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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로프레스 : ‘왜 집 커피는 맛없을까?’ 6만원 주사기의 커피 혁명

한이룸
이커머스
2026. 1. 27.
6만원짜리 플라스틱 도구가 ‘3000만원 넘는 에스프레소 머신’의 존재감을 뛰어넘는다. 이 말이 믿겨지시나요? 허무맹랑한 소리 같겠지만, 커피에 진심인 사람들 사이에선 또 다른 표준으로 통하는 도구가 하나 있어요.
주인공은 바로 에어로프레스Aeropress. 주사기를 닮은 이 물건은, 원두와 물을 넣고 피스톤을 누르는 단순한 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해요. 심지어 한 골수팬은 ‘월드 에어로프레스 챔피언십World Aeropress Championship, 이하 WAC’이라는 경연까지 만들었습니다. 매년 70개국에서 7000명이 참여하는 커뮤니티로 성장했죠.
단순한 도구는 어떻게 탄탄한 팬덤과 문화로 넓어진 걸까요? 2025년 12월 서울에서 열린 WAC 현장에서 남다른 에너지를 경험했다는 임 모니카 이벤트 프로듀서가 그 배경을 짚어봤습니다.
임 모니카 이벤트 프로듀서
서울 성수동의 대형 스튜디오, 문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디제잉 비트와 함성은 클럽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사이로 원두를 분쇄하는 소리와 고소한 향이 어우러져 독특한 현장감을 만들고 있었죠.
더 인상적이었던 건 심사 방식이었습니다. 바리스타들이 3~4분 만에 에어로프레스로 커피를 내리면, 전주연 모모스커피 대표나 김병기 프릳츠 대표 같은 심사위원이 블라인드 심사를 진행했죠. 이들은 커피를 음미하더니, ‘하나, 둘, 셋’ 구호에 맞춰 가장 훌륭한 한 잔에 숟가락을 가리켰어요.
궁금했습니다. 단순한 추출 도구가 어떻게 문화를 만드는 지를요. 도구를 발명한 앨런 애들러Alan Adler부터 WAC 총괄 디렉터 팀 윌리엄스Tim Williams, 에어로프레스 애호가이자 한국 챔피언인 전동환 바리스타를 각각 만나 ‘자생적으로 확장하는 브랜드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Chapter 1.중력 대신 압력을 쓰는 ‘커피 내리는 주사기’
먼저 에어로프레스라는 도구가 어떻게 커피를 내리는지 잠깐 짚어 볼까요?
우선 주사기 형태의 몸통 안에 분쇄한 커피를 넣는 게 시작입니다. 다음으로 뜨거운 물을 부은 뒤 섞어야 하죠. 이어 피스톤을 끼워 20~30초 동안 컵을 향해 꾹 누르면, 공기 압력이 커피를 필터 밖으로 추출해요.
이 원리는 우리가 아는 ‘핸드드립 커피’와 다릅니다. 드립은 전적으로 ‘중력의 힘’에 의존해요. 커피 가루 사이를 물이 통과해 떨어지는 걸 기다리는 게 드립의 핵심이잖아요? 하지만 이 기다림엔 단점이 있죠. 물과 커피가 닿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원치 않는 쓴맛과 잡미도 뽑힐 확률이 높아지거든요.
에어로프레스는 이런 추출 시간을 크게 줄였어요. 공기 압력이 물을 커피 입자 사이로 빠르게 통과하게 만들거든요. 잡미가 섞이기 전에 원두 고유의 향미만 추출하는 거죠.

에어로프레스는 2005년 발명가이자 사업가 앨런 애들러가 발명한 수동 커피 추출 도구다. 주사기처럼 압력을 이용해 커피를 뽑아내는 직관적인 구조가 특징이다. Ⓒ에어로프레스
변수를 통제해 만드는 ‘수만 가지 레시피’
사실 이렇게만 설명하면 ‘시간을 줄였다’는 것 이상으로 매력을 느끼기 어려울 거예요. 그보다 더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커피를 내리는 이들이 ‘변수를 통제하는 재미’가 있다는 점이죠.
에어로프레스는 원두의 무게부터 물의 온도, 압력의 힘 같은 미세한 차이로 커피의 맛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① 원두를 가늘게 갈아,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누르면? → 진한 에스프레소 스타일의 농축액
② 원두를 중간 굵기로 갈아, 30초 동안 천천히 누르면? → 화사한 향미와 깔끔한 끝맛
③ 80~85도의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2분 넘게 우려내면? → 단맛과 감칠맛을 극대화
이렇게 창의성과 도전 욕구를 건드리는 에어로프레스에 바리스타들은 열광하기도 해요. 2025년 WAC의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전동환 바리스타는 “애호가들에게 이보다 재밌는 놀잇감이 없다”고도 표현할 정도였죠.
