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0건.
호주 레깅스 브랜드 스탁스(STAX)가 무너지면서 끝내 손님에게 못 보낸 주문 수예요. 결제는 이미 끝났는데, 옷은 오지 않았죠.
그런데 이 브랜드를 새로 산 부부가 재출시를 앞두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이 주문을 떠안는 거였어요. 법으로는 한 푼도 안 갚아도 되는 돈이었는데요.
못 보낸 주문을 금액 그대로 적립금으로 바꿔 주겠다고 하자, 연락받은 손님 약 1만 3천 명 가운데 9,500명가량이 직접 들어와 주문 내역을 확인했어요. 화가 제일 많이 났던 손님 명단이, 새 가게의 첫 손님 명단으로 바뀌는 중입니다.
엄마 집 빈방에서 시작해 빗속에 1,000명이 줄을 섰어요
시작은 초라했어요. 2015년, 돈 로버트슨은 호주 퍼스의 어머니 집 빈방에서 스탁스를 차렸어요. 앞서 하던 보충제 사업 '머슬 스탁스'가 잘 안 풀려서, 개인 빚만 8만 호주달러(약 7,200만 원)를 안고 있었죠.
첫 옷은 로고 박힌 후드티였어요. 파트너 마틸다가 합류하면서 운동복으로 품목을 넓혔고요. 사이즈를 4부터 24까지 깔아 둔 브랜드라, 몸집과 상관없이 입을 수 있다는 팬층이 생겼죠.
2022년엔 한 해 매출이 3,000만 호주달러(약 270억 원)를 넘었어요. 부부는 호주 경제지 AFR의 젊은 부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같은 해 연 팝업엔 장대비가 쏟아지는데도 손님 1,000명이 줄을 섰대요. 그 줄이 부부를 정식 매장으로 이끌었어요. 팝업을 1년 반쯤 돌린 뒤 매장을 하나씩 열어, 많을 땐 12곳까지 늘었습니다.
관리인이 들어온 날에도 세일 배너는 켜져 있었어요
팝업과 정식 매장은 체급이 달랐어요. 몇 년짜리 임대 계약, 매장마다 붙는 직원, 진열대를 채울 재고가 따라왔거든요.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니 코로나 뒤 소비가 꺾였죠.
부부는 람보르기니와 포르쉐까지 차 세 대를 팔아 회사에 돈을 넣었어요. 그래도 매장은 하나둘 조용히 닫혔고, 시드니 두 곳만 남았습니다.
올해 6월 말, 거래 은행이 회사에 관리인을 보냈어요. 그날도 홈페이지엔 세일 배너가 걸려 있었고, 주문은 다음 날까지 계속 들어왔죠. 석 달 가까이 받아 둔 예약 주문도 쌓여 있었고요. 회사는 멈췄는데 세일 배너만 끝까지 출근한 셈이죠.
손님들의 속은 타들어 갔어요. 한 손님 글은 이랬어요. "I literally ordered stuff six weeks ago and no communication at all." 6주 전에 주문했는데 연락 한 통 없다는 하소연이었습니다.
7월엔 청산 절차에 들어갔어요. 남은 빚은 약 2,400만 호주달러(약 220억 원)였습니다. 기프트카드와 적립금도 쓸 수 없게 됐고요.
한참 말이 없던 창업자 부부는 개인 인스타그램에 사과문을 올렸어요. "First and foremost, we're truly sorry for this and for not communicating earlier." 무엇보다 이번 일, 그리고 진작 알리지 못한 게 정말 죄송하다는 말이었죠.
그러면서 돈을 돌려받으려면 각자 카드사나 페이팔에 구매자 보호, 또는 차지백(카드 결제 취소 요청)을 알아보라고 했어요.
손님 입장에선 브랜드 대신 은행 창구가 유일한 환불 창구가 된 겁니다.
