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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사는 거 기세 좋게 : 불행마저 글감으로 삼는, 맷집 센 101세 할머니

한이룸
이커머스
2025. 4. 19.
최근 서점 매대를 살펴보다가 눈에 띄는 제목을 발견했어요. 『이왕 사는 거 기세 좋게』*. 어딘가 모르게 에너지가 느껴져, 책을 집어 들었죠.
원서 제목은 『인생은 아름다운 일만 기억하면 된다人生は美しいことだけ憶えていればいい』.
저자의 이력이 흥미로워요. 이름은 사토 아이코佐藤愛子. 1923년생으로 올해 만 101세를 넘긴 작가예요. 심지어 “지금도 작가로 활동 중”이라는 설명까지 붙어 있었죠.
이 책은 사토 아이코 작가가 1970년대부터 2016년까지 일본의 월간지 「PHP」에 연재한 에세이 모음집이에요. 작가는 글에서 이렇게 강조하죠. 젊게 살기보다 중요한 건, 기세 있게 늙는 것이라고.
‘기세 좋게 살자’고 외치는 할머니 작가. 그는 어떻게 지치지 않고 글을 써온 걸까요? 그의 삶과 글을 더 알아봤습니다.
Chapter. 1‘매운맛 유머’ 담는, 101세 현역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를 이긴 작가.’ 사토 아이코 작가에게 붙는 수식어입니다. 2016년에 낸 에세이가, 2017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보다 더 잘 팔렸거든요. 100만 부 이상 팔리며, 일본 서점가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어요. 당시 그의 나이 92세였죠.
책 제목은 『90세, 뭐가 경사라는 거야90歳、なにがめでたい』. 제목을 보고 픽, 웃음이 나왔어요. 책은 이렇게 시작해요.
“90세가 됐다고 축하받았는데, 뭘 그렇게까지 경사라고 하나요?”
이런 유쾌함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어요. ‘나이 듦’을 털털하게 인정하면서 지난 시간을 억지로 포장하지 않는 글을 젊은 독자들이 반겼죠. “나답게 사는 법을 발견할 수 있다”고 평하면서요.
사토 아이코 작가는 일본의 ‘아라한アラハン・around hundred 책*’ 붐의 선두 주자이기도 해요. 지금까지 100편 넘는 소설과 에세이를 냈어요. 말 그대로 ‘할머니 작가’의 기세를 보였죠.
100세 전후의 작가가 쓴 책을 뜻하는 일본의 신조어. 주로 여성 작가들이 많다. 2009년 당시 98세였던 고故 시바타 도요柴田トヨ가 내놓은 첫 시집 『약해지지 마』가 150만부 넘게 팔린 게 유행의 시작이었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도 다양해요. 자신의 가족사를 담은 대하소설 『혈맥血脈』부터, 23일간의 해외여행 경험을 담은 에세이 『딸과 나의 바보 여행娘と私のアホ旅行』까지. 그의 일생을 모두 글에 녹여 내요.
그러면서 인터뷰에선 ‘매운맛 농담’을 툭툭 던집니다. 만 100세가 된 2024년에 진행한 인터뷰 기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저도 제가 왜 아직 살아있는지 모르겠어요. 죽는 게 싫지 않은데 말이죠”라고 했죠. 그러면서 ‘쓸데없는 걸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삶’을 이야기하죠.

‘나이 듦’에 대한 생각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사토 아이코 작가의 에세이는 영화로도 제작됐다. 사진은 「90세, 뭐가 경사라는 거야」의 영화 포스터. ©2024 영화 「90세, 뭐가 경사라는 거야」 제작위원회, 사토 아이코, 쇼가쿠칸
Chapter. 2인생에 들이닥친 불행을 글감으로 삼다
사토 아이코 작가의 위트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역설적으로 그가 마주한 ‘인생의 풍파’가 시작점이었어요.
거침없이 찾아온 불행 앞에서 맞서 싸우다 보니, 기세 좋게 웃어넘기는 힘이 길러진 거죠. 그는 이 모든 걸 ‘글감’으로 삼아버렸어요.
