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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인쇄 : “우리 집은 안 되는 게 없어” 오이뮤·29CM 단골 인쇄소의 비밀

한이룸
이커머스
2025. 2. 11.
국내의 내로라하는 문구 브랜드들이 애정하는 인쇄소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청산인쇄. 오이뮤와 포인트오브뷰, 오롤리데이와 모스그래픽을 고객으로 둔 곳이죠.
이들이 유독 청산인쇄를 찾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수소문하니 ‘다른 인쇄소에서 받아주지 않는 프로젝트를 해내는 곳’으로 알려져 있더군요. 디자이너들이 시안과 고민을 들고 찾아오면, “재밌겠네”라며 해결책을 떠올리는 대표가 있다는 거죠.
“뭐든 해보자”는 인쇄소의 비밀이 궁금했습니다. 을지로 골목 어귀에 자리한 청산인쇄를 찾았어요. 3층에 있는 사무실 문을 열자, 벽을 따라 세워진 책장이 보였죠. 한눈에 알 만한 브랜드의 패키지들이 가득했습니다.
청산인쇄의 백태종 대표는 사무실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어요. “어제 좀 치웠어”라며 제게 악수를 건넸습니다. 그러곤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청산인쇄 백태종 대표
제가 인쇄소를 시작한 지는 34년. 이 업에 몸담은 지는 39년 됐습니다. 오래 했습니다.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에요. 세월의 무게만큼 힘든 일도 많았죠.
뭐, 뻔한 이야기예요. 다 똑같이 밥 먹고 살려고 일하는 거지. 요청받은 일을 끝까지 알아보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그렇다고 대단한 비결이 있는 건 아니고요.
그래도 그런 마음은 있습니다. 내가 만든 걸 찬찬히 보다 보면 괜히 가슴이 설레는 거 있죠. 남들이 못하던 걸 해냈다고 하면, 우쭐한 기분도 들고요. 그 맛에 지금까지 일해왔나 봅니다.
Chapter 1.인쇄로 감동을 담을 수 있다면
저는 인쇄로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왜냐고요? 우리가 디자이너의 그림과 글을 마지막에 실물로 만들어내잖아요. 상상을 현실로 찍어내는 사람들인 거지.
저는 주로 책자나 문구, 다이어리 패키지, 쇼핑백 같은 걸 만들어요. 옵셋 인쇄* 방식을 이용해 작업해요.
기계를 이용한 간접 인쇄 방식. 잉크를 알루미늄판 위에 전사한 뒤 종이에 옮긴다. 주로 고급 인쇄물에 사용된다.
과정은 이렇습니다. 광고주 또는 기획사 디자이너가 보내준 자료를 먼저 검토해요. 그다음 판을 출력하고, 용지를 사고, 인쇄하죠. 이게 끝이 아닙니다. 후가공(코팅, 금박, 제본 등)까지 우리 몫이죠.
여기서 제 역할은 발주된 결과물의 한계와 가능성을 찾는 거예요. 디자이너에게 기계와 재료가 할 수 없는 일을 알리고, 제품 목적에 따라 더 맞는 종이를 역제안하기도 하죠. 예를 들어 ‘코팅되지 않은 종이를 쓰면 색이 선명하게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알리는 식이에요.
사실 대부분의 인쇄소는 이렇게까지 알려주지 않아요. 이렇게 소통하는 과정이 번거롭거든. 또 새로운 걸 만들려면 전에 없는 방식을 찾아봐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돈이 안 되기도 하죠.
근데 우리 집에는 안 되는 게 없어요. 저는 오히려 ‘듣도 보도 못한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더 신이 나요. 제품에 의미까지 담겨 있다? 그럼 더 재밌죠.
이걸 한번 보실래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에서 만든 전국 한지 샘플북*이에요. 각 지역의 전통 한지를 모아, 마치 벽지 샘플북처럼 만들었지.
스튜디오 FNT에서 기획했다.

