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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자키 쇼코 : 96년생 호텔 기획자, ‘뜻밖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법

한이룸
이커머스
2025. 7. 23.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타입 vs 터무니없는 상상을 펼치는 타입. 여러분은 어느 쪽에 가깝나요? 전 머릿속이 상상으로 꽉 찬 편! 가끔 동료한테 핀잔을 듣긴 하지만요….
그런 제게 위안을 주는 사람을 만났어요. 이상한 상상력으로 일본에 ‘호텔 순례’ 열풍을 일으킨 기획자, 류자키 쇼코龍崎 翔子. 19살부터 10년간 5개의 호텔과 1개의 호텔 숙박 플랫폼을 만들어 성공시켰죠.
류자키가 만든 호텔, 컨셉과 경험이 하나같이 독특해요. 호텔 쉬 오사카Hotel SHE Osaka는 ‘음악 듣는 호텔’, 고린쿄香林居는 ‘공기를 처방하는 호텔’, 리조트 호텔 카후네Hotel Cafune는 ‘산후 여성의 회복 공간’으로 유명하거든요.
세상에 없던 호텔만 기획한다는 류자키는, 엉뚱한 상상을 현실화하는 법을 담은 책 『크리에이티브 점프』도 한국에 출간했어요. 이를 계기 삼아 그와 화상으로 만나 나눈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류자키 쇼코 호텔 프로듀서・스이세이 대표
“호텔이 편안하면 그만인 시대는 지났어요.”
1996년생 류자키 쇼코. 그는 지금의 호텔이 ‘지루한 산업’이라 말해요. 아늑한 객실과 화려한 아침 식사, 널찍한 수영장은 누구나 갖추고 있다면서요.
품질만 따지는 호텔 업계에, ‘생각하지 못한 경험이 필요하다’는 게 류자키의 주장. 심지어 그는 9살 때부터 이 문제에 집착해 왔어요. 11살 무렵엔 “내가 자고 싶은 호텔을 만들겠다”고 다짐했고요.
다짐을 실천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천재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에요. 오랜 시간 들여다보고, 고민하고, 집착했기 때문이죠. 더 이어가 볼게요.
Chapter 1.내 안의 ‘위화감’에서 사업은 시작한다
류자키 쇼코는 도쿄 외곽의 조용한 주택가에서 자랐어요. 아버지는 경제학자, 어머니는 역사학자. 심지어 조부모는 국어와 역사 교사로 살아왔죠. 그야말로 ‘학문 가문’이라고나 할까요.
류자키가 호텔에 관심을 가진 건 여덟 살 무렵이에요. 연구년을 맞은 아버지가, 가족과 함께 미국에 반년 동안 머물렀거든요. 마지막 한 달은 대륙 횡단 로드트립을 즐겼죠.
도로, 산맥, 사막, 또 도로. 지루한 풍경을 10시간 넘게 보는 게 류자키에겐 고통이었어요. 여행에서 유일하게 기대한 건 매일 밤 묵게 될 호텔이었죠. 매번 실망만 돌아왔지만요.
“상실감이 컸달까요. 어떤 호텔, 어떤 객실에 들어가든 크게 다르지 않았거든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아빠 따라 히로시마 학회를 가든, 오사카의 호텔에 가든 다 똑같은 비즈니스 호텔뿐이었어요.”
그가 “내가 자고 싶은 호텔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건 그래서예요. 고작 초등학교 4학년, 11살 때였죠.
“주변 사람들에게 ‘왜 호텔은 재미없냐’고 물어도, ‘호텔이 원래 그런 거야’라는 반응만 돌아왔죠. 그때 깨달았어요. 내가 이 문제를 가장 깊이 생각한다면, 내가 먼저 움직여야 답답함을 풀 수 있을 거라고요.”
실마리를 얻은 건, 대륙 횡단 중 들른 라스베이거스에서였어요. 마당에 200마리의 플라밍고가 있는 ‘플라밍고 호텔’부터, 삐에로가 돌아다니는 ‘서커스 호텔’까지. 호텔마다 컨셉이 선명했거든요.
“태어나 처음으로 호텔을 구석구석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충격 받았죠. 호텔은 더 많은 상상을 품을 수 있단 걸요. 이때의 기억이 제가 호텔을 기획할 때의 ‘원점’이 됐어요.”
류자키는 이때 느낀 감정을 ‘위화감’이라 말해요. 풀리지 않는 갈증과, 이랬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꿈’이 계속 충돌하는 느낌이죠. 이 위화감 덕에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면서요.
“아직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거나 문제 삼지 않는데 유독 나만 느끼는 갈증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나 자신밖에 해소할 수 없는 고유한 과제입니다. 그런 갈증을 마주하고 ‘이렇게 되면 좋을 텐데’라는 꿈이 생겼을 때 비로소 위화감에서 도전해야 할 사명이 탄생합니다.”_(이하)『크리에이티브 점프』 15p