“비극이나 곤란에 직면할 때마다 그것을 진지하게 미워하거나 하지 않고 조금 어긋나고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재미있어하며 지나쳐 왔습니다.”
그가 겪은 불행, 이런 거였습니다. 사실 그는 ‘남편 복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스무 살 무렵 중매로 만난 첫 번째 남편은 결혼 생활 도중 마약 중독자가 됐어요. 식을 올린 지 8년 만에 세상을 떠났죠.
서른한 살에 문학동인에서 만난 두 번째 남편과는 위장 이혼을 해야 했어요. 남편이 사업에 실패해 빚더미에 앉았거든요.
좌절할 수밖에 없는 삶, 사토 아이코 작가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두 번의 이별이 모두 그를 ‘글 쓰는 삶’으로 이끌었거든요.
사토 아이코 작가가 마약 중독에 빠진 첫 번째 남편과 별거할 때의 일이에요. 그는 친정집에 돌아가 머물고 있었어요. 슬픔에 빠진 그를 본 어머니가 ‘글쓰기’를 권했어요. 소설가인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았다는 걸 어머니는 알아봤거든요.
사토 홍록佐藤紅緑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1874년생의 일본의 극작가·소설가·배우. 소년소설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어머니는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아버지가 생전에 네가 쓴 편지를 읽고 글재주가 있다고 칭찬했었다며 나를 부추겼다. 단순하게도 그 말에 힘을 얻어 나는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이제부터 ‘문학을 남편으로 삼겠다’고 할 정도로 패기가 넘쳤다.”_36p
1년간 글쓰기에 집중한 스물여섯의 사토.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 「푸른과실青い果実」을 썼어요. 이 소설로 1950년 문예지 「문예수도文藝首都」에서 상을 받죠. 소설가가 된 거예요.
하지만 그는 40대가 될 때까지 작가로 이름을 날리진 못했어요. 사업에 실패한 두 번째 남편과 이혼하면서 빚까지 떠안게 됐거든요. 생계유지는 물론 빚 갚는 일까지 해야만 했죠.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해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나는 기력을 잃은 우울증 환자 같은 상태가 되어 평소 친하게 지내던 마사지사인 U선생에게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그때 사정을 들은 U선생은 이런 말을 해주었다.
작가는 고난을 정면 돌파 했어요. 누군가를 원망할 시간에 팔을 걷어붙이고 일을 했습니다. 되는대로 일하며 헤어진 남편의 빚을 대신 갚아 나갔어요.
대신 글쓰기를 멈추진 않았어요. 지금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글로 풀어냈죠. 그렇게 탄생한 소설이 바로 『싸움 끝에 날이 저물고戦いすんで日が暮れて』입니다. 전 남편의 빚을 갚으러 동분서주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50페이지짜리 소설이었죠.
사토 아이코 작가는 이 소설로 1969년 나오키상直木賞*을 받았습니다. 그의 나이 마흔네 살. 그의 ‘작가 인생 전성기’도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일본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 『용의자 X의 헌신』 등이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인생에 불어닥친 불행을 글로 풀어낸 소설 『싸움 끝에 날이 저물고』로, 사토 아이코는 1969년 나오키상을 받았다. 사진은 당시 출간된 책의 표지. ©고단샤, 도쿄도 고서점 상업 협동조합
Chapter. 3행복의 밑그림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
몇 줄의 문장으로 줄였지만, 사토 아이코 작가의 삶은 꽤나 거칠었다고 할 수 있어요. 어떤 마음으로 그 시절을 돌파했을까요? 당시를 그는 이렇게 기억했어요.
“도망친다는 건 비겁한 짓이잖아요. (…) 물론 제가 남편의 빚을 떠안았다는 걸 안 친구들한테는 엄청나게 비난을 받았고, 저희 어머니도 몹시 화를 내셨죠. 그래도 저는 언제나 정정당당하게 살고 싶었어요.