백태종 대표가 인터뷰 중 소개한 한지 샘플북. ⓒ롱블랙
이거, 손이 많이 가는 제품이에요. 한지는 얇아서 재단기로 자르면 끝이 밀리거나 눌린 자국이 생기거든. 그래서 일반 종이를 간지로 끼워서 잘라야 해요. 그다음 그걸 빼고 남은 한지를 고정하죠. 호치키스를 안쪽에 일일이 박으면서요. 딱 100세트 만드는 일이었어요. 그래도 쉽지 않았죠.
가끔 사람들이 물어요. 그리 많지 않은 수량인 데다가 만들기도 어려운 걸 왜 하느냐고요. 그럼 저는 말해요. ‘전통 한지를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지 않느냐’고. 실제로 여기엔 문화재 보수용 한지도 들어 있죠.
그뿐이겠어요, 책이 아름다워요. 그전까지 난 우리나라 한지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어요. 이런 걸 기획하는 작가들을 만나면, 대단하단 생각이 들죠. 감동받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만난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다른 데서 안 된대요”라며 찾아온 이들과 일하다 보니 숫자가 늘었죠. 그렇게 청산인쇄는 ‘소량 다품종 생산’을 하는 업체가 됐어요.
물론 제가 처음부터 이 일을 즐긴 건 아니에요. 처음엔 그냥 먹고 살려고 시작한 일이었죠.

서울 을지로 사무실에서 롱블랙과 인터뷰 중인 백 대표. 난이도 높은 인쇄물을 다루는 인쇄 장인이다. 그는 “의미 있는 제품을 만들 때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롱블랙
Chapter 2.손이 빠른 아이, 절실함을 배우다
인쇄 일은 자연스럽게 시작했어요. 형들이 인쇄소를 운영했거든. 활판*과 옵셋, 그리고 제본까지 했죠. 겨울이면 일력(매일 한 장씩 뜯는 달력)을 만드느라 정신없었어요. 바쁘다니 나도 도왔지. 그때가 1985년, 제가 중학교 3학년이던 때예요.
금속 활자에 잉크를 묻혀 찍어내는 전통 인쇄 방식.
처음에는 종이를 순서에 맞게 배치하는 일만 했어요. ‘정합’이라고 불리는 일이죠. 여러 명이 공장처럼 나란히 서서 맡은 페이지를 한 장씩 쌓았죠.
내가 손이 좀 빨랐어요. 제가 종이를 빠르게 내려놓으니, 다들 그 속도를 맞추더라고요. 덕분에 작업도 빠르게 끝나고, 일당도 많이 받았어요. “일 잘한다”는 말도 들었죠. 그럴 땐 내심 뿌듯했지.
그렇다고 일을 재밌어 한 건 아니에요. 원래는 조종사가 꿈이었는데 항공대를 못 갔거든요. 돌이켜 보면, 내게 맞는 일을 골랐어요. 사물에 대한 동경도 있었거든요. 황학동 골동품 거리에서 물건의 만듦새를 찬찬히 보며 만든 이를 상상하는 게 내 취미였죠.
그렇게 인쇄소 일을 하다가 1992년, 덜컥 제 사업을 시작했어요. 스물두 살이 됐을 때였죠. 하이델베르크 GTO 50이란 인쇄 기계를 받은 거야. 이걸 운영하던 둘째 형이 사정이 생겨 나한테 넘겼거든.
문제는 그다음이에요. 사업 5년 차에 IMF가 터진 거야. 보증까지 잘못 서는 바람에 옥탑방으로 쫓기듯 이사까지 가야 했어요.
살아남으려면 뭐든 해야 했어요. 종일 인쇄만 했죠. 주변 제본소를 도우며 말 그대로 ‘밤새’ 일했어요. 이틀간 잠을 안 자고 2호선에 탔다가 졸아서 순환선 한 바퀴를 돌기도 했죠.
그래도 살려고 한 노력이 나를 배신하지 않더라고요. 조금씩 기회가 열렸어요. 속옷 행택을 만들던 오성문화에서 “일손이 필요하다”며 날 부른 거야.
그들이 얼마를 주든 일단 저는 “고맙다”며 일했어요. 그런 내가 절실해 보였는지, 사장님이 자기 거래처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더군요. 덕분에 내 일도 늘었어요. 쌓인 빚도 3년 만에 갚을 수 있었죠. 이때가 2000년이었어요.
이 과정을 통과하며 제가 배운 게 있어요. 절실함. 일단 직업을 택했으면, 버티며 최선을 다하는 거죠. 그럼 어려운 상황도 뚫릴 수 있다는 걸 경험했어요.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죠.