Chapter 2.꼬마 발명가, 대학 대신 독학을 고르다
자연스레 궁금해집니다. 에어로프레스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이 도구를 만든 건 미국 디트로이트 출신 여든여덟의 발명가, 앨런 애들러에요. 평생 40개의 발명품 특허를 보유하기도 했죠.
그 싹은 일곱 살 때부터 나타났습니다. 하루는 집 근처 기찻길에 못을 붙여둔 뒤,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렸어요. 기차 때문에 납작해진 못을 갈아 ‘미니어처 칼’을 만들고, 친구들에게 50센트씩 받고 팔았죠. 물건의 모양을 바꿔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재미를, 그때부터 깨달은 셈이었어요.
앨런의 어머니도 그의 훌륭한 스승이었어요. 아들에게 직접 수도꼭지를 갈거나 전기 플러그 고치는 법을 전수했죠. 덕분에 앨런은 이웃집의 고장 난 것들을 고쳐주는 ‘꼬마 수리공’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대학에 가는 대신, 독학으로 트랜지스터* 원리를 깨우쳐 ‘전자제품 개발 컨설턴트’로도 일했죠.
전류의 크기를 조절하는 반도체 소자. 전자 신호와 전력을 증폭, 스위칭하는 데에 쓰인다.
“일상에서 뭔가를 보면 곧장 개선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왜 이렇게 생겼지?’라는 생각에서 잠시 머물다, ‘이걸 어떻게 더 잘 만들까’를 고민했죠. 그러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실행에 옮겼어요.”_앨런 애들러 에어로프레스 창업자
그는 발명품으로 사업화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1984년 공기역학 이론을 접목한 원반 장난감 에어로비Aerobie를 내놓았어요. 평범한 원반보다 훨씬 멀리 날아가 기네스 기록까지 세운 장난감이었죠. 전 세계에서 1000만 개 넘게 팔렸다고 합니다.
“열세 살 때부터 요트를 즐겼고, 요트를 디자인하고 싶어 공기역학 이론 책까지 읽었어요. 커서는 이걸 장난감에 적용하면 재밌을 거라 생각했죠. 더 멀리 날아가는 공이나 원반 같은 것들이요.”_앨런 애들러 에어로프레스 창업자, 인터뷰에서

앨런 애들러는 40개의 특허를 보유한 발명자이자 사업가다. 원반 던지기용 장난감 에어로비를 개발했고, 이후 장난감 회사를 차려 사업을 이어나갔다. Ⓒ앨런 애들러
집에서도 커피 한 잔 맛있게 마실 순 없을까?
그가 2004년에 떠올린 두 번째 발명품이 바로 에어로프레스입니다. 사실 그는 커피에 대해 잘 몰랐다고 해요. 그럼에도 커피 추출 도구를 떠올린 건, 회사 야유회에서 영업부장의 아내와 나눈 사소한 대화 때문이었습니다.
“기존의 커피 메이커는 불편하다는 이야길 나눴어요. 여러 잔을 만드는 걸 기준으로 설계됐거든요. 대신 ‘딱 한 잔의 커피’를 맛있게 마실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죠. 그때 발명가로서 호기심이 발동했어요.”_앨런 애들러 에어로프레스 창업자, 인터뷰에서
문제는 또 있었어요. 보통의 커피 메이커는 추출 과정을 맘대로 제어할 수 없었어요. 특히 중력에 의존하는 드립 커피는, 물 붓는 속도나 물줄기에 따라 추출 시간이 매번 달라졌거든요. 길어지면 쓴맛을, 짧아지면 밍밍한 맛을 냈죠.
앨런은 ‘중력 대신 압력을 쓰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물과 원두 가루를 먼저 섞고, 원하는 만큼 압력을 가해 추출 시간을 ‘통제’해 보자는 생각이었죠. 단 한 잔의 맛있는 커피를 위해서요.
1년간 차고에서 실험을 반복한 끝에 2005년 그는 주사기 모양의 완성품을 들고 나왔습니다. 공기Aero로 원두가루와 물을 꾹 눌러준다Press는 뜻의 ‘에어로프레스’라는 제품이었죠. 당시 가격은 약 29.95달러(약 4만3480원)였어요.