이왕 문제를 풀기로 결심한 이상, 그는 멈추지 않고 자신의 돌파구를 찾아갔어요. 여전히 그는 남편의 남은 빚 3500만 엔(약 3억4000만원)을 갚아야 했거든요.
그래서 강연과 방송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어요. 낮엔 후쿠오카에서 강연을 하고, 저녁엔 비행기를 타고 오사카 방송국의 라디오에 출연한 적도 있었죠.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딸과 놀았고, 밤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는 집중해 원고를 썼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시기에 작가는 가장 많은 작품을 쏟아냈어요. 나오키상 수상 이후 20여 년간 그가 남긴 작품 수는 무려 80편 정도였죠.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당시 그는 이런 마음을 품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힘든 경험을 하면 수련이 된다고 생각해요.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면, 싸워서 앞으로 나아갔어요. 그래서 원망이나 미움이 자랄 틈이 없었던 거예요. (…)
힘든 경험도 수련으로 삼겠다는 삶의 태도를 그는 글로 이렇게 적었어요. ‘행복의 밑그림’은 자기가 그려야 한다고 했죠.
“다른 사람을 흉내 낸 밑그림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어긋난 채로 완성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아이에게 엉뚱한 화풀이를 하고, 남편에게 환멸을 느낀다며 바람을 피우거나 이혼하려고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사토 아이코 작가의 모습. 그는 자신의 인생을 남과 비교하지 않고, ‘행복의 밑그림’을 스스로 그렸다. ©2024 영화 「90세, 뭐가 경사라는 거야」 제작위원회, 사토 아이코, 쇼가쿠칸
Chapter4.맞는 연습도 해봐야, 맷집이 생긴다
한편으로 궁금해져요. 어떻게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태도를 가질 수 있을까요?
사토 아이코 작가는 일관되게 “삶의 문제에서 도망치지 말라”고 조언해요. 부딪치고 깨지고 아파봐야 ‘나만의 경험’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는 이를 맷집을 기르는 과정에 비유해요.
“(…) 맷집이 강해지려면 어쨌든 ‘맞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도망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된다, 저렇게 하면 어떨까 등등 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생각이 많으면 행동력이 떨어진다.”_46p
가령 복싱을 배울 때도,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게 ‘맞는 연습’이라고 하잖아요? 맞을 때 견디는 힘을 길러야, 실전에서도 쉽게 지치지 않고 끝까지 싸울 수 있으니까요.
삶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내게 날아오는 ‘펀치 같은 사건’에 부딪치고 깨지거나 멍 들어보는 시간을 쌓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럼 결국 나답게 버티는 맷집을 키울 수 있다는 거죠.
이걸 강조한 할머니 사토, 젊은 세대를 향해 쓴소리를 남기기도 했어요.
“(내가 살았던 시대엔) 힘들어도 도망칠 수 있는 길이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한 현실이 어느새 우리 안의 ‘맷집’을 키워주었다. (…)
이 문장을 읽으며 저는 뜨끔했어요. 자꾸 다른 길로 눈을 돌리는 제가 떠올랐거든요. 하지만 작가는 우리를 꼬집는 데 그치지 않았어요. 이어서 이렇게 우리에게 조언했죠.
“젊음이란 미숙한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아주 적은 경험밖에 하지 않았다. 자신감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의 글을 쭉 읽으면서 발견하는 메시지는 하나였어요. ‘경험을 쌓아 나답게 사는 기세를 가지세요’라는 것. 삶의 맷집을 키운 이들이 얻는 가치를 작가는 이렇게 정리했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좋아요. 자연스러운 당신의 모습이 좋아요. 인생 경험을 소중히 여기면 자연스럽게 매력을 갖추게 될 거예요.”_103p

복싱을 배울 때도, ‘맞는 연습’을 잘해야 실전에 투입될 수 있다. 사토 아이코는 다양한 경험 앞에서 부딪치고 깨져봐야, 나답게 버티는 ‘맷집’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Unsplash
Chapter. 5할머니 작가가 기세를 다지기 위해 지킨 루틴
사토 아이코 작가는 강조해요. 자신도 ‘기세 좋게’ 살기 위해 루틴을 다져왔다고. 그는 연습의 소중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스모 중계를 보면 해설가나 감독들은 몇 번이고 연습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힘을 쓰는 선수를 칭찬할 때 반드시 ‘어쨌든 제대로 연습했으니까요’, ‘연습의 결과죠’라고 한다.
