이요시 콜라*’ 향도 들어가죠.
일본 수제 콜라 시장을 개척한 대표적인 콜라 브랜드.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독특한 맛이 특징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아낌 없이 준다는데 비용을 아낀다니. 여기에도 비즈니스가 숨어 있어요. 고스기유는 아낌없는 목욕탕의 재료 대부분을 무료 또는 저렴한 가격에 들여와요. 떨어져서 팔 수 없는 ‘못난이 농산물’이나, 제조 과정에서 버려지는 부산물을 이용하죠.
“‘어떻게 하면 기분 좋은 목욕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니, 유자나 창포 같은 천연물을 넣은 탕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엔 모든 재료를 그냥 샀습니다. 돈이 많이 들었어요.그러던 중, 손님 중 한 분이 우연히 저희에게 상처가 나거나 떨어져서 출하할 수 없는 감귤을 받아 선물했어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아낌없는 목욕탕’을 시작한 계기입니다.”_하라마쓰 유스케, 2023년 Marketeer 인터뷰에서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고스기유 목욕탕은 제품 광고판 역할도 하고 있어요. 아낌없는 목욕탕 벽에 각 재료를 만든 생산자 이야기가 담긴 책자를 붙여, 탕을 체험한 고객이 실제 제품을 사게 했죠.
“목욕할 때는 다들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잖아요. 그래서 목욕탕에 붙어 있는 책자 등 아날로그적인 정보를 읽을 수 있게 했습니다. 이렇게 생산자의 이야기와 마음을 읽고,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매점에서 실물을 살 수 있는 거죠. 이런 과정으로 물건을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_하라마쓰 유스케, 2023년 Marketeer 인터뷰에서

고스기유는 못난이 농산물이나 부산물을 이용한 ‘아낌없는 목욕탕’을 만든다. 병에 흠이 있는 와인을 모아 ‘와인탕’을 만들고(위), 탕 밖에는 목욕 후 마시기 좋은 와인을 판매했다(아래). ⓒ고스기유
Chapter 6.창업 91년 만에 2호점을 낸 ‘동네 목욕탕’
고스기유는 창업 91년 만에 2호점을 내며 기세를 키웠어요. 2024년 일본 부동산 기업인 ‘도큐부동산’이 하라주쿠 한복판의 복합상업시설 ‘하라카도’를 세우면서 고스기유를 들여왔거든요. 왜 그랬을까요?
“목욕탕은 그동안 일하고, 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매일 같이 드나들며 지역과 섞이는 일상의 시간을 만들어온 공간이었습니다. 목욕탕이 단 한 곳도 없던 하라주쿠라는 동네에, 그 문화 자체를 다시 불러들이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_오오니시 리나 도큐부동산 도시개발부서, 2023년 도큐부동산 그린 매거진 인터뷰에서
이 생각이 파스텔톤의 화사한 목욕탕, 고스기유 2호점을 만들었어요.
2호점은 도시 목욕탕답게 설계됐어요. 아침 7시에 문을 열어 밤 11시에 문을 닫거든요. 출근 전부터 퇴근 후 사람들까지 모두 들르게 했죠.
또 기업과도 적극 손을 잡았어요. 카운터에선 생활용품 브랜드 카오KAO의 제품을 팔아요. 목욕이 끝나면 삿포로 맥주를 내려 마실 수 있고, 언더아머의 신발과 옷을 빌릴 수 있죠.
아침에 러닝을 즐긴다면? 언더아머 신발, 티셔츠 세트를 1300엔(약 1만3000원)에 빌릴 수 있어요. 러닝 후 목욕탕에서 개운하게 씻고 쉴 루틴을 제안하는 거예요. 이들은 이걸 런-앤-탕Run & 湯 시스템이라 부르더라고요!
재밌는 일이잖아요? 하지만 유스케는 오픈 전까지 고민이 많았다고 해요. 웨이팅으로 유명한 핫플을 만들고 싶지 않았거든요.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건 ‘동네 목욕탕’입니다. 하지만 ‘하라주쿠 사거리 상업시설에 탄생한 목욕탕’이라는 표현은 놀이동산처럼 비춰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약 3시간 대기 같은 웨이팅이 생긴다면, 아무도 동네 목욕탕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우리는 여유롭고, 언제 와도 어깨에 힘을 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_2024년 고스기유 블로그에서
그래서 유스케는 강수를 뒀어요. ‘가오픈 한 달간 하라주쿠 지역 주민만 입장 가능’이라는 정책을 세웠죠. ‘지역 주민’의 기준은 명확했어요.
① 실제로 하라주쿠에 살거나② 하라주쿠 학교나 직장에 다니거나③ 하라주쿠 호텔에서 숙박하는 관광객
단순 방문객이거나, 타 지역에서 사는 사람은 입장할 수 없었어요.
이 원칙, 정식 오픈 뒤에도 두 달 가까이 지켰어요. ‘지역 주민 전용 시간’*을 만들었거든요. 입장료도 1호점과 같은 520엔(약 5200원)을 유지했죠.
오전 7시~11시, 저녁 6시~11시.
이건 모두 “동네 목욕탕이라면 누구나 편하게 올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었어요. 생각해보면 그래요. 이 원칙이 고스기유를 도쿄 번화가에서 ‘성공한 동네 목욕탕’으로 자리 잡게 한 것 아닐까요?
“고스기유는 무언가를 과하게 개방하는 공간이기보다는, 누구에게도 닫혀 있지 않은 공간이에요. (…) 누구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장소.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안심하고 스며들 수 있는 거죠.”_히라마쓰 유스케, 2023년 일본경제신문 인터뷰에서

고스기유는 2호점 오픈 초기 지역 주민만 입장할 수 있는 방식을 택했다. 누구든 와도 좋은 ‘동네 목욕탕’이라는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고스기유 인스타그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