류자키 쇼코는 어린 시절 고속도로변 호텔에 묵으며 위화감을 느꼈다. 여행자의 휴식처인 만큼 더 좋은 경험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이세이
Chapter 2.역세권보다 중요한 건 ‘뜻밖의 장면’
류자키 쇼코는 19살에 사업을 시작해요. 중고 매물로 나온 홋카이도 후라노의 작은 펜션을 인수했죠. 딸의 꿈을 지지하는 어머니와 함께 운영했어요.
방음도 안 되고, 개인 욕실도 없는 펜션. 하루 3~5명만 찾던 곳은 얼마 안 가 30~40명이 몰렸어요. 중국에서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가 대박 나면서, 중화권 관광객이 몰려들었거든요.
그럴수록 류자키는 고민에 빠졌어요. ‘이 손님들이 우리 펜션이 좋아서 오는 걸까?’ 아니면 ‘후라노라서 오는 것뿐일까?’하고요. 손님이 찾는 이유를 모르는 사업은, 언제 어떻게 문 닫을지 모르니까요.
“하루는 숙박 플랫폼의 영업 담당자가 펜션에 찾아와 물었어요. ‘이곳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늘 난처했죠. 스키장이 가깝다거나, 내부를 조금 리뉴얼했다거나, 다른 곳보단 조금 저렴하다는 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1시간짜리 라운지가 만든 ‘만점 후기’
오래된 고민의 해결책은, 우연히도 어머니의 기획에서 나왔어요. 밤 8시부터 9시까지 딱 1시간만, 라운지에서 위스키나 와인을 무료로 제공해 보자는 거였죠.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손님들이 하나둘 찾아와 옆자리 사람과 말을 트며 어울린 거예요. 곧바로 반응이 쏟아졌죠. 홍콩에서 온 한 투숙객은 이렇게 말했대요.
“비싼 돈 내고 좋은 호텔에 묵어도 별 재미가 없어요. 열쇠를 받아 각자 방에 들어가면 끝이잖아요. 이곳처럼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직원과 이야기하는 게 훨씬 즐거워요.”
류자키는 확신했어요. 호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일상에서 벗어나는 경험’이라고. 깨끗한 화장실이나, 역에서 가까운 위치도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그 자체가 ‘찾고 싶은 이유’는 아니란 거예요.
“기대하는 것과 다른 의외의 경험. 저는 이걸 ‘행복한 불일치’라 부르기로 했어요. 이 불일치를 좋은 호텔의 기준으로 삼았죠. 덕분에 다른 곳과 비교할 필요 없이, ‘여기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어요.”

류자키 쇼코가 처음 숙박업을 시작했던 홋카이도의 후라노 지역은, 6월부터 8월까지 펼쳐지는 형형색색의 라벤더 밭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성수기엔 관광객으로 늘 붐비는 편이다. ⒸVisit Hokkaido
Chapter 3.콘텐츠가 오가는 호텔을 만든 ‘바람구멍 철학’
좋은 호텔이 아니라, 일부러 찾아올 이유가 있는 호텔을 만들겠다. 이런 류자키 쇼코의 마음을 가장 실험적으로 반영한 곳, 바로 ‘호텔 쉬 오사카’예요. 2017년 오사카 외곽 항만에 문을 연 부티크 호텔이죠.
입지가 좋은 곳은 아니에요. 인적도 드물뿐더러, 난바 같은 관광지와도 멀거든요. 호텔로선 꽤나 불리한 상황. 하지만 류자키는 개의치 않았어요. 손님을 끌어당길 콘텐츠로 ‘레코드 플레이어’를 내세웠죠.
웬 레코드 플레이어냐고요? 류자키의 친구가 홍보용 레코드 플레이어*를 호텔에 설치해달라 부탁했거든요. 속는 셈 치고 플레이어를 들여온 류자키, 레코드 바늘을 내려놓은 순간 깜짝 놀랐어요.
자신이 인턴으로 일하는 회사에서 레코드 정기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며, 레코드를 틀어 홍보해달라고 부탁했다.
“거칠고 풍성한 음색이 흘러나왔어요. 그 뒤 LP를 틀어놓고 잠드는 것이 습관이 됐죠. 얼마 뒤엔 항상 지나다니는 시부야 도로변에 레코드 가게가 있다는 걸 떠올렸고, 가지고 싶었던 음반을 찾아내면 ‘발굴했다’며 기뻐하기도 했어요.”
류자키는 깨달았어요. 때론 이질적인 것이 내 일상을 바꿔줄 수도 있다고. 그리고 생각했죠. 기분 좋은 경험을, 호텔의 모든 투숙객에게 전하고 싶다고.
호텔 쉬 오사카의 모든 객실에 레코드 플레이어가 놓인 이유예요. 투숙객은 로비에서 언제든 레코드판을 빌려, 객실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죠. 덕분에 ‘음악을 듣기 위해 오는 호텔’이라는 입소문을 탔고, 예약이 끊기지 않았어요.

