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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은 :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만든 디자이너, 비범함은 성실에 있다

한이룸

이커머스

2025. 11. 12.

함지은 북 디자이너·상록 대표

하얀색 문의 초인종을 누르자, 함지은 디자이너가 수줍게 웃으며 저를 반겼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21평의 사무실은 누가 봐도 ‘북 디자이너의 사무실’ 같았어요. 천장까지 닿는 철제 책장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죠.

그는 제가 자리에 앉는 사이 미리 준비한 스콘과 직접 내린 커피를 건넸습니다. 사뭇 긴장한 모습을 보이는 그에게 이유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죠.

“잘하고 싶은 마음에,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면 많이 긴장하는 편이에요. 저는 제 얘기를 하는 것보다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거든요.”

의외였습니다. 그가 만든 작업물은 하나같이 뚜렷한 색의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Chapter 1.압도감과 간결함을 넘나드는 디자이너

먼저 함지은 디자이너를 유명하게 만든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두 권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두 작업물을 나란히 보면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표현 방식이 ‘정반대’라는 것. 한쪽은 눈이 시릴 만큼 강렬한 붉은색을 품고 있습니다. 다른 쪽은 흰색 배경에 검은 글자만 눈에 들어오죠.

“매번 ‘그 책’에 맞는 경험을 설계하려 해요. 작업을 의뢰받으면 먼저 하는 일은 시간을 들여 원고를 읽는 것입니다. 텍스트에서 키워드를 뽑은 다음 그걸 디자인으로 표현하죠. 내용이 우선이기에 제가 만든 디자인은 일관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어요.”

강렬한 붉은색을 품은 책은 『2666』 볼라뇨 20주기 특별합본판*입니다. 책의 크기는 보통의 소설책 두 배 정도로, 한 손으로 들기 버거운 수준이에요. 책의 분량도 200자 원고지 6573매에 달하죠.

  • ‘라틴 아메리카 거장’으로 불리는 칠레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유작 5편을 한 권으로 묶은 책이다.

“이 책은 ‘악’을 고찰하게 만드는 소설이에요. 그에 맞춰 ‘빨간색 덩어리’가 서점에서 보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사실 서점의 문학 코너에는 이렇게 큰 책이 없거든요. 존재만으로도 압도감을 줄 방법을 고민한 결과였죠.”

함 디자이너는 표지 그림에도 책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붉은색 배경 위에 20명 넘는 검은 사람 형체가 허우적거리고 있는 ‘지옥도’를 그려 넣었죠. 나아가 책을 둘러싼 세 개의 면(책머리, 책배, 책꼬리)에 은장을 입혔습니다. 멀리서 보면 ‘빛나는 벽돌’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대놓고 ‘벽돌’이 되기를 자처한 이 책, 2024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됐습니다. 당시 심사평은 “『2666』은 하나의 아름다운 벽돌로서, 유행처럼 나오는 다른 ‘커피테이블 북’과 비교해 높은 완성도를 보여 준다”였어요.

반면 함 디자이너는 모든 요소를 덜어낸 책도 만들었습니다. 2025년에 상을 받은 『열린책들 세계문학 모노 에디션』시리즈가 그렇습니다.

그는 총 열 작품으로 마련된 책 앞표지에 제목과 작가 이름만 썼습니다. 뒤표지엔 내용을 상징하는 그림을 딱 하나만 넣었죠. 이때 쓴 색상은 오직 ‘검은색’. 가령 『안나 카레니나』의 앞에는 ‘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Анна Каренина’를 쓰고, 뒤에는 샹들리에 하나를 그리는 식이었습니다.

“보통 ‘세계 문학’ 하면 힘을 준 양장본이 떠오르잖아요? 반대로 저는 독자들이 더 가볍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색을 뺐습니다. 이 제약 안에서 단조로움을 막을 방법을 찾았어요. 앞표지에 한글과 영문, 키릴 문자 등을 넣는 식이었죠.”

함지은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열린책들 세계문학 모노 에디션』의 『안나 카레니나』. 앞표지엔 제목과 작가 이름을, 뒤표지엔 내용을 상징하는 그림을 넣었다. ⓒ함지은

Chapter 2.도서관에서 살았던 미대생, 북 디자인에 눈을 뜨다

자아가 뚜렷한 작업물과 달리, 함지은 디자이너는 소극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떠들기보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는 쪽이었죠. 이 성향이 그를 책에 빠지게 했어요.

