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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릳츠 : “로고는 중요하지 않다” 원조 브랜딩 카페의 11년 생존기

한이룸

이커머스

2025. 9. 7.

"한국에서 브랜딩 잘한 카페는?"이란 질문에 '프릳츠커피컴퍼니(Fritz Coffee Company, 이하 프릳츠)'가 떠오릅니다. 2014년부터 커피잔 든 물개와 한글 로고로 11년간 한국 커피 문화를 선도했습니다.

브랜딩뿐 아니라 사업도 성공적입니다. 2024년 매출 165억원, 영업이익 7억원으로 전년 대비 성장했습니다. 전국 1300개 카페에 원두 공급과 온라인 판매가 주요 수입원입니다.

  •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된 2024년 감사보고서 기준.

성장세를 이어가며 2025년에는 새 매장 두 곳(4월 독립문점, 8월 장충점)을 열었고, 해외 진출도 가속화했습니다. 2월 미국 LA와 9월 일본 백화점에 팝업 매장을 오픈했습니다.

  • 프릳츠는 2025년 9월 3일~8일 오사카 한큐백화점 우메다 본점에서 팝업을 열었다.

프릳츠의 생존 비결과 향후 방향이 궁금해 서울 중구 장충점에서 김병기 대표를 만났습니다.

김병기 프릳츠커피컴퍼니 공동대표

2025년 9월 5일 오전 10시30분, 약속보다 30분 일찍 도착한 김병기 대표가 "커피 한 잔 내려드리겠다"며 드리퍼와 원두를 가져왔습니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장충점을 살펴봤습니다.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 세 개가 한옥과 서양식 건축이 혼합된 느낌을 줬습니다. 둘러보다 한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단차가 있답니다. 조심하셔요."

'계단 주의' 같은 딱딱한 표현 대신 친근한 문장이 사용됐습니다. 의도적 선택으로 보였습니다. 김 대표가 커피를 들고 오자 "안내문이 독특하네요"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Chapter 1.카페는 혼나려고 가는 곳이 아닙니다

김병기 대표는 먼저 ‘언어 감수성’이라는 단어를 꺼냈습니다.

저는 언어에도 ‘감수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공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되, 이를 받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고 보고 있어요. 오시는 분들이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시길 바라지, 여기서 혼나고 가시지 않았으면 하는 거죠.”

이 말을 듣고 다시 공간을 살폈습니다. 몇몇 문장이 눈에 더 들어오더군요.

“새들이 스스로 살아가도록 먹이를 주지는 말아주세요. 자연스러운 삶을 지켜주세요.”(건물 사이 야외공간에서)

“우산은 비닐을 씌워서 자리로 꼭 챙겨가셔요.”(우산 비닐꽂이에서)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거는 것 같은 다정한 문장. 김 대표는 11년 전 프릳츠의 첫 매장인 마포구 도화점을 열었을 당시, 이런 고민을 동료들과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도화점 2층에는 식수대가 하나 있습니다. 손 씻는 곳처럼 보인 곳이었죠. 손님들이 이걸 마셔도 될지 모르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썼어요. ‘식수입니다. 정말로!’ 전할 내용은 정중하게 담으면서, 작은 위트를 섞는 식이었죠.”

궁금했습니다. 김 대표는 어떻게 창업 초반부터 이런 생각을 한 걸까요. 잠시 시계를 그가 프릳츠를 열기 전으로 돌려봤습니다.

2025년 8월 오픈한 프릳츠 장충점의 모습. 이전에 있던 커피숍 건물에는 대로변을 마주 보는 큰 출입문이 있었으나, 김 대표는 안쪽으로 돌아가야 출입문이 나오도록 만들었다.

Chapter 2. 단골의 "아쉽다"는 한마디로 깨우친 바리스타

1981년생 김병기 대표는 원래 카페 창업을 꿈꾸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으나,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스포츠 기자로 첫 직장을 시작했죠. 그는 "미래를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의 삶이 바뀐 건 2006년 첫 직장이 문을 닫으면서였습니다. 친구 소개로 안암동 카페에서 바리스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죠.

"해외 바리스타 사진이 멋져 보여 시작했어요. 당시 커피 공정무역도 주목받던 때라 취지가 좋다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일해보니 커피 내리는 게 쉽지 않더군요. 기술뿐 아니라 원두 특징과 추출 원리까지 알아야 했어요. 그래도 직접 무언가 만드는 것이 재밌었습니다."

김 대표는 점차 '커피 기술자'로 성장했습니다. 커피 내리기를 넘어 산지 출장으로 생두를 구하고, 나중엔 생두 심사까지 할 수 있게 됐죠. 그는 이때를 "성취감에 자부심을 품었던 시기"라고 회상합니다.

