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 한 번 나가려면 사이즈별로 박스를 다 실어야 하는데, 남으면 그대로 싣고 와야 하고….'
자사몰 손님을 늘려 보려고 팝업스토어를 알아보다 여기서 멈춘 적 있죠. 재고 계산기를 두드리다 보면 팝업은 큰 브랜드나 하는 일 같거든요.
그런데 미국 남성 바지 브랜드 보노보스(Bonobos)는 10년 넘게 정반대로 매장을 굴려 왔습니다. 옷은 다 걸려 있는데, 들고 나갈 수가 없어요. 손님은 입어 보고, 사이즈를 재고, 빈손으로 나가죠. 말 그대로 사이즈만 재는 매장입니다.
빵집으로 치면 시식만 하고 빵은 택배로 받는 가게예요. 이런 가게가 지금 48곳이고요. 최근엔 이 매장에서 잰 '내 사이즈'를 쇼핑몰, 그러니까 자사몰과 한 장부로 묶었습니다.
쇼핑백 바지와 아파트 창고
시작은 바지 한 벌이었어요. 사모펀드 회사에 다니던 브라이언 스펄리가 여자친구한테 장난 선물로 재봉틀을 받았죠.
"낮엔 사모펀드에서 일하고, 밤엔 재봉틀을 붙잡고 만지작거렸어요."
그가 고치고 싶었던 건 남자 면바지의 엉덩이였습니다. 천이 남아 기저귀 찬 것처럼 처지는, 일명 '카키 기저귀 엉덩이'. 허리 밴드를 둥글게 휘고 허벅지를 좁혀 그 처짐을 잡았죠.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 들어가서도 바지는 계속 만들었어요. 파는 방식은 소박했는데요. 동기들한테 트레이더 조 장바구니에 담아 판 게 1만 달러(약 1,400만 원)어치였습니다. 자동차 트렁크를 열고 팔기도 했고요.
2007년엔 하우스메이트 앤디 던이 취업 대신 이 바지에 뛰어듭니다. 퇴직연금을 깨 월급 없이 버티면서 파티, 트렁크쇼, 결혼식장을 돌았죠. 웹사이트를 열기도 전에 475벌이 나갔어요.
여기서 눈여겨볼 숫자가 있습니다. 스펄리가 대학 신문에 밝힌 바로는, 바지를 직접 입어 본 남자의 92%가 샀대요. 입어 보기만 하면 팔리는 바지였던 거죠.
그해 가을 보노보스닷컴이 열렸습니다. 던은 바지 400벌쯤을 싣고 뉴욕으로 가서, 유니언스퀘어 아파트에서 직접 포장해 부쳤어요. 첫해 매출은 약 10만 달러였고요.
바지만 팔리던 웹사이트
온라인 장사는 굴러갔죠. 막힌 건 바지 다음이었습니다.
셔츠를 내놨는데 안 팔렸어요. 그 시절을 다룬 비즈니스 인사이더 기사엔 이런 문장이 있거든요. 온라인에선 "바지 말고는 사실상 아무도 아무것도 안 샀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바지는 맞는 걸 한 번 찾으면 같은 사이즈로 또 사면 되죠. 처음 보는 셔츠는 맞을지 모르니 장바구니에 안 담기고요. 손님은 새 옷의 핏을 몰랐던 거예요.
돈은 늘 빠듯했죠. 던은 그때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보노보스 첫 3년 동안 제 통장엔 3,000달러, 월세 3,000달러짜리 집, 그리고 15만 달러 빚이 있었어요."
투자를 받은 뒤에도 회사 현금은 툭하면 석 달 치였어요. 그런데 정작 던은 매장을 반대했습니다. 매장을 내면 "브랜드의 고객 서비스 품질이 떨어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거든요. 남자는 쇼핑을 싫어하니까 남성복은 결국 다 온라인으로 간다고 믿었죠.
본사 로비의 커튼 몇 장
손님들은 자꾸 물었습니다. 어디 가면 입어 볼 수 있냐고요.
2011년, 보노보스는 뉴욕 본사 로비에 커튼을 쳤어요. 홍보 담당 에린 그랜트의 말입니다.
"말 그대로 본사 로비에 커튼 몇 장 치고 어떻게 되나 봤어요." 결론은 "이걸로 키워야겠다"였죠.