호텔 쉬 오사카는 모든 객실에 레코드 플레이어를 놓았다. 로비에서 듣고 싶은 음악을 골라 가져온 뒤 청음할 수 있다. Ⓒ호텔쉬오사카
숙박형 연극으로 ‘맞춤형 체험’ 선물하다
이게 다가 아니에요. 류자키는 ‘투숙객 맞춤형 체험’으로 호텔에 와야 할 이유를 제안했어요. 대표 프로그램이 바로 ‘숙박형 연극’. 2020년 호텔 쉬 교토에서 시작한 투숙객 전용 프로그램이에요.
연극엔 무대나 객석이 따로 없어요. 3시간 30분 동안 호텔 전역에서 벌어지거든요. 투숙객은 체크인과 동시에 호텔과 객실을 돌아다니죠. 곳곳에 배우로 분장한 호텔리어가 나와 열연을 펼치고요.
가령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공연은, 객실마다 원더랜드Wonderland에 나올 법한 무대가 꾸며져 있어요. 티컵과 찻주전자가 놓인 테이블부터, 트럼프 카드가 잔뜩 쌓인 방까지요. 어떤 곳은 희뿌연 연기가 새어 나오기도 하죠.
이 프로그램 꽤 성공적인가 봐요. 2020년 시작한 뒤 지금까지 14개 공연에, 1만 명이 넘는 고객을 받았어요. 연극이 진행될 땐 호텔이 늘 만실이라고 해요.
레코드 플레이어부터 연극까지 ‘예상치 못한 경험’을 만드는 일. 류자키는 ‘바람구멍 철학’이라 불러요.
“어떠한 이질적인 대상이 내 사적인 공간에 존재하면, 그것이 때때로 인생이라는 방에 새로운 바람구멍을 뚫어 줍니다. 구멍 너머로 살짝 보이는 풍경이 아름답게 느껴지면, 바람구멍은 이내 창문이 되고 문이 됩니다.”_122p

호텔 쉬 교토에서는 1년 365일 몰입형 연극이 펼쳐진다. 전문 기획자와 스텝, 호텔 직원을 포함한 출연진이 테마에 맞춰 호텔 전체를 연극 무대로 꾸민다. Ⓒ호텔쉬교토
Chapter 4.아웃풋의 질을 높이는 ‘발효 3단계’
류자키 쇼코의 호텔은 단순히 ‘이색 컨셉’ 덕에 성공한 걸까요? 그는 고개를 저어요. 번뜩이는 생각도, 오랜 ‘발효’가 있어야 사람들에게 통하는 결과물이 나온단 거예요. 그러면서 ‘발효의 3단계’를 제안하죠.
1. 사고의 기회를 늘린다
2. 사고를 언어화한다
3. 적절히 잊어버리고 적절히 떠올린다
3단계를 거쳐 나온 호텔, 바로 일본 가나자와의 ‘고린쿄香林居’예요. 2021년, 100년 넘게 도자기를 팔던 낡은 갤러리 빌딩을 리뉴얼해 만들었죠. 1박에 70~80만원이라 ‘로컬 럭셔리 호텔’로도 불려요.
그런데 좀 의외예요. 로컬 호텔이라는데, 가나자와의 전통문화나 특산품은 찾아볼 수 없거든요. 가나자와는 옛날부터 금박공예와 정원 같은 옛 일본 문화가 발달해 ‘제2의 교토’라 불리는데 말이에요.
“이유가 있어요. 전 가나자와에서 ‘겉으로 보이지 않는 로컬’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대신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감각에 집중했죠. 비 오는 아침 피어오르는 흙냄새, 숲속 적송나무 향 같은 것이요.”

