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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가 우리에게 : 착하게 살면 손해일까요? 맹자가 말하는 인간다움

한이룸

이커머스

2025. 6. 13.

여러분은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요즘 전 그렇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몇몇 뉴스를 보면, 이기심을 넘어 선함 자체가 없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런 제 생각과 다르게 “사람은 태생적으로 남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존재”라 주장한 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기원전 4세기에 활동한 맹자입니다.

맹자는 인간의 ‘공감 능력’을 믿은 인물입니다. 흥미로운 건 그 역시 지금처럼 전쟁이 벌어지고, 다툼 많은 세상을 살았다는 거예요. 즉, 아름다운 장면만 보면서 살지 않았던 겁니다.

혼란의 시기를 살던 맹자가 말한 선한 마음,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의 사상을 10여 년간 연구한 김선희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가 지금 우리가 맹자에게서 배울 점을 들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김선희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

맹자는 죽을 때까지 인간을 향한 희망을 거두지 않은 철학자입니다. 그는 늘 말했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아파할 수 있는 게 인간”이라고.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맹자는 ‘선한 마음의 씨앗’이 인간의 본성에 심어져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즉, ‘성선설’에 가까운 주장을 펼쳤어요.

사실 이상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맹자의 메시지가 팍팍해진 지금의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삶의 지혜가 될 실마리를, 『맹자』*를 읽어 보며 전해보겠습니다.

  • 맹자가 남긴 기록을 두고 역자마다 해석 차이가 있어, 본문의 해석은 『맹자』(조수익, 박승주 공역)를 기준으로 했다.

Chapter 1.맹자는 ‘세 번의 이사’보다 ‘마음의 씨앗’을 우선했다

먼저 우리에게 익숙한 맹자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그의 유명한 일화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떠올리는 분이 많을 겁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이야기죠.

글로 남아 있는 일화는 아래와 같습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거처를 이웃에 따라 택했다. 처음에는 묘지 근처에 살았는데, 맹자가 장례 흉내를 내며 놀자, 어머니가 말하였다. ‘이곳은 내가 살 곳이 못 된다.’

한마디로 “아이가 자라나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입니다. 이 일화는 부모님들이 아이를 위해 더 나은 학교, 환경을 찾아 이사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죠.

사실 여기엔 반전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허구’라는 거예요. 심지어 맹자와 무관하기까지 합니다.

맹모삼천지교는 한나라 유학자 유향이 기원전 1세기경, 가정 교육의 중요성을 알리는 수단으로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이때 주인공을 맹자로 세운 것뿐이죠. 사실상 소설인 겁니다.

제가 알고 있는 맹자가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조금은 다른 주장을 펼칠 겁니다. 사람이 자랄 때 환경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마음에 심어진 선함의 씨앗’부터 들여다봐야 할 거라고요.

그럼 궁금해집니다. 맹자가 주장하는 선함의 씨앗은 어떤 것일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맹자는 ‘우물에 다가가는 아이’에 비유하며 설명합니다.

맹자의 모습. 맹모삼천지교는 교육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허구의 이야기로, 실제로 맹자와 무관하다. 맹자는 인간 본성의 ‘선한 씨앗’을 살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타이베이국립고궁박물관

Chapter 2.우리는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그냥 두지 않는다

맹자는 “남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은 본능적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게 된 상황’을 떠올려 보자고 제안하죠.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두 돌쯤 된 아기가 우물을 향해 기어가고 있습니다. 우물의 턱이 낮아 아기가 턱을 짚는 순간, 아기는 우물에 빠질 겁니다. 주변에 아이를 돌보는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나 혼자 보고 있다면?

맹자는 그때 사람이라면 떠올릴 생각을 다음 구절에서 설명합니다.

“지금 어떤 사람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면, 누구나 깜짝 놀라고 측은해하는 마음이 드니.”_『맹자』,「공손추(公孫丑)」상편 제3장

즉, 위험에 빠진 아이를 보면 일단 놀라고 걱정하는 마음부터 들 거라는 겁니다. 또 할 수 있다면 당연히 우물에 빠지지 않도록 아이를 막아서겠죠. 이런 마음에서 나온 행동을 맹자는 ‘선함의 씨앗’이라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궁금해집니다. 우리가 꼭 순수한 마음만으로 누군가를 돕는 건 아니니까요. 돕는 찰나에도 이 행동에서 오는 이익을 따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맹자의 생각은 다릅니다. ‘위험에 빠진 아이를 구하겠다’는 선한 본성이 모든 계산을 앞선다는 거예요.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해서도 아니며, 그렇게 함으로써 고을 사람들과 친구들에게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며, 그런 어린아이를 구하지 않았을 경우에 듣게 될 비난을 싫어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_『맹자』,「공손추(公孫丑)」상편 제3장

풀어 설명하면 이런 겁니다. 우리는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가 누군지 몰라도 구합니다. 구하는 순간만큼은 꼭 칭찬 또는 비난받을 상황을 고려하지 않죠.