“기억이 남아 있는 순간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동화와 위인전, 백과사전. 가리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말없이 책을 읽었죠. 『어린 왕자』 같은 책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었고요. 도서관과 책 냄새, 종이의 질감을 잠잠히 느끼는 걸 좋아했어요.”

그렇다고 출판 분야에 꿈을 품은 건 아니었습니다. 읽기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막연한 마음으로 미대에 가겠다고 한 정도였죠. 입시에 도전한 끝에, 2007년 그는 홍익대 회화과에 입학했어요.

하지만 합격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나를 끊임없이 표현하라”는 회화과 수업이 적성에 맞지 않았거든요.

“저는 그림 그리는 것만 생각했어요. 막상 들어간 수업에서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과, 이걸 세상에 보여줄 방법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죠. 주로 이야기를 듣는 제 성향과 맞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실기실 대신 도서관을 드나드는 학생이 됐습니다. 2년 가까이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죠. 그러다 진로를 바꾸는 책을 만납니다. 안그라픽스*에서 낸 『레이아웃』, 『인쇄와 후가공』. 일종의 ‘북 디자인 이론서’였죠.

  • 1985년 1세대 타이포그래퍼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안상수가 설립한 크리에이티브 그룹이자 출판사. 주로 디자인과 관련한 책을 낸다.

“북 디자인 책을 뒤적이는 것 자체가 즐거웠어요. 제가 좋아하는 책과 그림을 합쳐놨으니까요. 그렇게 책장을 넘기다 문득 ‘이 일을 해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화려한 결심은 아니었지만, 책의 이야기를 나만의 디자인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꿈틀거린 순간이었죠.”

이때부터 함 디자이너는 ‘북 디자인’에 발을 들였어요. 시각디자인과의 수업을 듣고, 학교를 졸업한 후 2014년엔 서울출판예비학교(Seoul Book Institute, 이하 SBI)*에 들어갔죠. ‘출판’의 과정을 제대로 익힌 것도 이때였습니다.

  •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운영하는 교육 기관. 선발되면 6개월간 출판 편집·디자인·마케팅 교육을 들을 수 있다.

Chapter 3.“딱 10년만 해보라”는 말을 닻으로 삼다

함지은 디자이너는 SBI에서 두 가지 배움을 얻었습니다. 먼저 그는 ‘자신이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발견했어요. 바로 ‘책의 표면을 평면이 아닌 입체적으로 다루는 일’이었죠.

이미 출판된 책의 새로운 표지를 만들어 보라는 과제가 계기였습니다. 그는 소설 『달과 6펜스』에 ‘구멍이 뚫린 북 재킷’을 입혔어요. 재킷 속 표지에는 프랑스 출신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의 그림을 넣었습니다*. 구멍 사이로 그림이 슬쩍슬쩍 보이게 만들었죠.

  • 영국 작가 윌리엄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는 폴 고갱의 삶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소설은 화가가 되기 위해 가족을 버리고 파리로 떠난 찰스 스트릭랜드를 화자인 ‘나’가 서술하는 내용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용 ‘한 겹’ 뒤에 있는 고갱의 그림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구멍 뚫린 재킷을 벗겼을 때, 고갱의 그림 전체가 드러나게끔 표현했죠. 소설 속 이상을 뜻하는 달과, 현실을 뜻하는 6펜스에서 ‘동그란 구멍’이라는 모양의 영감을 얻었고요.

이 과제로 그는 “작업물이 독특하다”는 평을 들었어요. 그 비결은 남들이 가지 않은 어려운 길을 택한 데 있었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표지에 새로운 그림이나 타이포그래피를 넣을 때, 함 디자이너는 손이 많이 가는 후가공*을 했거든요.

  • 인쇄 후 표지나 내지에 가공을 더하는 것. 입체감을 만드는 ‘형압’, 얇은 필름지를 입히는 ‘박’ 등이 있다.

“선생님들께서 제 작업물을 짚어서 칭찬하는 경험을 하고, ‘이걸 더 해 봐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었어요. 그때부터 북 디자인을 업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다음으로 그는 SBI의 선생님들로부터 ‘일을 대하는 태도’도 배웠습니다. 당시 그의 마음에 박힌 두 문장은 다음과 같았어요.