청산인쇄 을지로 공간의 모습. 인쇄소는 일산 덕이동 공장과 을지로 사무실을 운영 중이다. 백태종 대표는 "‘청산’이란 이름은 등산을 좋아해 지었지만, 사업 시작 당시 빚이 많아 ‘빚청산’의 의미도 갖게 됐다"고 농담했다. ⓒ롱블랙
Chapter 3.누군가를 이유 없이 도와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인쇄라는 일의 즐거움은 좀 더 나중에 알았어요. 사업이 자리를 잡은 뒤부터였죠. 내가 살만해지니까, 다른 사람의 어려움도 보이기 시작한 거야.
저는 누군가 공들여 만든 작업물을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어요. 그 마음이 너무 귀해 보였거든요. 이걸 지켜주고 싶어서 제가 아는 지식을 동원하기 시작했죠.
시작점은 20여 년 전이에요. 2000년대에는 시각디자인과 학생들이 졸업도록을 직접 만들었어요. 각자 작업물을 모아서 작품집을 만드는 거지.
가져온 걸 보면 아주 엉망이야. 인쇄는 잘 모르는 대학생들이잖아요? 몇 명은 인쇄에 적합한 쿽QuarkXPress이나 인디자인InDesign 대신, 예쁘게 뽑기 어려운 포토샵Photoshop으로 작업을 해와요. 그걸로 인쇄하려면 우리가 손볼 게 많아서 귀찮아요. 돈을 더 받자니, 그들은 돈도 없었고요.
그래도 뭐라도 해주고 싶더군요. 학생들이 졸업을 기념하려고 애쓴 시안이잖아요. 그냥 가져온 대로 해준다고 했어요. 견적도 내가 받을 수 있는 최소로 써줬지.
근데 학생들이 그게 싼지 비싼지 알겠어요? 한 명당 5만~10만원씩 걷는 건 비슷하니, 다른 인쇄소도 다녀오겠다고 하죠. 결국에는 다시 와요. 다 거절당하거나 가격이 너무 비쌌거든.
학생들이 돌아오면, 작업물의 문제점을 설명했어요. 이렇게 시안을 만들면 왜 인쇄하기 어려운지,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하는지를 말했죠.
공장도 둘러보게 했어요. 디자이너로 오래 일하려면, 인쇄 원리를 알아야 될 거 아니에요. 그렇게 알려주고 있으면, 그들이 참 기뻐하는 게 보여요.
이 과정이 나한테 ‘일하는 기쁨’을 가져다줬어요. 몇몇은 직장에 들어간 뒤에 나를 찾아오기도 했죠. 와서는 그때의 어려움을 같이 나누고요. 저도 모르면 공부해서 알려주고. 그러다 보니 깨달았죠. 이런 문제점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게 재밌다는걸.
이렇게 이어진 인연이 적잖습니다. 패션 브랜드 마더그라운드의 이근백 대표도 나랑 오래 작업했어요. SADI* 출신인데, 처음에는 친구들이랑 브라운브레스BrownBreath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죠. 찾아와서는 카탈로그와 행택, 쇼핑백을 만들어야 된대요. 근데 돈이 없대.
삼성디자인교육원.
왠지 모르게 도와주고 싶더라고. 그래서 말했죠. “원가로 인쇄만 해줄게. 대신 직접 종이를 구해와라”고. 진짜 그대로 해왔어요. 그렇게 시작된 브랜드가 지금은 엄청 커졌죠.
제가 인쇄를 하면서 배우는 게 있어요. 일이 쌓이는 만큼, 인연도 쌓인다는 것. 그래서 우리 집에는 영업사원이 없어요. 이렇게 손잡았던 친구들이 다른 곳에 나를 알아서 소개해 주거든.

청산인쇄가 제작한 현대리바트의 패키지. 백 대표는 가끔 디자이너들이 평면 일러스트만 가져오면, 뭘 넣을지 물어보고 박스의 구체적인 크기를 같이 고민해 주기도 한다고 했다. ⓒ롱블랙
Chapter 4.끝단을 쥔 사람의 원칙, ‘한 발만 더 나아가자’
사람들이 가끔 묻습니다. 남들이 못 하겠다고 하는 인쇄물을 여기선 어떻게 해내냐고. 사실 비법은 없습니다. 원칙이 있다면 있겠죠. 귀찮음에서 ‘한 발만 더 나아가자’는 것.
최근 모서리Mosery라는 브랜드의 달력을 만든 게 기억나요. 벽에 거는 달력인데, 코너에 걸 수 있게 뒷장으로 갈수록 종이 크기가 점점 작아지게 했죠. 저희한테 온 사정을 들어보니, 다른 인쇄소에서 만들다가 두손 두발 들었다는 거예요.