이건 아이를 구할 때만 해당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길에 누군가 쓰러져 있는 걸 보면 일단 생각합니다. ‘119를 불러야 하나’, ‘괜찮냐고 물어야 하나’와 같은 것들이죠. 물론 행동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떠올리는 첫 생각은 남을 향한 안타까움이라는 거예요.

이런 분석과 함께 맹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그 타고난 재질인 정은 선하다고 할 수 있으니, 이것이 내가 이른바 선하다는 것이네. 불선을 하는 것은 타고난 재질의 죄가 아닐세.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을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으며 (...).”_『맹자』,「고자(告子)」상편 제11장

측은지심惻隱之心. 맹자가 주장한 선함의 근거입니다. 직역하면 슬퍼하고 근심하는 마음이고, 풀어 쓰면 타인의 고통에 안타까워하는 마음이죠.

맹자는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본다면 누구나 즉각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하며, 이를 인간 본성이 선하다는 단서라 말한다. ⓒEBS다큐 유튜브

Chapter 3.우리는 왜 선한 본성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

측은지심을 말하면 많은 이들이 묻습니다. 이 주장은 너무 이상적이지 않느냐고요. 특히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은 현실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습니다.

맹자도 이런 비판에 부딪쳤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단계를 설명했어요. 모든 사람에게 선한 마음의 씨앗이 있다는 걸 아는 게 1번이고, 그 씨앗이 싹을 틔울 환경을 만드는 게 2번이라고.

“풍년에는 자제들이 대부분 선해지고, 흉년에는 자제들이 대부분 포악해지니, 타고난 재질이 그처럼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빠뜨리는 것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_『맹자』,「고자(告子)」상편 제11장

맹자는 당시 선한 마음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의 조건을 배부름과 안전함에서 찾았습니다. 쉽게 말해 잘 먹고 잘 자면 타인에게 더 온화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럼, 질문이 듭니다. 과거보다 풍족한 시대를 사는 우리는 왜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을 발휘하지 못하는 걸까요?

맹자는 그 이유를 ‘내 것부터 챙겨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찾았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가 살았던 기원전 4세기에도 이 메시지가 팽배했다는 겁니다.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조언을 건네던 맹자에게 양혜왕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느냐”고. 사실 통치자라면 충분히 할 법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맹자의 답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하시면, 대부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할 것이니, 사(하급 귀족)와 서인(백성)들은 ‘어떻게 하면 내 몸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이익을 취하려고 하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_『맹자』,「양혜왕(梁惠王)」상편 제1장

즉, 맹자는 내 나라, 내 집안, 내 몸만 이롭게 하려는 태도를 지적한 겁니다. 나의 이익만 추구하다 보면 경쟁을 피할 수 없고, 그 끝은 ‘불안한 사회’일거라 경고하죠.

안타깝게도 맹자의 경고는 현실이 된 듯합니다. 맹자가 살던 때보다 더 팍팍한 사회가 됐죠. 그때보다 기술도, 자원도 늘었지만, 경쟁은 더 심해졌으니까요.

자연스레 서로를 향한 믿음도 깨졌습니다. 선한 마음으로 서로를 돕기보단, 나를 지키기 위해 감시하고 경계하는 사회가 됐죠.

이렇게 분석하고 끝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맹자는 끝까지 인간을 향한 희망을 품은 철학자라 불렀죠. 그는 거친 환경 속에서도 우리가 선한 마음을 키울 방법을 제언했습니다.

롱블랙과 인터뷰하는 김선희 교수. 김 교수는 ‘나의 이익만을 좇으면 경쟁을 피할 수 없고, 결국 경계와 의심에 힘을 소진하는 불행한 사회가 될 것’이라 말한다.

Chapter 4.문을 잡아주는 배려에서 선한 변화는 시작된다

호연지기浩然之氣. 맹자가 말한 선한 마음을 스스로 기르는 법입니다.

직역하면 크고 넓게 퍼진 의로운 기운이에요. 물론 모호한 표현이죠. 쉽게 풀면 ‘올바른 행동을 몸에 배게 하는 것’입니다. 실은 맹자도 이 단어를 한 문장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자와 이렇게 대화를 나눴죠.

“선생님께서는 무슨 장점이 있으십니까?”

이 대목에서 주목할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축적’이에요. 호연지기로 표현된 선한 마음을 기르려면 의로운 일을 많이 쌓아야 한다는 거예요. 즉, 좋은 일을 ‘하고 또 하라’는 겁니다.

뻔한 조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어요. 이 단순한 조언을 행동으로 꾸준히 옮기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걸요.

그래서 저는 좋은 일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건물 들어갈 때 닫히려는 문을 잡아주고 뒷사람에게 웃으며 넘겨주는 것. 문을 넘겨받은 이가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왠지 기분이 더 좋아집니다. 그 기분이 또 다른 좋은 행동으로 이어지게도 하죠.