첫째, 일할 땐 기꺼이 해라.

둘째, 하기로 했으면 눈 딱 감고 10년은 일해 봐라.

“이전까지 저는 확신 없이 부유하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일의 재미를 느끼는 이 시점에 선생님들의 조언을 들으며 ‘그럼 나는 어떻게 되든 10년간 북 디자인을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결심을 한 그는 SBI를 수료하자마자 일터로 달려갔습니다. 2014년 10월부터 3년 반 동안 씨디자인c-design*이라는 회사에서 일했어요. 교과서부터 인문서까지. 비문학 책을 주로 만들었습니다. “정신없이 기본기를 쌓은 시기였다”고 그는 당시를 회고해요.

  • 한길사 디자이너와 문학과지성사 아트디렉터 출신 조혁준 디자이너가 설립한 출판 디자인 에이전시.

“대표님은 출판사들의 ‘해결사’ 같은 존재였어요. 이틀 안에 표지 시안을 짜야 할 때도 있었죠. 주말이나 새벽까지 일할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책날개에 제 이름이 찍힌 걸 보면 그게 참 좋았어요. 제가 디자인한 책을 서점에서 누군가 사면, 그걸 몰래 지켜보기도 했죠.”

함 디자이너가 2014년 SBI에서 과제로 만든 『달과 6펜스』 표지. 원을 나란히, 혹은 겹친 모양으로 북 재킷에 구멍을 뚫었다. 소설이라는 한 겹 뒤에 있는 고갱의 그림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함지은

Chapter 4.엉덩이 싸움을 넘어선 ‘일상 훈련’이 필요하다

4년 가까이 기초체력을 다진 함지은 디자이너. 2018년 새로운 기회를 만납니다. 열린책들의 자회사 미메시스로 자리를 옮겼다가, 곧장 디자인 팀장* 자리를 맡게 됐거든요.

  • 2019년 미메시스가 열린책들로 합병되면서 함 디자이너는 2024년까지 열린책들의 디자인 팀장으로 일했다.

이곳에서 그는 날개를 단 듯 활약했습니다. 처음 반응을 얻은 건 2018년 8월 출간한 『장미의 이름』* 리커버판. 가죽 질감의 검은 표지에 각종 기호와 도형을 형광 초록색으로 그려 넣었죠. 그림에는 박을 입혀 빛나게 만들었고요. 책을 감싼 세 개의 면은 짙은 초록색으로 채웠습니다.

  • 이탈리아 기호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추리소설.

2018년 함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장미의 이름』 리커버판. ⓒ열린책들

“제목엔 장미가 있지만, 소설에 주로 나오는 소재는 ‘독약’이었어요. ‘장미’ 하면 떠오르는 빨간색 대신 쓸 색을 찾다가 과거 녹색 안료를 만들기 위해 ‘비소’라는 독을 썼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디자인도 책을 구매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이걸 깨달은 함 디자이너는 그 뒤로 디자인하는 책마다 ‘소장할 이유’를 넣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2021년 낸 소설 『향수』 리커버판엔 표지에 장미 향을 입혔어요. 2022년 낸 『어린 왕자』 리커버판엔 ‘움직이는 그림’을 표지에 넣었고요. ‘코끼리를 소화시키는 보아뱀’ 그림 위에 있는 필름지를 옆으로 당기면, 보아뱀 속 코끼리가 보이는 그림으로 변하게 한 겁니다.

궁금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원천은 무엇일까요. 그에게 묻자 “주야장천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잘 해내고 싶다.’ 오직 이 마음뿐이었어요. 제가 맡은 자리는 ‘실력 좋은 출판사에 뛰어난 디자이너가 일했다’는 역사가 있는 곳*이었거든요. 이 부담을 이기려면 매일 모니터 앞에 앉는 수밖에 없었어요. 혼자서 작업물과 싸우는 마음이었죠.”*열린책들은 업계에서 ‘디자인에 강한 출판사’로 인정받고 있다. 모스그래픽의 대표 석윤이 디자이너가 열린책들 출신이다.

‘책상에 앉아 엉덩이 싸움을 했다’는 건 사실 예상한 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어서 돌아온 답은 예상 밖이었어요. 그는 “일상을 안목 높이는 훈련하듯 보냈다”는 이야기를 이어갔죠.