브랜드 모서리에서 의뢰한 달력의 모습. 백 대표는 이런 까다로운 의뢰를 해결하며 재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모서리
컨셉만 들어도 어려울 법했어요. 종이 크기가 다 달라서, 큰 종이에 반복 배열해 인쇄할 수 없거든요. 종이를 낭비하지 않으려면 그 배치를 신경 써야 하죠. 여기서부터 에너지가 듭니다.
달력 구멍을 내는 것도 만만찮아요. 보통 벽걸이 달력은 위쪽 가운데를 뚫죠? 도무송*으로 한 장씩 눌러 구멍을 내죠. 하지만 종이 크기가 다르다면? 각 크기에 맞는 쿠키 커터 같은 ‘틀’을 따로 만들어야 해요. 수고로운 건 물론, 제작비가 뛰죠. 여기서 대부분 포기합니다.
종이에 구멍을 뚫는 기계. 톰슨 프레스 기계를 부르는 일본식 업계 용어로, 말맛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표현했다.
근데 한 발만 더 나아가면 이걸 해결할 수 있어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종이 여러 장을 넣고 고정해서 누를 수 있는 금형(금속 틀)을 만들면 돼요. 10~15장 되는 달력 페이지를 넣고 한 번에 구멍을 내죠. 그다음 합본하면, 비용도 줄이고 정확한 위치에 구멍을 낼 수 있어요.
저는 금형 만드는 곳을 찾아보고, 샘플을 만들어봤어요. 되더군요. 그렇게 완성하니 대표가 제게 손 편지까지 보내왔어요. 참 민망하게.
때로는 한 발 더 고민해서 실수를 바로잡기도 해요. 삼성 플라토미술관* 책자를 만들 때였죠. 인쇄를 끝내고 나서야 오타가 보인 거예요. ‘삼’성미술관을 ‘심’성미술관으로 찍은 거죠.
서울 소공동에 자리했던 미술관. 2016년 폐관했다.
재인쇄를 할 수 없다면 보통 이 정도 오타는 스티커를 붙여서 고쳐요. 근데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요. 별 방법을 써봤어요. 볼펜 수십 가지를 사다가 그어도 봤죠.
문제의 핵심을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변칙’이 하나 떠올랐죠. 결국 여기선 ‘-’ 자만 인쇄한 것처럼 보이면 되잖아요?
그때 ‘칼라이즈’라는 판박이가 떠올랐어요. 인쇄인보다는 디자이너들이 주로 쓰는 도구죠. 근데 이 판박이를 붙였다 떼면 인쇄한 것처럼 글자가 남아요. 한번 해봤죠. 깔끔하게 수정되는 게, 기가 막히더라고.

칼라이즈 판박이 사용 예시. 인쇄된 그림을 다른 표면에 전사할 수 있다. 백 대표는 처음 이 방법을 떠올렸을 때 ‘예술이다’라고 감탄했다고 했다. ⓒWoodland Scenics 유튜브
더 나은 걸 제안하고 싶어서, 좋은 걸 품는 삶
이런 해결책,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에요. 저도 아는 게 많아야 하죠. 그래야 ‘이 종이가 더 낫다’라고 추천할 수 있는 거지. 다만 여기에도 지름길은 없어요. 최대한 많은 걸 내 안에 넣을 뿐이죠.
나는 우선 내 일에 관심이 많아요. 코스트코를 가도 내용물은 안 보고 패키지만 보죠. 새로운 게 보이면 ‘이건 어떻게 만들었나’ 연구하죠.
또 회사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어디서 무슨 물건을 파는지, 어떤 기계가 있는지도 돌아봐요. 에어캡이나 빵 끈, 쇼핑백 끈처럼 인쇄 부자재 파는 곳을 알고 있어도 또 챙겨보죠. 뭐가 어딨는지 알아야, 필요할 때 기억할 수 있으니까요.
을지로 밖으로도 시장 조사를 나갑니다. 방산시장과 용산, 김포, 파주까지 가죠. 때로는 박람회를 돌기도 해요. 저는 계속해서 새로 나온 기술을 배워야 하니까요. 그러면 나도 몰랐던 기법을 발견합니다.
디자이너들도 기대값이 있잖아요. 그들도 며칠씩 걸려서 기획한 걸 들고 올 때의 기대가 있지. 그럼 제대로 만들어야 실망하지 않겠죠. 저는 그걸 채워줬다고 생각해야만 잠이 잘 와요. 안 그럼 화딱지 나.

