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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 : 2025년 출발선 앞에 선 그대에게

한이룸
이커머스
2024. 12. 31.
Chapter 1.무라카미 하루키도 서른셋부터 달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서른셋이 되던 1982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그가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群像신인상*을 받으며 데뷔한 지 3년 만이죠.
일본 월간 잡지 『군조』에서 수여하는 신인 문학상으로, 일본 작가의 등용문이 된다.
달리기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어요.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아내와 함께 운영하던 음식점을 접고, 전업 소설가로 살아보기로 했거든요.
그전까지 그는 온종일 자리에 앉아서 원고를 썼어요. 체중이 늘고 체력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하루에 담배를 60개비씩 피워, 손가락이 누렇게 될 정도였다고 해요.
그럼 왜 달리기를 선택했느냐고요? 이 역시 이유는 단순해요. 첫째, 혼자 해도 돼서. 둘째, 특별한 준비물이 필요하지 않아서.
“달리는 것에는 몇 가지 큰 이점이 있었다. 우선 첫째로 동료나 상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특별한 도구나 장비도 필요 없다. 특별한 장소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달리기에 적합한 운동화가 있고, 그럭저럭 도로가 있으면 마음 내킬 때 달리고 싶은 만큼 달릴 수 있다.”_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60~61p
그는 오전 5시에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마신 뒤 3~4시간은 원고 쓰기에 집중했어요. 오후엔 작업실 근처 니혼 대학의 트랙이나 도로에서 1~2시간씩 뛰었습니다. 그리고 밤 10시 전에는 꼭 잠자리에 들었죠.
처음부터 이런 루틴을 만든 건 아니었어요. 당연히 달리기 위한 근육이 잡혀 있지 않았거든요. 초기엔 20분만 달려도 ‘헉헉’거리는 수준이었어요. 좌절감이 밀려올 때마다 그는 속도나 거리가 아니라 ‘무조건 달리는 것’에만 집중했다고 해요.
“그러나 계속해서 달리는 사이에 달리는 것을 몸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에 따라 거리도 조금씩 늘어갔다. (…)
달리기를 시작하니, 담배도 끊을 수 있었어요. ‘더 달리고 싶다’는 욕구가 금단증상을 극복하게 했거든요. 이어 그 욕구는, 식습관도 바꿨어요. 술을 줄이고 야채를 많이 먹기 시작했죠. 달리기를 시작하자, 삶 전체에 ‘건강한 사이클’이 돌아가기 시작한 거예요.
이 모든 생활은 그가 서른셋을 넘겼을 때 시작됐어요. 전업 소설가이자 러너로의 삶 모두 30대 중반에 열린 거죠.
“서른세 살. 그것이 그 당시 나의 나이였다. 아직은 충분히 젊다. 그렇지만 이제 ‘청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
이렇게 시작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 생활, 40년 가까이 이어졌어요. 소설가로서의 삶과 함께했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1985)』를 시작으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2023)』까지*, 12권의 장편소설을 달리기와 함께 했어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1982년 『양을 쫓는 모험』을 집필한 직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전업 소설가의 삶을 결심한 서른세 살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사진은 1983년 아테네에서 마라톤까지, 42km를 완주한 후 쉬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Kageyama Masao
Chapter 2.가장 확실한 ‘침묵의 시간’을 얻는 법
궁금해져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 루틴은 어떨까요.
① 일주일에 60km를 달린다.② 일주일 중 하루는 쉰다.③ 무리하지 않되, 계속한다.
하루에 약 10km씩 총 6일. 일주일 중 하루는 ‘쉬는 날’로 정합니다. 비가 오거나 도저히 시간을 내기 어려운 날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에요. 너무 피곤해서 정말 달리기 싫은 날도 있기 마련이죠. 일종의 출구를 만들어 놓는 거예요.
이 원칙을 토대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리듬을 만들었어요. 강박적인 달리기보다 더 중요한 게 리듬이라고 할 정도죠. 그는 이런 태도가 글을 쓸 때도 적용된다고 말해요.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달리면서 글쓰기에 대한 영감을 얻는 건 아닐까 궁금해져요.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릴 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달리는 시간은, 혼자만의 ‘침묵’을 지키는 시간에 가까워요. 1시간 남짓 말없이 달리며, 머릿속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거예요. ‘정신 위생’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했죠.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인 임경선 작가도 이 말을 몸소 경험했다고 전했어요. 임 작가는 2020년 팬데믹 때부터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달리기 시작 후 8kg을 감량하며, 몸이 마치 ‘조각되듯’ 단단해지는 걸 경험했어요.
글을 쓰다 잘 풀리지 않을 땐, 자리를 박차고 달리러 나갔습니다. 혼자서 달리고 오면 머리가 맑아졌거든요. 그는 이 시간이 ‘고독 속에서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라고 설명했어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건전한 몸에서 좋은 글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가 처음 소설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1980~1990년대의 일본에선, 작가들은 보통 밤새 술을 마시고 새벽에 작업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는 ‘매일 달리는’ 리듬감을 만들었다. 장편소설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리하지 않고, 날마다 쓰는 힘을 길렀다. 사진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업 책상. ⓒ무라카미 하루키 공식 사이트
Chapter 3.장거리형 근육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
무라카미 하루키는 꾸준히 달리며 ‘마라톤 완주’라는 성과를 내기도 했어요. 1983년 7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오리지널 마라톤 코스* 완주를 시작으로, 42.195km 풀코스에 37년간 매년 한 번씩은 출전했죠.
마라톤이 유래된 그리스의 달리기 코스로,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의 구간을 말한다.
마라톤을 앞둔 시즌엔, 그가 꼭 지켰던 원칙이 있어요. 바로, ‘이틀 이상 쉬지 않는다’는 것. 근육과의 적절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었죠.
“설사 절대적인 연습량은 줄이더라도, 휴식은 이틀 이상 계속하지 않는 것이 트레이닝 기간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규칙이다.”_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13p
몸이 둘이어도 모자랄 만큼 바쁜 시기에도 그는 이 원칙대로 달렸다고 해요. 그러면서 그는 2005년 9월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당시 그는 단편집 『도쿄기담집』 출간 기념 인터뷰를 하면서 다른 책의 교정을 봐야 했어요. 동시에 이듬해 발행될 책의 서문도 써야 했죠. 글뿐 아니라 사무실 비서도 채용해야 했고 강연까지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무슨 일이 있어도 달리는 것을 그만둘 수는 없다”고 했죠.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_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15~116p
조금 쉬면 편할 텐데, 왜 그는 달리기를 놓지 않았을까요? 의외의 답을 내놓아요. “계속 달려야 할 이유가 아주 조금밖에 없기 때문”이죠. 한번 쉬기 시작하면, 다시 뛰러 나가기 더욱 어려울 테니까요.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_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16p
임경선 작가 역시, 뛰기 싫은 마음을 이겨냈을 때 생기는 힘이 강력하다고 말했어요. ‘견고한 근성’이라고 비유했죠.
“일관되고 꾸준한 달리기는 ‘견고한 근성’을 키워줍니다. 그리고 그건 무척 강력한 힘을 발휘하죠. 일단 꾸준히 쌓으면, 내가 뭔가를 시도할 때 큰 디딤돌이 되어줍니다.