빚은 안 샀는데, 주문은 갚기로 했어요
8월, 이 브랜드를 사 간 건 시드니의 저스틴 트엉과 샌디 리-트엉 부부였어요. 한정판 운동화를 사고파는 호주 리셀 장터 '푸샤스(PUSHAS)'를 키운 사람들이죠. 샌디 신발장 속 운동화 90켤레로 시작한 가게였대요.
부부가 산 건 스탁스라는 이름과 원단 같은 지식재산이었어요. 빚은 계약에서 빠졌습니다. 못 보낸 주문도 법적으론 새 주인 몫이 아니었죠.
중고차를 사면서 전 주인이 밀린 할부까지 내주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데 새 대표로 온 애나 쳉은 그걸 하기로 했어요.
"We weren't legally obliged to do anything when the business was purchased." 회사를 살 때 법적으로 떠안아야 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거죠.
그러고는 덧붙였어요. "We still felt like it was the right thing to do." 그래도 그게 맞는 일이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방식이 영리해요. 현금 환불이 아니라, 못 받은 주문 금액만큼 1대1 적립금이에요. 다 합치면 최대 170만 호주달러(약 15억 원)어치죠. 이미 환불을 받았거나 카드사 차지백으로 돈을 돌려받은 금액은 빼고요.
애프터페이나 페이팔처럼 중간 결제사를 거친 손님은 대상에서 빠졌어요. 그쪽에서 환불이 됐는지 스탁스가 확인할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 손님들이 결제사에 분쟁을 걸 때 쓸 주문 기록은 스탁스가 떼 주기로 했어요.
창업자들이 "은행에 알아보라"던 그 차지백을, 새 주인은 장부에서 한 건씩 대조하고 있습니다.
미발송 주문 적립금, 우리 가게로 옮겨 보면
쳉은 왜 이것부터 했는지 이렇게 말했어요. "It just didn't feel right for us to relaunch without addressing the elephant in the room first." 다들 아는 그 문제를 덮어 두고는 다시 문을 못 열겠더라는 거죠.
착한 결정인데, 계산도 맞습니다. 적립금은 스탁스 옷으로만 갚는 돈이거든요. 손님은 그걸 쓰려면 사이트에 다시 와야 하고요. 화났던 손님 9,500명이 재출시 전에 이미 자기 주문 내역을 확인해 둔 셈입니다.
물론 적립금만으론 손님이 남지 않아요. 새 팀은 직원 10명으로 몸집을 줄였고, 매장 없이 온라인으로만 엽니다. 물류는 외부 업체에 맡겨 주문 뒤 24~48시간 안에 보내는 게 목표고요.
"A customer ultimately judges us on whether the order arrives when we said it would." 손님은 결국 말한 날 옷이 오느냐로 판단한다는 얘기죠. 쳉이 노리는 건 같은 손님이 다섯 번째로 넣는 주문이래요.
이 계산은 작은 가게에도 그대로 옮겨 옵니다. 입고가 밀려 주문을 줄줄이 취소했던 손님, 배송이 2주 넘게 늦어 화났던 손님. 보통은 환불하고 잊어버리는 명단이죠.
다음 신상을 열기 전에 그 명단에 메시지 한 통을 보내 보는 거예요. 그때 미안했다는 말에 적립금이든 쿠폰이든 '다시 와야 쓸 수 있는' 보상을 얹어서요. 그리고 "이번엔 결제 다음 날 보내요"처럼 지킬 수 있는 약속 하나만 적는 거죠.
스탁스 사이트는 11월 6일 아침 9시에 다시 열립니다. 지켜볼 건 적립금으로 산 첫 옷이 약속한 48시간 안에 손님 집에 닿느냐예요. 그게 되면 1만 3천 건짜리 사과문이 단골 명단의 첫 장이 됩니다.
우리 가게에도 환불하고 잊어버린 손님 명단, 하나쯤 있잖아요. 이번 주에 그 명단부터 한번 열어 보세요!
— 취소 주문 내역을 거꾸로 훑어보다 커피가 식은 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