90일 실험 끝에 이듬해 보스턴에 첫 단독 매장이 열렸는데요. 이름은 '가이드샵'. 예약하면 가이드라 부르는 직원이 30분에서 1시간 붙습니다. 사이즈별 샘플만 있고, 주문은 가이드가 태블릿으로 넣죠. 옷은 며칠 안에 집으로 가고요.
던은 이렇게 말했어요. "옷은 바로 들고 가야 한다고들 하죠. 틀렸어요. 재고를 집에 들고 가는 건 특권이 아니라 짐이에요. 그건 저희가 할게요."
숫자가 따라왔습니다. 매장 결제 한 건이 온라인 평균 주문액의 두 배였거든요. 몇 년 뒤엔 바지 아닌 옷이 매출의 절반을 넘겼고요. 바지만 팔리던 회사였는데 말이죠. 그사이 매장과 백화점 입점에 힘을 실으면서 온라인 광고비는 매출의 25% 넘던 데서 4%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제일 재밌는 건 손님 말이에요. 필라델피아 가이드샵에서 청바지 두 벌과 스웨터를 고른 마커스 빔은 빈손으로 나가며 말했죠.
"좋은 건, 온라인으로 다 사면서 몇 달이고 매장에 안 와도 된다는 거예요."
매장 한복판에 서서 "다시는 안 와도 돼서 좋다"고 칭찬한 셈입니다. 보통 가게 주인이면 서운할 말인데, 보노보스한텐 이게 만점 후기였죠. 사이즈를 한 번 재 주면, 손님은 그다음부터 쇼핑몰에서 혼자 사거든요.
매장에서 잰 사이즈가 자사몰로
매장 기록과 자사몰이 최근 한 단계 더 붙었습니다. 보노보스가 쇼피파이로 자사몰을 새로 열었거든요. 리테일 인사이더 보도를 보면 핵심은 '마이 핏(My Fit)'이에요. 가이드샵에서 잰 사이즈가 매장 시스템과 보노보스닷컴에 똑같이 깔리죠.
피팅룸을 나간 손님에겐 후속 연락이 자동으로 갑니다. 7일 안에 온라인이든 매장이든 산 주문은 처음 맞춰 준 매장과 가이드 몫으로 잡히고요. 직원이 "집에 가서 편하게 주문하세요"라고 해도 손해 볼 일이 없어진 거죠.
이커머스 총괄 엘런 포프는 "해외 손님에게는 디지털 매장이 보노보스를 만나는 주된 길"이라고 했어요. 그사이 회사 주인은 월마트로, 다시 익스프레스와 WHP로 바뀌었는데요. 커튼에서 시작한 가이드샵은 지금도 48곳에서 손님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팝업에 실을 건 박스 말고 줄자
보노보스가 잘된 이유를 매장 48곳에서 찾으면 따라 할 게 없죠. 진짜 원인은 훨씬 작습니다. 처음 보는 옷은 안 사고, 맞는 걸 아는 옷은 또 사는 손님 마음이에요. 보노보스는 사이즈만 재는 매장을 그 '처음 한 번'만 맡는 자리로 썼거든요.
내 스마트스토어로 치면 이렇습니다. 팝업에서 제일 아까운 건 남은 박스가 아니라, 입어 보고 "다음에 살게요" 하고 간 손님이죠. 그 손님 사이즈와 카톡 채널 친구 추가를 같이 받아 두면, 그 '다음에'가 우리 쇼핑몰에서 일어나요. 마켓 수수료도 검색 광고도 안 거치고요.
옷이 아니어도 통합니다. 신발 발볼, 반지 호수, 향 취향처럼 한 번 알면 또 사는 정보가 있는 물건이면 다 되죠.
다음 팝업엔 사이즈별 샘플 한 벌씩만 걸고, 계산대 옆에 자사몰 주문 QR을 붙여 보세요. 택배는 다음 날. 싣고 갈 박스는 줄고, 손님 사이즈 기록은 남습니다. 보노보스도 시작은 로비 커튼 몇 장이었어요. 우리도 팝업 한쪽에 커튼 하나부터 쳐 봐요!
퇴근길에 줄자부터 하나 산 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