“에어로프레스는 쓴맛이 덜하면서 향미를 지켰어요. 짧은 시간과 강한 압력으로, 필요한 맛만 뽑은 결과였죠. 친구를 집에 초대해 커피를 내어줬더니, 그가 말하더군요. ‘앨런, 이거 엄청 팔릴 것 같아.’”_앨런 애들러 에어로프레스 창업자, 인터뷰에서
Chapter 3.“장난감 같다”는 조롱을 기회로 삼다
에어로프레스는 2005년 9월, 시애틀 커피 무역 박람회 ‘커피 페스트Coffee Fest’에서 처음 공개됐어요. 흥미를 보인 대중과 달리, 커피 전문가들의 반응은 냉랭했어요. “코끼리에 놓는 거대 주사기 같다”는 조롱도 들었죠.
“진지하지 않은 목소리를 저는 그냥 무시했어요. 오히려 쏟아지는 관심을 이용해 상황을 역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죠. 더 많은 사람에게 제품을 알릴 계기로요.”_앨런 애들러 에어로프레스 창업자, 인터뷰에서
앨런은 조롱을 역이용해 ‘제품을 검증할 무대’를 늘려갔어요. 먼저 미국의 이름난 커피 비평가들에게 제품을 무상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마음껏 써보고 자유롭게 평가해달라”면서요. 대신 그 결과를 온라인에 투명하게 공개해달라고 부탁했죠.
동시에 그는 커피라는 단어가 붙은 온라인 포럼에 전부 참여했어요. 일례로 그는 커피 애호가들이 모인 커뮤니티 ‘커피 긱Coffee Geek’에서 직접 유저의 질문에 답하고 원리를 설명했어요. 그 정성에 사람들이 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저들은 그가 남긴 글에 4년 넘도록 토론을 이어가기도 했죠.
결정적인 한 방은 2006년, 한 무역 박람회에서 열린 블라인드 테스트였어요. 당시 앨런은 부스를 내고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인텔리젠시아Intelligentsia’ 대표 더그 젤Doug Zell을 초대했어요. 1000만원 넘는 고가 머신과 에어로프레스로 뽑은 커피 맛을 비교하게 했죠.
더그는 에어로프레스에 크게 감명받았어요. “제품을 우리 매장에 팔고 싶다”고 제안했죠. 이 사건은 커피 업계에 파장을 불러일으켰죠. “몇 만원짜리 수동 커피 추출 도구가 인정받았다”면서요.

에어로프레스는 단순한 제품 구성으로 커피 애호가들의 관심을 샀다. 원통형 브루잉 챔버(몸통)와 고무 패킹이 달린 플런저(피스톤), 필터 캡으로만 이뤄져 있다. ⒸCampbell & Syme
영향력 있는 제품은 ‘놀이터’를 품고 있다
유저와의 접점이 하나둘 늘자, 에어로프레스를 활용하는 방법도 다양해졌어요. 재미를 느낀 유저들이 자기만의 커피 내리는 비법을 개발했거든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역방향 추출법Inverted Method*’이었습니다. 도구를 거꾸로 세워 커피의 추출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이 방법이 온라인 커뮤니티 커피 긱에 올라온 거예요.
정방향에서 물을 부으면 커피가 조금씩 새어 내려가지만, 도구를 거꾸로 세우면 커피와 물이 완전히 담긴 상태로 가만히 우러난 뒤, 한 번에 눌러 추출할 수 있다. ‘맛의 일관성을 지키기 좋다’는 취지로 소개되고 있다.
사용 설명서를 완전히 뒤집은 이 방법, 앨런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그는 이 상황을 환영했어요. “발명가가 또 다른 발명가를 낳는 아주 좋은 현상”이라며 격려했죠.
“저는 ‘확장하는 제품’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발명가가 정답을 내놓는 게 아니라, 유저들이 정답을 찾아가게 만드는 것’이라고요.”_앨런 애들러 에어로프레스 창업자, 인터뷰에서
덕분에 에어로프레스를 ‘커피를 빨리 내리는 도구’를 넘어, ‘유저들이 자기 기술을 뽐내는 놀이터’로 자리 잡기 시작했어요. 바리스타들이 커뮤니티뿐 아니라 유튜브에도 자기 노하우를 올렸거든요. 유명 바리스타 제임스 호프만James Hoffman이 올린 ‘궁극의 에어로프레스 기술’은 조회수 300만 회가 넘기도 했어요.