오리지널 마라톤 코스에 도전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습. 그는 시합을 앞둔 시즌엔 이틀 이상 휴식하지 않았다. ⓒKageyama Masao
Chapter 4.너무 힘들다고? ‘기계가 됐다’고 생각해 보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단순히 42.195km 마라톤에만 나서지 않았어요. 그보다 훨씬 긴 거리의 마라톤에 출전하며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을 하기도 했죠.
1996년 6월, 그는 홋카이도 북부에서 열리는 사로마サロマ 호수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했어요. 뛰어야 할 거리가 풀코스의 두 배가 넘는, 100km였죠.
그 역시 한 번에 42km보다 더 많이 달리는 건 처음이었다고 해요. 마치 “미지의 망망대해로 들어서는 느낌이었다”고 해요. 당시 55km 휴식 지점에 닿아 10분간 쉬었다 다시 달리기 시작했을 때의 기분을 그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자동차의 사이드브레이크를 힘껏 당긴 채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이 뿔뿔이 흩어져 당장이라도 해체되어 버릴 것 같다. (…)
한동안 그는 뒤따라오던 주자들에게 추월당했습니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러너가 그를 앞서기도 했죠. ‘아직 절반밖에 안 달렸는데, 100km를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계속 피어올랐어요.
그럼에도 그는 견디며 발을 움직였어요. 이때 그는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하나의 순수한 기계다. 기계니까 아무것도 느낄 필요가 없다. 오로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라고 수없이 반복했다고 해요.
“(머릿속에서 되뇌는 일을) 글자 그대로 ‘기계적’으로 반복한다. 그리하여 자기가 감지하는 세계를 되도록 좁게 한정하려고 애쓴다.
그렇게 20km를 견디며 내달리자 변화가 일어났어요. 75km 지점에서 뭔가 몸에서 ‘슥’ 하고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난생처음 겪는 감각이었죠. 그는 이때부터 몸이 ‘자동조종’ 상태에 들어간 것 같았다고 소개했어요.
“그 뒤부터는 아무것도 특별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도록 하자’라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없어졌다, 라는 말이다. (…) 어떤 힘이 나를 자연스럽게 앞으로 이끌어주었다.”_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72~173p
그 뒤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기보다 앞에 있던 200명을 추월했습니다. 결국 오후 4시 42분, 100km 결승선을 무사히 통과합니다. 출발한 지 꼬박 11시간 42분 만이었죠.
“(…) 그 나름의 성취감 같은 것이 이제야 생각난 듯이 가슴속에 북받쳐 오른다. 그것은 ‘위험스러운 일을 자진해서 맡아 그것을 어떻게든 극복해 나갈 만한 힘이 내 안에도 아직 있었구나’하는 개인적인 기쁨이며 안도감이었다. 기쁨보다는 안도감 쪽이 오히려 강했는지도 모른다.”
동시에 그는 ‘있는 줄도 몰랐던’ 한계에 대한 기준이 허물어지는 경험도 했어요. ‘나는 100km를 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무의식에 있었단 걸 발견한 거예요.
“몸속에 견고하게 묶여 있던 매듭 같은 것이 점점 느슨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것이 내 안에 존재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었지만.”_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80p