그러나 곧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직접 산지에서 가져온 생두로 볶은 원두로 커피를 내렸어요. 누가 봐도 맛있을 것 같았죠. 매일 오시는 단골에게 자신 있게 '드셔보세요'라고 건넸는데, 나가시며 '커피가 좀 아쉽다'고 하셨어요."

이 한마디에 김 대표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기술자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는 깨달음이 왔죠.

"예전엔 '맛있는 커피 한 잔 만들면 끝'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때 제 일을 다시 정의했습니다. '생산부터 판매, 고객 전달까지 해내는 사람이 기술자'라고요. 커피 맛은 기본이고, 고객이 맛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까지가 제 역할이란 깨달음이었습니다."

2014년 다섯 명의 동료와 함께 프릳츠를 공동창업한 김병기 대표. 그는 인터뷰 내내 '기술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커피를 잘 내린다고 끝이 아니었습니다

잘 만드는 것을 넘어 잘 전하는 사람. 이것이 김 대표가 새롭게 정의한 기술자였습니다. 이 결심과 함께 '이런 기술자들이 오래 일하는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죠.

"카페는 손님이 많아질수록 더 많이 일하는 구조라 오래 안정적으로 일하기 힘들었어요. 그럼에도 저는 현장에서 기술자로 계속 일하고 싶었고, 동료들과 함께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오래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 기술자가 성장하며 경제적 성취도 맛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 2014년 5월 22일, 5명의 동업자와 함께 프릳츠를 설립했습니다. 마포구 도화동 가든호텔 뒷골목 한옥을 2층으로 개조한 공간이었죠.

  • 로스터 김도현, 바리스타 박근하, 바리스타 송성만, 커퍼 전경미, 제빵사 허민수. 허민수는 현재 프릳츠를 떠났다.

프릳츠라는 이름과 카페와 무관해 보이는 물개 로고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특별한 의도는 없었어요. '다른 가게와 구별만 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릳츠라는 이름도 '아무 뜻도 생각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죠. 로고는 디자이너에게 '빵과 커피와 관련 없는 것, 심지어 물개여도 괜찮다'고 했는데, 정말 물개를 그려왔어요. 느낌이 좋아 그걸로 정했습니다."

프릳츠의 시그니처인 커피를 든 물개 로고. '다른 가게와 구별만 되면 충분하다'는 의도였다. ⓒ프릳츠커피컴퍼니

Chapter 3.로고와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습니다

프릳츠는 2014년 이후 '브랜딩 성공 사례'로 불렸습니다. 물개 로고, 생소한 이름, 80년대 한국 스타일 디자인이 주목받았죠.

입소문이 퍼졌고, 2017년 아라리오갤러리 제안으로 '원서점'을 열었습니다. 같은 해 양재동에 3호점도 오픈했죠.

새 매장에서도 옛 감성과 한국적 느낌을 유지했고, 일부 매장에만 시그니처 메뉴를 도입했습니다.

  • 원서점의 경우 '빵 오 레쟝'이 있다. 페이스트리 반죽 위에 커스터드 크림과 건포도를 올린 빵이다.

팬데믹 중에도 성장했습니다. 2020년 삼성전자가 도화점을 냉장고 전시장으로 선택했고, 2021년엔 하이브 사옥에 입점했어요.

프릳츠는 특유의 레트로한 콘셉트로 인기를 얻었다. 사진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도화점(2014), 원서점(2017), 양재점(2017), 제주성산점(2023). ⓒ프릳츠커피컴퍼니

이 성과가 브랜딩 전략 덕분이라 생각했지만, 김 대표는 다른 답변을 했습니다.

"처음엔 브랜딩이란 단어도 몰랐어요. 한국적인 걸 좋아했고 직관에 의존했죠. '브랜딩'이 유행할 때 강연 요청도 많았지만, 저는 항상 '이름과 로고는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김 대표가 집중한 건 빵과 커피의 품질 관리, 그리고 기술자로서의 역할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빵사들은 매일 '제빵 작업일지'를 작성합니다. 반죽 온도, 시간, 내용물을 기록해 품질을 개선하죠.

"커피도 매일 농도, 수율, 물의 적합성을 점검해 품질을 유지합니다.F&B에선 브랜딩보다 제품 품질과 사람이 중요합니다. F&B는 인간 본능과 연결되어 있죠. 맛있는 음식, 사람들과의 교류는 변하지 않으니까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면 손님도 존중받게 됩니다."

실제 프릳츠의 제빵사들이 매일 기록하는 '제빵 작업일지'. ⓒ프릳츠커피컴퍼니

Chapter 4.저부터 가이드북이 되기로 했습니다

김 대표는 프릳츠의 철학을 어떻게 140명의 동료에게 전파할까요? 업무 매뉴얼을 만드는지 물었습니다.

"매뉴얼은 없습니다. 가이드북은 오히려 자발성을 저해한다고 봐요. 대신 제가 말과 행동으로 좋은 본보기가 되려 합니다. 이게 문서화된 지침보다 효과적이지만, 시간이 더 걸리죠."

