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 다섯 개 중에 제일 공들인 하나를 상세페이지 맨 위에 걸어요. 그런데 11월 정산표를 열면 1등은 늘 구석에 둔 작년 옵션이에요. 괜히 서운하죠.
미국 향초 브랜드 네스트 뉴욕(NEST New York)의 간판도 그렇게 뽑혔어요. 만든 사람이 아니라 손님이 골랐거든요.
석류, 만다린, 소나무, 정향, 시나몬이 섞인 '홀리데이' 향이에요. 1년에 넉 달만 매장에 나오는 52달러짜리 연말 한정 캔들이죠. 그런데 이 향은 첫 라인업 12종에 없었어요. 손님들이 해마다 다시 사 가면서 간판이 됐고, 회사 설명으로는 그 연말 시즌 매출이 1년 매출의 절반을 넘긴대요.
반대로 창업자 로라 슬랫킨(Laura Slatkin)이 "우리가 낸 향 중 최고"라던 버번 쿠키 향은 아무도 안 샀죠. 두 향이 어디서 갈렸는지, 로라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 볼게요.
"로라, 그렇게 앉아만 있을 거면 집에 가자"
로라는 원래 월가 사람이었어요. 리먼 브라더스에서 13년 동안 자산가들 주식을 굴렸죠. 1990년대 초, 남편 해리와 함께 회사를 나와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시아주버니의 맨해튼 가게로 들어갔어요. 집 한 채를 다 꾸미면 마무리로 그 집만의 향을 만들어 주던 사람이었거든요.
그 아이디어로 차린 향초 회사 슬랫킨앤코를 2005년, 배스앤바디웍스를 거느린 리미티드 브랜즈에 팔았어요. 그런데 경쟁 금지 조항 때문에 3년 동안 자기 브랜드를 못 냈죠. 할 수 있는 일은 남의 브랜드 캔들을 대신 만들어 주는 것뿐이었어요. 랄프 로렌, 나스, 토리 버치까지 100곳이 넘었대요.
그중 가장 큰 건이 하나 있었어요. 아주 큰 대중 브랜드의 홈 향 라인이었죠. 향을 다 만들고, 패키지를 다 디자인하고, 로라가 직접 전국 유통사를 돌며 입점까지 받아놨어요. 그해 농사가 전부 그 하나에 걸려 있었고요.
어느 날 저녁, 로라는 남편과 저녁을 먹으러 매디슨 애비뉴로 가던 길이었어요. 휴대폰에 음성 메시지가 와 있었죠. 그 회사 CEO였어요. 계약은 없던 일로 하자는 내용이었어요.
"심장에 칼이 꽂히는 것 같았어요. 숨이 안 쉬어졌죠." 식당에 앉아서도 향료 회사엔, 협력업체엔, 직원들한텐 뭐라고 하나 그 생각뿐이었대요. 땀만 흘리는 로라에게 해리가 한마디 했어요. "로라, 그렇게 앉아만 있을 거면 집에 가자." 데이트하는 날이었는데 말이에요.
계약은 끝내 살아나지 않았어요. 로라는 직원들을 회의실로 불렀고, 소식을 들은 다들 헉 소리를 냈대요. 로라는 그 자리에서 판을 뒤집었는데요. "그 향들, 그 패키지, 그 유통 관계 전부 가져가요. 거기에 우리 이름을 붙일 거예요. 준비하세요."
자기 이름을 걸기로 한 데엔 믿는 구석이 있었어요. 남의 캔들을 100개 넘게 만들어 본 3년 동안, 로라는 손님들이 하는 말을 들었거든요. "패션 디자이너 캔들, 구두 디자이너 캔들은 싫어요. 향초 하는 회사 캔들을 살래요." 손님이 먼저 답을 말해주고 있었던 거죠.
1년 뒤인 2008년 말, 네스트 캔들 12종이 나왔어요. 금융위기로 다들 외식을 끊던 때였죠. 로라 말로는 사람들이 집에서 미트볼 스파게티를 해 먹고, 친구를 불러 초를 켰대요. 출시 첫날 캔들이 수천 개 팔렸어요.
"그 향을 좋아한 사람은 저 하나였어요"
손님 말을 잘 듣던 로라도 자기 코를 더 믿은 적이 있어요. 버번을 넣은 슈거쿠키 향을 낸 적이 있는데, 본인은 "우리가 낸 향 중 최고"라고 했죠. 주변에서도 일단 켜보면 다들 살 거라고 했고요.