일본 가나자와에 위치한 고린쿄 호텔. 정문을 열고 들어서면 곧바로 향 증류소가 보인다. Ⓒ고린쿄
사고의 기회를 늘린다
류자키는 고린쿄를 기획하기 전, 가나자와의 숨은 역사부터 파고들었어요. 특히 호텔이 들어설 동네인 ‘고린보’의 이름 유래를 찾아나섰죠. 알고 보니 1500년대 전란기를 살던 무사 출신 승려의 이름이었어요.
전쟁을 피해 가나자와에 머물던 고린보, 한 약재상 가족을 만나, 그들의 데릴사위가 됐어요. 약재상의 주인인 무코다 할머니는 고린보에게 묘약 제조법*을 전수했고, 마침 눈병을 앓던 지역 당주에게 처방했더니 말끔히 치료됐죠. 덕분에 ‘안약은 고린보’라는 평판을 얻었고요.
무코다의 꿈에 지장보살이 나타나 묘약 제조법을 전수해 줬고, 고린보가 방법대로 약을 지었다고 한다.
“고린보라는 지명 속에 매우 많은 영감이 들어있었어요. 약국의 이미지, 승려의 불교적인 정신세계, 꿈속 제조법이라는 영적인 느낌, ‘숲의 향’을 의미하는 고린이라는 뜻까지요.”

류자키 쇼코는 고린쿄를 준비하면서, 고린보 지역의 유산과 역사를 살폈다. 약초 가득한 산, 이끼로 뒤덮인 바위를 발견하며, 고린보엔 고유한 향이 있다고 생각했다. Ⓒ고린쿄
사고를 언어화한다
이중 류자키를 가장 세게 잡아당긴 단어가 있었어요. 바로 ‘처방’. 호텔은 사람을 치유하고 돌보는 곳이니까요.
그럼 무엇을 처방할 수 있을까요? 류자키는 ‘증류’를 떠올렸어요. 지인의 사무실에서 마신 ‘무알콜 크래프트 진’이 계기였죠. 한 모금 마시면 꽃과 과일, 허브 향이 입안을 채웠거든요.
그때 류자키의 머리를 스친 단어가, 바로 고린의 뜻인 ‘숲의 향’이었어요. 가나자와 근처의 삼림 속 나무와 꽃을 증류해, 호텔을 물들인다면? 지역의 정서를 ‘감각’으로 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류자키가 호텔 입구에 증류소를 만든 이유예요. 지역 삼림조합에서 버들목련, 삼나무, 편백나무 같은 제철 재료를 가져와 매일 증류했죠. 추출한 정유는 아로마오일로 쓰고, 방향 증류수는 사우나의 달궈진 돌에 뿌리는 물이나 목욕물로 썼어요. 호텔 전체가 향으로 가득하도록요.

류자키 쇼코는 지역 고유의 향에, 처방이라는 단어를 합쳐 호텔에 증류소를 짓기로 했다. Ⓒ고린쿄
적절히 잊어버리고 적절히 떠올린다
고린쿄의 가장 큰 특징은, 공들여 준비한 컨셉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증류한 나무와 꽃의 종류, 향의 느낌을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죠.
대신 직원들은 스스로를 ‘마을 주민’이라 생각하고, 손님을 길 잃은 여행객처럼 대접해요. 체크인을 할 때도, 열쇠만 주는 대신 객실까지 안내해 시설을 설명하죠. 창문을 열고 호텔에 머무는 향을 맡아보라는 조언도 빼놓지 않아요.
즐길 거리를 가득 안겨주기보다, 우연히 ‘떠올리게’ 만드는 것. 류자키가 생각하는 ‘발효된 경험 설계’에요.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고 설명해도 고객에겐 잡음으로 들릴 수 있어요. 모든 이야기는 받아들일 수 있는 용량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고객이 편안한 마음으로 경험을 받아들이려면, ‘어떻게 전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해요.”