1996년 6월, 그는 풀코스의 2배가 넘는 100km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했다. 11시간 42분 만에 완주하며, 한계를 극복하는 경험을 했다. ⓒMatsumura Eizo
Chapter 5.‘막판 스퍼트’를 위한 힘을 남겨두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 인생을 돌아보며, 새해의 다짐을 복잡하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저 매일 꾸준하고 성실하게 하기’를 마음에 새겼죠.
한편으로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새해에 세웠던 계획이나 결심했던 마음이, 연말에 모두 잊힌 적이 많았거든요. 이 실수를 반복하다 보니, 뭔가를 다짐하는 것조차 망설여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막판 스퍼트’를 위한 힘을 남겨두라고 조언합니다. 결승선을 앞두고 전력 질주를 할 수 있도록 체력을 조절해 보라는 거예요.
물론 체력 분배가 쉬운 건 아니에요. 처음 시작할 때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힘이 과하게 들어가지 않도록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거든요. 그는 이걸 ‘나만의 미학’이라고도 표현했죠.
“내가 항상 마음에 두고 실천하는 건, 마지막 400m를 전력 질주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든 레이스라도, 어떤 컨디션이든지 간에 그 순간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로 전력 질주합니다.

1994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의 모습. 무라카미 하루키가 남색 민소매 유니폼을 입고 뛰고 있다. 마라톤에서 그는 결승선을 400m 앞두고 전력으로 질주한다고 말했다. ⓒMatsumura Eizo
기죽지 말고, 일단 뛰어보세요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렇게 노력해도 늘 최고의 결과를 내는 건 아니에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마주해야 할 때도 있죠.
2020년 2월에 나선 교토 마라톤에선, 완주를 못 하기도 했어요. 71세 러너였을 때의 일이었죠. 그럼에도 그는 같은 해 7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계속 달리고 있다”고 했어요. “지고 있는 전쟁에서 싸우고 있다”면서요.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마음이 있거든요. 바로, ‘기죽지 않는 마음’이죠.
“이것만은 꽤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다. ‘좋아, 이번에는 잘 달렸다’라고 하는 느낌이 회복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앞으로도 기죽지 않고 열심히 마라톤 풀코스를 계속 달릴 것이다, 라는 점이다.”_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227p
기죽지 않는 마음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들과 경쟁하는 데 급급하지 말라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조언합니다. 누가 빠르고, 누가 멀리 갔는지 들여다볼 게 아니라, 그저 내 몸이 허락하는 한 신발 끈을 매어보라는 거죠.
“신체가 나에게 허락하는 한 가령 꼬부랑 영감이 되어도, 가령 주위 사람들이 ‘무라카미 씨, 이제 슬슬 달리는 것은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제 나이도 먹었고’라고 충고해도 아마도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달릴 것이다.”_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227p

‘기죽지 않는 마음’으로 달릴 때, 비로소 남들이 아닌 자기 자신과 경쟁할 수 있다. 사진은 하와이에서 뛰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습. ⓒPatrick Fraser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