연습이라는 기분 좋을 정도로 단순하고 명쾌한 공식. 이게 그를 평생 작가로 만든 힘이었어요.
실제로 그는 1989년 65세일 때 가족사를 담은 대하소설 『혈맥血脈』 집필을 시작해, 2000년에 완성했어요. 2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죠. 2014년에도 장편소설 『만종晩鐘』을 썼고요. 100세가 된 2023년 11월엔 에세이집 『추억의 쓰레기통思い出の屑籠』을 펴냈어요.
이 성과를 내기 위해 사토 아이코 작가는 100세가 되기 전까지 매일 글을 썼어요*.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을 지켰다고 했죠.
사토 아이코 작가는 90대까지 매일같이 글을 썼다. 그러나 100세가 넘은 이후로는 건강상의 문제로 글쓰기를 쉬고 있다.
①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책상 앞에 앉는다
작가는 오전 7시에 눈을 뜨면, 1시간 정도 침대에서 글쓰기에 대한 구상을 했어요. 아침을 먹고 10시부터는 책상 앞에 앉았어요. 한번 시작하면 오후 2~3시까지 글을 썼습니다.
주간지에 연재할 땐 월 1~2회 연재를 하더라도 그와 별개로 자기 글을 매일 썼어요. ‘쓰는 근육’을 잃지 않기 위함이었죠.
“저도 그냥 할머니예요. 특별히 힘이 있는 할머니도 아니죠.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계속 쓴 것뿐이에요. 보통 할머니로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이상한 할머니가 돼버렸죠.”_사토 아이코 작가, 2024년 주간문춘 WOMAN Vol.21 인터뷰에서
② 수국과 만년필처럼, 글 쓰고 싶은 환경을 만든다
그는 글쓰기를 즐겁게 만들 환경을 만드는 일에도 신경을 썼어요. 먼저 널따란 책상은 창문 앞에 놓았어요. 좋아하는 수국이 펼쳐진 풍경을 보면서 집필하기 위함이었죠.
글은 원고지에 직접 썼죠. 좋아하는 만년필이 있었거든요. 일본의 세일러Sailor 만년필을 수십년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글쓰기를 한번 시작하면 어떨까요. 그는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쓰기에 몰두한다”고 했습니다.
③ 언제나 글을 고칠 준비를 한다
70년 넘게 글을 쓴 그도 한 번에 마음에 드는 글을 쓰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래서 언제나 글을 고칠 ‘준비 태세’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글을 쓰는 서재에 침대도 함께 놓았어요. 한밤중에 잠을 자다가, 고칠 부분이 떠오르면 바로 책상 앞에 가기 위해서였다고 해요.
며칠 전에 다 채운 원고지도 일부러 책상 위에 쌓아 놓았어요. 다른 글을 고치다가 잘 안 풀릴 때, 예전에 써둔 글 뭉치에서 힌트를 얻기 위함이죠.
세 가지 루틴을 지키는 삶을 살았을 때, 그는 이런 마음을 느꼈다고 합니다.
“오늘 하루 만족스러운 글을 쓰고 펜을 내려놓으면, 충실하게 살아낸 기분이죠. 글을 쓰는 한, 매일 충만함을 느낄 수 있어요. 글 쓰는 건 즐거운 일이에요.”_2017년 후진코론 인터뷰에서

사토 작가는 기세를 다지기 위해 매일 글을 쓰는 생활을 이어왔다. 사진은 영화 「90세, 뭐가 경사라는 거야」의 한 장면. 책상 앞에 앉아 원고지에 글을 쓰는 사토 작가를 배우가 연기하고 있다. ©2024 영화 「90세, 뭐가 경사라는 거야」 제작위원회, 쇼가쿠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