영국의 유명 바리스타 제임스 호프만이 올린 에어프레스 레시피 중 하나를, 에어로프레스가 재현한 영상. Ⓒ에어로프레스 유튜브 채널
Chapter 4.팬들의 놀이를 ‘대회 비즈니스’로 키우는 법
에어로프레스가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얻은 계기는 따로 있어요. 2008년에 시작된 대회, WAC 덕분이었습니다. 18년째 이어지면서 지금은 7000여 명이 나서는 커피 경연이죠. 맛있는 커피를 놓고 1등을 가리는 대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노르웨이 오슬로의 작은 카페에서 시작된 장난스러운 경연이었어요. 이걸 만든 주인공은 바리스타 팀 웬들보우Tim Wendelboe와 팀 바니Tim Varney. 레시피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지는 에어로프레스를 통해, 누가 제일 맛있게 내리는지 겨뤄보자는 취지였죠.
“초창기 에어로프레스에 대한 평가는 두 갈래로 나뉘었어요. ‘맛이 나쁘다’는 사람과, ‘맛있게 만들 잠재력이 있다’로요. 두 바리스타는 후자에 베팅했어요. 이 도구의 진정한 잠재력을 끌어내고 싶어 했죠.”_팀 윌리엄스 WAC 총괄 디렉터, 인터뷰에서
초기 대회는 화려한 무대도, 스폰서도 없는 ‘모임’에 가까웠어요. 커피 애호가들이 모여, 각자의 에어로프레스로 추출한 커피 맛을 비교했죠. 도전하기 쉬워서였을까요? 이 대회에 오고 싶다는 이들이 하나둘 늘었습니다. 3~4년 만에 각 나라에서 ‘자발적인 예선’이 열리기 시작했죠.

2025년 서울에서 열린 WAC 현장. 바리스타들이 에어로프레스로 직접 추출한 커피를 관람객에게 나눠주는 중이다. Ⓒ카페뮤제오
F1처럼, 만국 공통 기준을 띄우다
세계 각지에서 재미로 열리던 WAC를 하나의 ‘비즈니스’로 키운 인물은 따로 있어요. 팀 윌리엄스. WAC의 총괄 디렉터입니다. 앞서 그는 팀 웬들보우의 카페에서 일하며 WAC 초기 주최자들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에는 인텔리젠시아의 LA 지점장을 지내기도 했어요.
그가 WAC에 커리어를 맡긴 시기는 2014년. 자금이 바닥 나 대회가 중단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어요. 그는 옛 동료였던 주최자를 찾아가 “내가 살려보겠다”고 팔을 걷어부쳤다고 합니다.
“제품을 사랑하는 팬이 많다고 해서, 저절로 비즈니스가 일어나는 건 아니었어요. 주최자들은 모든 일을 자비로 운영하려다 보니, 힘에 부쳐 관두겠다고 선언했죠.
팀이 가장 먼저 한 일은 WAC를 ‘글로벌 브랜드’로 정의하고 규칙을 통일하는 것이었어요. 추출 도구는 에어로프레스만 사용하되, 원두 분쇄도나 물의 온도 같은 변수는 자유롭게 바꿀 수 있게 했죠.
나아가 참가비를 각국의 참가자들로부터 받고, 스폰서는 현금과 현물(장비, 원두)을 섞어 받았어요. 대기업 자본은 최소화해 독립적으로 일할 구조를 최대한으로 확보했죠.
“모터 스포츠 대회인 포뮬러 원Formula 1을 벤치마킹했어요. F1은 전 세계 어디서 경기를 하든 같은 규칙과 공정성을 유지하니까요. 우리도 그래야 했어요. 라트비아든 한국이든 참가자는 동일한 도구를 받고, 오직 컵 속의 맛으로만 평가하게 했죠.”_팀 윌리엄스 WAC 총괄 디렉터, 인터뷰에서

WAC 2025의 경연이 벌어지는 무대(왼쪽)와 심사 무대(오른쪽). 심사위원은 오직 커피의 맛으로만 평가를 한다. Ⓒ카페뮤제오
기준을 세운 뒤에는 ‘분위기’를 잡는데 공을 들였어요. 장난감 같다는 평을 들은 만큼, WAC는 대회의 분위기를 ‘축제’로 잡았어요. 팀은 지향점을 이렇게 설명했죠.
“우리의 북극성은 ‘져도 즐거운 환경’을 만드는 일입니다. 불필요한 전통이나 격식으로 긴장을 만드는 대신, ‘내년에 또 찾아오고 싶어’라는 기분을 느낄 요소를 마련하고 싶었어요.”_팀 윌리엄스 WAC 총괄 디렉터, 인터뷰에서
나아가 WAC는 ‘맛있는 커피면 충분하다’는 미션을 강조했어요. 고가의 머신과 다림질한 테이블, 크리스털 유리컵과 바리스타의 스토리텔링 같은 경험을 함께 평가하는 WBC*와는 다른 길을 택했죠. 그 덕분일까요. 2024년 WAC의 월드 챔피언은 루마니아의 IT 엔지니어가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전 세계 바리스타들이 커피 추출과 지식, 표현력을 겨루는 ‘가장 권위 있는 커피 대회’로 불린다.