그의 행동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구성원 이름 기억하기, 정중한 요청하기 같은 일상적인 존중입니다.

"손님이 오실 때도 '자리 빼 놔'가 아니라 '이런 분이 오실 텐데 자리만 준비해주세요'라고 설명해요. 핵심은 '인간으로서의 존중'입니다. 모두가 프릳츠의 기술자로서 안전감을 느끼며 일하길 바랍니다."

인터뷰 전 직접 커피를 내리는 김병기 대표. 그는 프릳츠 조직문화의 핵심은 '존중'이라고 말했다.

Chapter 5.결정권을 갖춘 동료를 키우고 싶습니다

김병기 대표는 "프릳츠는 성장했지만 속도가 빠르진 않다"고 합니다. 11년간 오픈한 매장은 단 7곳으로, 매장 하나당 1년 6개월씩 공들인 셈이죠.

"새 매장은 단순한 확장이 아닌 구성원 성장 기반을 위해 준비합니다. 각 매장은 그곳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해 운영됩니다."

2025년 4월 문을 연 독립문점은 독립문초등학교 앞 베이커리 중심 매장으로, 동네 주민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독립문점은 제빵사들의 의지로 만들어졌습니다. '문턱은 낮추고 품질은 높인다'는 방향성에 맞았죠. 합의 후에는 입지, 메뉴, 운영 시간까지 모두 매장을 이끌 분들이 결정했습니다."

실제 독립문점은 언덕길 5분 거리에 위치, '빵'이라는 빨간 글자 간판 아래 색색의 의자가 있었습니다.

이곳은 빵과 함께 각종 과일과 채소도 판매하고, '물개 꾸미기 놀이'라는 색칠 공부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좋아하는 '동네 빵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근처니 아이들이 즐길 만한 것을 놓자는 구상이었죠."

인터뷰 전날 찾아간 프릳츠 독립문점. '물개 꾸미기 놀이'라는 이름의 색칠공부가 준비되어 있다.

김 대표는 장충점도 같은 맥락이라 했습니다. 미쉐린 3스타 강민구 셰프와의 협업도 동료들 제안으로 이뤄졌고, 와인, 스프레드, '장충족발 라예뜨'도 이들 아이디어였습니다.

  • 프랑스 전통 요리. 돼지고기·거위·오리 등의 고기를 오래 익힌 뒤 잘게 찢어 파테처럼 빵에 발라 먹는 음식.

"자발적 성장에는 끝이 없어요. 그러려면 기술자들이 중요한 의사결정까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회사의 역할은 동료들에게 결정권을 주고 더 나은 결정권자로 성장하게 돕는 것입니다. 프릳츠의 성공은 절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이사진과 동료들의 노고와 판단력 덕분입니다."

프릳츠 장충점의 메뉴도 동료들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왼쪽은 장충동이 족발로 유명하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장충 족발 스프레드'.

Chapter 6.어떤 일에 도전하셨나요, 무조건 자신감을 품으세요

인터뷰 내내 김병기 대표는 에너지와 확신이 넘쳤습니다. 30도 넘는 야외 촬영 중에도 "회사를 위해서라면 몇 시간도 더 할 수 있다"며 웃었죠.

힘 있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건 쉽지 않은데, 그의 자기 확신은 어디서 나오는지 물었습니다.

"인생을 살며 뭔가를 해왔다면 통찰과 직관은 생깁니다. 그걸 믿고 밀어붙이는 거예요. 제가 쌓은 경험으로 생긴 직관을 믿고, '이렇게 하면 사랑받겠다'는 확신으로 달려왔습니다."

"직관만 믿다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직관이 틀릴 때도 있지만, 제가 확신을 갖는 건 다릅니다. 저부터 확신이 없으면 다른 사람은 바로 느낍니다. F&B 분야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자기 직관이 있어요. 그런 고객들이 오는데 가게 주인이 불안하면 성공할까요? '이왕 문을 열었다면 잘하는 척이라도 하라'고 조언합니다. 결정에 자신감을 가져야 그게 가게 기운으로 이어집니다."

즉, 이왕 뛰어들었다면 자신감을 갖고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막연한 자신감'도 괜찮습니다. 물론 노력 없이 자신감만 가지라는 건 아니고, 시간을 들인 후 불안해하지 말라는 겁니다. 저도 커피를 잘 내리려 오후 5시부터 새벽 5시까지 생두를 볶은 날이 많았어요. 이런 반복이 자신감과 자연스러움을 만들었습니다.이런 모습은 제게만 있는 게 아니라 성실하게 살아온 모두에게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자연스러운 아우라가 있다고 믿으세요. 어렵다면, 그런 척이라도 하면 달라질 겁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병기 대표는 "충분히 직관이 있으니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