고린쿄의 직원들. 흰색의 정갈한 복장으로, 투숙객을 편안히 마주한다. 호텔이 가진 것을 곧바로 설명하기보다, 오감으로 먼저 느끼게 하는 걸 우선시한다. Ⓒ고린쿄
Chapter 5.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선택지’를 떠올려라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 류자키 쇼코는 호텔 업계의 부실한 구조를 마주했어요. 숙박은 관광업이 무너지면 순식간에 흔들리는 산업이란 걸요.
“경제 상황이 조금만 휘청이거나, 코로나 같은 재해가 덮치면 관광업은 정말 쉽게 붕괴돼요. 그래서 관광업에 숙박업이 의존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호텔을 관광에만 묶지 않고, ‘머무는 행위’로 넓히면 어떨까요? 그럼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생길 거예요.”
‘머무는 행위’에서 힌트를 얻은 호텔, 바로 류자키가 2021년 만든 일본 최초의 산후 케어 리조트 ‘호텔 카후네’예요. 일본엔 민간 산후조리 시설이 거의 없다는 데서 기획을 시작했죠.
“한국이나 대만은 산후조리원이 많지만, 일본에서 ‘산후 회복’은 여성 개인의 몫인 편이에요. 그러다 산후우울증이 오고, 부부관계에 금이 가고, 그 시기의 섭섭함이 평생 남기도 하죠.”
류자키가 이 문제에 주목한 이유, 언젠가 ‘나도 겪게 될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전 결혼은 안 했지만, 언젠가 아이를 낳고 싶어요. 그럼 저도 언젠가 산후 문제로 고통받을 수 있겠죠. 그래서 ‘나부터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싶은 대안’을 마련하고 싶었어요.”
호텔 카후네는 도심 속 시티호텔의 8개 객실에만 들어섰어요. 팬데믹으로 텅텅 빈 객실을 이용한 거예요. 여기에 조산사부터 보육사, 베이비시터까지 데려와 24시간 육아와 산모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죠.
물론 저렴하진 않아요. 1박에 약 45만원*. 그런데도 객실은 늘 예약이 가득 차 있죠. ‘가면 좋은 호텔’이 아닌, 누군가에게 ‘필요한 호텔’을 만든 게 통한 거예요.
하루 5끼 식사, 24시간 육아, 산모 미용 케어, 육아 워크숍이 포함된 요금.
누군가를 위한 기획에서 벗어나, ‘내가 절실히 필요한 것’부터 고민하기. 류자키는 그게 가장 흔들림 없는 기획이라 말해요.
“자신이 원하는 대상에 이기적일 정도로 몰두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이 궁극적으로 나와 같은 과제로 고민하는 많은 사람에게도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_320p

호텔 카후네는 호텔 인 호텔 형식으로 지어져, 8개 객실에 육아 및 산모 돌봄 특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호텔카후네
Chapter 6.상수과 변수를 곱해 정체기를 극복하라
지금 하는 일이 ‘정체됐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류자키는 조언해요. 정체기를 극복할 아이디어가 ‘상수와 변수의 결합’에서 나올 수 있다고요.
여기서 상수는 ‘자신의 중심 사업’을, 변수는 ‘사업에 결합할 요소’를 말해요. 내가 하는 일에 어떤 단어든 마구 갖다 붙여보는 거죠. 류자키는 자신의 책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했어요.
호텔 x 들판 = 초원 한가운데 위치한 이동식 호텔
호텔 x 포장마차 = 건물 입구가 포장마차인 변두리 호텔
호텔 x 경주마 = 은퇴한 경주마가 마차를 끄는 호텔
호텔 x 바닷속 x 수족관 x 초밥 = 창문으로 물고기를 보면서 초밥을 먹을 수 있는 해저 호텔
물론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와,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뒤섞여 있죠.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생각법을 ‘습관화’하는 거예요.
“이 사고법을 계속 연습하다 보면 점차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사고 회로가 만들어집니다. 이는 풀숲에 길을 내는 과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아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여러 번 왕래하면 희미하게 발자국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횟수가 늘어날수록 발상 감각이 탁월해지고, 마침내 확실한 길이 생겨 빠르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_204p
사고법만으론 부족하다고도 덧붙입니다. ‘행동’이 따라야 새로운 자극이 들어온다면서요. 그래서 최근엔 본업과 무관한 일에도 과감히 뛰어들었죠. 선박 면허를 따서 배를 운전하거나, 친구들과 산장을 예약한 뒤 후지산에 올라가는 식으로요.
“아무리 창의적인 사고 습관이 있어도, 매일 침대에서 뒹굴며 넷플릭스 보는 생활이 길어지면 새로운 인풋을 쌓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경험을 의식적으로 쌓다 보면, 당장은 아니어도 3년, 5년 뒤에 새로운 아이디어로 돌아올 수 있다고 믿어요.”

류자키 쇼코가 제안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현실로 꺼내는 과정.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면, 오랜 시간 붙잡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이 과정을 거쳐 호텔의 컨셉을 개발했다. Ⓒ크리에이티브 점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