“영어를 못해도, 발표 능력이 부족해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이 어디서 일하는지, 누굴 아는지, 코치가 누구인지도 중요하지 않죠. 오직 컵 속에 담긴 결과물만이 중요할 뿐입니다.”_팀 윌리엄스 WAC 총괄 디렉터, 인터뷰에서
Chapter 5.계속 배우게 만드는 도구가 재미를 일으킨다
에어로프레스 덕에 “일에 재미를 더 붙였다”고 말하는 바리스타도 있습니다. 주인공은 2025년 WAC의 한국 국가대표로 나선 전동환 바리스타에요. 어떤 점이 그의 일을 더 재밌게 만들었는지 물었어요.
“제가 다른 분들보다 실력이 월등히 좋았던 게 아닙니다. 다만 에어로프레스라는 도구가 주는 자유도를 이용해 ‘나는 무조건 다르게 하자’는 생각으로 대회에 임했어요. 간단한 만큼 수없이 다른 걸 시도할 수 있는 도구였기 때문이죠.
실제로 그는 최종 대표 결정전에서도 남들과는 다른 시도를 했습니다. 원두 가루와 뜨거운 물을 넣은 뒤 칠링 볼Chilling Ball*을 이어 넣었거든요. 뜨거운 커피 물이 만들어지는 찰나에 온도를 급히 내려 향미를 가두기 위해서였죠. 이런 파격적인 발상이 그를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추출 직후의 에스프레소를 차가운 금속 구球 위로 통과시켜 온도를 급격히 낮추는 도구.
“좋은 도구는 그저 단순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걸 쓰는 사람의 고정관념을 깨주고,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어 준다면, 그게 좋은 도구라고 생각해요.”_전동환 바리스타・구뜨커피 대표, 인터뷰에서

WAC 2025의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전동환 바리스타. 그는 국가대표 결정전에서 파격적인 레시피로 우승한 바 있다. Ⓒ카페뮤제오
Insight.‘단순한 도구’가 알려주는 세 가지 혁신 노하우
에어로프레스를 만든 사람과 제대로 활용하는 유저들의 이야기를 넘나들면서 얻은 배움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내용을 세 가지로 정리해 봤어요.
1. 누군가의 불만은 구조적인 해결책이 된다 : 발명가 앨런 애들러는 “집에서 내린 커피가 쓰다”는 불만을 듣고, “지나치게 긴 추출 시간 때문”이라는 기술적 문제로 해석해 냈어요. 이처럼 혁신은 사소한 불편의 해상도를 높이고 구조적으로 해석할 때 시작됩니다.
2. 팬들이 창작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라 : 앨런은 에어로프레스를 만들 때 ‘정답’을 강요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유저들이 실험할 여지를 남겨 하나의 놀이터이자 비즈니스로 성장하게 만들었죠.
3. 계속 배울 수 있는 도구가 모두의 성장을 만든다 : 앨런은 에어로프레스라는 단순한 도구로 사람들이 커피 내리는 기술을 연마하게 만들었습니다. WAC 주최 측은 ‘맛’ 중심의 간단한 규칙으로 사람들이 온갖 시도를 할 수 있게끔 길을 터줬어요.
이런 맥락에서 앨런은 자신의 인생 제1원칙을 소개했습니다. “뭔가를 바꾸고 싶다면, 관련한 모든 과학·인문학적 지식을 공부하라”는 겁니다. 실제로 그는 여든여덟이 된 지금도 최신 과학 잡지를 읽으며 도구를 개선할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죠.
“지식은 당신이 아이디어를 ‘실제로 작동하는 뭔가’로 발전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단순히 ‘무언가 바꾸겠어’라고 마음만 먹기보다, 당신이 바꾸고 싶은 분야의 모든 것을 배우기 시작하세요.”_앨런 애들러 에어로프레스 창업자, 인터뷰에서

앨런 애들러가 어린 시절부터 해양소년단 활동을 하며 탄 요트. 그는 단순히 요트를 즐기는 걸 넘어, 공기역학을 배워 더 빨리 이동하는 물체를 만들려 했다. 그 결과 원반 장난감인 에어로비가 나온 것. Ⓒ앨런 애들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