선한 행동은 하면 할수록 몸에 뱁니다. 한두 번 닫히는 문을 잡아주다 보면, 의식하지 않고도 다른 이의 이동을 배려하게 돼요. 길의 쓰레기를 한두 번 줍다 보면, 자연스레 집과 일터의 공간도 깔끔하게 만들 수 있죠.

중요한 건 이걸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물꼬만 터준다면, 물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를 테니까요. 작게 시작만 한다면 우리의 선함은 자연스레 더 드러나는 거죠.

“사람의 (본)성이 선함은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과 같으니,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물은 낮은 데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맹자는 신뢰를 회복하려면 ‘호연지기’, 즉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몸에 습관처럼 배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Unsplash

Chapter 5.우리 모두는 서로 빚을 지며 살고 있다

이렇게 맹자가 외친 ‘선한 마음의 씨앗’엔 우리가 혼자 살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서로 도울 수밖에 없는 세상이기에 선한 행동을 쌓으며 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거죠.

하지만 삐딱한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기술이 압도적으로 발전한 지금, 혼자서 모든 걸 해내며 살 수는 없을까요?

맹자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지금 시대를 엿보기라도 한 듯, 이렇게 탄식했어요.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義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려두고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찾을 줄을 모르니, 안타깝다. 사람이 닭과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을 알지만,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을 줄을 모른다.”_『맹자』,「고자(告子)」상편 제11장

여기서 맹자가 언급한 ‘인’과 ‘의’라는 단어를 주목해 볼까요. 인은 다른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고, 의는 옳고 그름을 따르는 마음입니다. 두 가지를 놓치면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는 거라고 맹자는 주장합니다. 인간답게 살려면, 필연적으로 남과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죠.

사람은 혼자서 모든 걸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모두가 서로에게 빚을 지고 살고 있죠. AI도, 내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모든 도구도 다른 누군가가 만든 것입니다. 먹고사는 모든 일에도 다른 이의 손길이 닿아있죠.

그런 점에서 맹자는 ‘내가 모든 걸 다했다’는 생각에 빠진 사람들에게 일침을 놓습니다. ‘닭과 개는 찾아도 삶의 진정한 가치는 쉽게 놓아버리는 태도’를 지적하는 거예요.

그래서 맹자는 몇 번이고 “선함을 일상에서 보이는 사람이 되자”고 외쳤습니다. 이걸 해내는 사람은 ‘군자’라고도 불렀죠. 이들이 세상을 조금씩 바꿀 거라면서요.

“군자가 지나가면 교화되며, 마음에 간직하고 있으면 신묘해진다. 그러므로 위아래로 천지와 함께 흐르니, 군자가 어찌 조금만 보탬이 있다고 하겠는가?”_『맹자』,「진심(盡心)」상편 제13장

주변을 둘러보면 맹자가 소개한 군자는 꽤 가까이에 있습니다. 100원이 부족해 과자를 사지 못한 초등학생에게 선뜻 자기 돈을 더해 계산한 편의점 알바생, 버스에서 잠든 아이가 편히 내릴 수 있도록 기다리는 기사님, 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힘차게 인사하는 카페 사장님까지.

사실 많은 이들이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요즘입니다. 그럴수록 저는 “모든 이가 선한 마음의 씨앗을 타고났다”는 맹자의 주장을 되짚곤 합니다. 그리고 다짐해요. 나부터 선한 행동을 하나만 실천해 보자고. 저는 이 노력이 사회를 조금씩 나아지게 할 거라고, 맹자처럼 강조하고 싶습니다.

맹자는 타인을 아끼고 마음이 알고 있는 옳고 그름을 따르는 것이 삶의 가치라 말한다. 인간은 더불어 사는 존재임을 상기하는 그의 말은 23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출처미상

고백하자면, 저는 지금도 맹자의 주장은 너무 이상적이라 느낍니다. 하지만 오늘 노트를 정리하며 결심한 게 하나 있습니다. 모두가 선한 본성을 보이는 사회가 오지 않을 거라고 비판하는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변화부터 만들어 보자고요.

제 다짐을 돕기 위해 스스로 묻고 싶은 질문을 세 가지 적었습니다. 여러분도 내 안의 선함을 돌아보고 싶다면, 다음의 질문을 던져 보시길 바랍니다.

  1. 타인의 고통 앞에서 나는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인가요?

  2. 작은 배려 하나로 내 안의 의로움을 자라게 할 준비가 돼 있나요?

  3. 내가 누리는 일상에 타인의 노고가 깃들어 있음을 기억하고 있나요?

혹시 이 노트를 읽으며 문득 감사나 위로를 전하고픈 이가 떠오르셨나요. 가벼운 안부와 함께, 24시간 무료 노트 링크를 전해보면 어떨까요.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