결과는요? 일주일 뒤 전화해 보니 아무도 안 샀대요. "문제는 그 향을 좋아한 사람이 저 하나였다는 거예요." 만든 사람이 가장 아끼는 향과 손님이 지갑을 여는 향은 다른 물건이었던 거죠.
반대로 로라를 길에서 붙잡는 향이 있었어요. "당신네 홀리데이 캔들이 없으면 연말이 연말 같지가 않아요." 이 말을 정말 자주 듣는대요.
재밌는 건, 이 향이 간판 자리에 나중에 올라왔다는 거예요. 2009년 초 향초 블로그 캔들 딜리리엄(Candle Delirium)이 소개한 첫 컬렉션 12종 목록에 홀리데이 이름은 안 보이거든요.
그 뒤로 손님들이 해마다 같은 계절에 같은 향을 들고 계산대로 왔어요. 그게 쌓여서 간판이 된 거죠. 로라가 회의실에서 고른 12종이 아니라, 손님이 계산대에서 고른 한 종이요.
지금은 그 향이 거리까지 채워요. 연말이면 뉴욕 5번가에 늘어선 트리 장식 디퓨저에서 홀리데이 향이 나와요. 백악관 연말 행사에 홀리데이 캔들 350개가 켜졌다고 로라가 자랑한 적도 있죠. 1년에 넉 달만 파는 52달러짜리 초가 여기까지 왔어요.
"집 냄새를 그대로 입고 다니긴 좀 그렇잖아요"
손님이 고른 간판은 이제 다른 그릇에도 담겨요. 로라는 2025년 여름 일상 경영에서 물러나 이사회에 남았고, 그 뒤를 맡은 팀이 홀리데이 향을 다듬어 '원더(Wonder)'라는 오 드 퍼퓸으로 냈어요. 100ml에 125달러예요.
새 향을 만들지 않은 이유도 손님이에요. 크리에이티브·브랜드 총괄 토니 라키스(Toni Lakis)의 설명은 간단해요. "손님들이 해마다 이 연말 향을 찾아서 오세요. 그래서 이 향을 여러 방식으로 살릴 방법을 찾아왔죠."
그렇다고 캔들 향을 그대로 병에 붓진 않았어요. "당연히 집 냄새를 그대로 입고 싶진 않잖아요. 그래도 홀리데이의 핵심은 살렸어요." 거실 냄새를 풍기며 출근하면 동료들이 이사했냐고 물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파출리를 더해 조금 더 어둡고 매콤하게 바꿨대요.
마케팅 책임자 에르완 르 베리고의 말이 이 결정을 보여줘요. "결국 손님을 홈 향 매대에서 향수 매대로 데려오는 거예요." 창업자가 아끼던 버번 쿠키가 아니라, 손님이 해마다 다시 산 향이 그 자리에 갔어요.
"작년 12월에 팔린 그 옵션, 올해도 팔렸나요?"
한국 셀러로 치면 이런 장면이에요. 스마트스토어에 겨울 니트가 다섯 가지 색으로 있는데, 해마다 11월이면 오트밀 색만 먼저 품절돼요. 우리는 보통 "올해도 잘 나갔네" 하고 넘기죠. 공들인 건 올해 새로 뽑은 색이니까요.
네스트를 따라가 보면 그 오트밀 색이 우리 가게의 홀리데이예요. 우리가 고른 적 없는데 손님이 먼저 간판으로 삼은 색이죠. 다음 상품을 설명할 말도 이미 손님 입에 있어요. "그 색이요"라고 하면 다 알아듣거든요.
조건은 하나예요. 같은 시기에 같은 손님이 다시 사야 하거든요. 한 번 반짝한 히트와는 다르죠. 홀리데이도 손님이 해마다 돌아오는 걸 보고 나서야 간판이 됐으니까요.
로라의 버번 쿠키가 남긴 말을 가져가면 돼요. 만든 사람이 가장 아끼는 것과 손님이 다시 사 가는 것은 다를 수 있거든요. 간판은 후자가 정하죠.
시즌 상품을 짜기 전에 작년 11~12월 주문 내역을 열고, 재작년 같은 달에도 팔렸던 옵션에 형광펜을 그어보세요. 두 해 연속 손님이 다시 고른 그 이름을 올해 상세페이지 맨 위에 걸어보세요!
버번 쿠키 향이 어떤 냄새였을지 괜히 궁금해진, 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