“저는 아직도 ‘보는 눈이 모자라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모니터 밖에서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요. 방법은 단순해요. 틈날 때마다 전시를 보러 가고, 평소에도 좋아 보이는 게 있으면 ‘보면서 생각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책을 볼 때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디자인도 책을 구매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그는, 디자인하는 책마다 소장할 이유를 넣었다. 가령 2022년 디자인한 『어린 왕자』 리커버판엔 ‘움직이는 그림’을 표지에 넣었다. ⓒ열린책들

Chapter 5.‘비슷비슷한 것’을 다르게 볼 수 있는 힘

함지은 디자이너가 쌓은 모니터 안팎에서의 노력을 듣다 궁금해졌습니다. 그 여정 끝에 얻은 그만의 북 디자인 원칙이 무엇인지 물었어요.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내용이죠. 북 디자인이 할 일은 그 내용을 잘 담는 거예요. 즉, 글자가 가장 잘 읽히게끔 해야 하죠.

책 속에 담긴 내용에 빠져들게 하는 것. 함 디자이너가 세운 일의 원칙입니다. 그래서 그는 표지를 화려하게 만들더라도 내지는 최대한 ‘차분하게’ 디자인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함 디자이너는 내지의 각주 번호에는 절대 색깔을 넣지 않습니다. “각주는 본문을 뒷받침하는 부가 요소이기에, 눈에 먼저 들어오면 안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죠.

반면 한글과 영문, 숫자에 따라 서체를 다르게 쓰기도 합니다. 가령 2025년 10월에 출간한 『다른 우주의 문법』에선 한글은 최정호체를, 영문과 숫자는 바스커빌Baskerville을, 따옴표 같은 문장 부호는 알다인Aldine을 썼죠. 이 역시 “독자들이 거슬림 없이 글자를 읽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에요.

“하나의 서체만 고집하면 언어가 바뀔 때 독자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습니다. 각 언어와 기호마다 어울리는 서체가 있거든요. 그에 맞춰 서체를 섞는 거예요.

점점 뾰족해지는 그의 답변을 들으며 의문이 들었습니다. ‘0.1포인트와 같은 차이를 독자들이 알아챌까?’

“대부분의 독자들이 봤을 때는 비슷비슷해 보일지 몰라요. 하지만 제가 안목을 높이는 훈련을 계속하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어떤 게 ‘좋다’고 느껴진다는 힘은 아주 작은 디테일들의 총합에서 나온다는 점이죠.”

‘책 속에 담긴 내용에 빠져들게 하는 것.’ 함 디자이너가 세운 북 디자인의 원칙이다. 이를 위해 그는 내지의 디테일에 집중한다. 사진은 작업하고 있는 함지은 디자이너. ⓒ롱블랙

Chapter 6.“보기에 아름다운 책은 앞으로 더 필요할 것”

함지은 디자이너는 2025년 1월, 디자인 스튜디오 상록常綠을 세웠습니다. 직장인 북 디자이너로 꼬박 10년을 채운 뒤에 독립한 거였죠.

상록. ‘오래 두고 보아도 아름다운 책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입니다. 그 의지를 따라, 그는 ‘책장에 꽂아두고 싶은 책’을 디자인하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책의 성격도 바뀌고 있죠. 저는 이제 ‘소장성’이 있는 책이 살아남는다고 봅니다. 북 디자인의 역할도 그래서 더 중요해지고 있죠.”

독립 후 그의 첫 작업물은 이제야 시인의 시집, 『진심의 바깥』이었습니다. 겉모습을 보면 이 책이 ‘시집’일 거라고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책의 3분의 2를 덮을 정도로 큰 띠지에, 형광빛이 감도는 초록색과 주황색이 채워져 있거든요.

전기가오리의 「카프카는 거꾸로 읽어도 카프카」 시리즈도 상록의 작품입니다. 이 역시 ‘책 같지 않은 책’으로 만들었어요. 길쭉한 종이를 스프링으로 제본해, 마치 수첩 같은 모습을 구현했죠.

소장하고 싶은 존재를 만드는 것. 함 디자이너는 이를 ‘작품과 제품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모두 잡는 일’이라고 정리했습니다.

“제 일은 예술과 비즈니스, 작품과 제품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가치 있다고 믿어요.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독자에게 닿으려 노력하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