청산인쇄가 자리한 을지로 골목. 백 대표는 “전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인쇄소가 모인 곳이 없다”고 전한다. 그는 골목을 지날 때마다 과거 작업들을 떠올리며 다닌다고 말했다. ⓒ롱블랙
Chapter 5.모든 패를 드러내야, 내가 정직한 걸 알지
물론 인쇄는 저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거의 모든 게 협업이죠. 그래서 오래 같이 일하려면, 신뢰를 쌓아야 해요. 제 원칙은 간단해요.
나의 모든 패를 드러내고, 항상 투명하게 소통하려고 노력하기.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발주를 맡긴 디자이너에게 어떤 색은 기계의 한계로 제대로 인쇄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알리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디자이너와 눈높이를 맞추는 게 제 일입니다. 디자이너의 고민과 기획을 가장 좋은 상태로 실현해야 하니까요. 실은 단순하지만 가장 필요한 일이죠.
인쇄 견적도 투명하게 제안하려고 노력해요. 저는 시장에서 재료를 사면서 기획사에 바로 전화를 걸어요. 스피커폰으로요. “어, 이건 개당 100원이라고? 근데 나 장사꾼이라 10%는 남겨야 해. 개당 110원이겠네~”라면서 알려주죠.
사실 비즈니스 노하우라 숨길 수 있는 것들이에요. 하지만 저는 공개합니다. 그래야 날 믿어주니까요. 제작할 때 어떤 곳에서 비용이 올랐는지 알려야 발주자도 제 의도를 이해하죠.
투명한 공개 원칙을 세운 건 제가 겁이 나서 그러는 것도 있어요. 언제 누가 트집 잡을지 모르잖아요. 최종적으로 제품이 잘못 나오면 내 책임이니까요.
물론 이렇게 신경을 써도 내 뜻대로 일이 안 풀릴 때가 있습니다. 제 손을 떠난 곳에서 실수가 나기도 하죠. 지난달엔 한 금박*집에 다이어리 작업을 맡겼는데 색을 바꿔서 금박을 해왔어요. 여기서 작업이 늦어져 저도 기획사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죠. 대금도 못 받았고요.
종이에 얇은 금속 필름(포일)을 열과 압력으로 입히는 작업.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어요. 이것도 내 일의 연장선으로 보고 받아들이는 거죠. 책임은 나눠지되, 다음에 실수하지 않도록 도울 뿐이에요. 이런 일 하나에 ‘일희일비’하면 같이 오래 일할 수 없습니다. 아니면 무서워서 그 누구와도 같이 일할 수 없죠.

청산인쇄의 옵셋 인쇄기. 종이가 들어가면 CMYK(검정, 파랑, 빨강, 노랑) 4색을 순차적으로 찍어낸다. 그는 인쇄는 여러 명이 협업하는 과정이라 서로 이해하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롱블랙
제가 소신처럼 품고 있는 생각이 있습니다.
“일단 나부터 부끄럽지 않게 일하자. 이렇게 일하다 보면 정말 즐거운 순간이 때때로 온다.”
물론 모두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아니에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그냥 소신을 되새기며 할 일을 하기에도 바쁘죠.
여기 놓인 패키지를 보세요. 제가 인쇄한 패키지가 누군가의 기쁨을 담아 전하는 선물이 될 수 있잖아요? 종이 소재 하나만 바꿔도 느낌이 달라져요. 그래픽 하나를 더 얹고, 색을 살짝 바꾸고, 그렇게 예쁜 제품을 만들면 받는 사람도 그걸 예뻐해요.
이런 걸 만드는 게 너무 가치 있는 일인데, 가끔 손해 보면 뭐 어때. 오래 즐겁게 일하면 되는데.

39년째 수많은 물건들을 만들어온 청산인쇄 백 대표. 그는 자신이 부끄럽지 않은, 좋은 물건을 계속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