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띠 형태로는 안됩니다."
곰표국수 상표권자가 자기 상표를 빌려 쓰던 업체에 메신저로 보낸 수정 요구입니다. 특허법원은 이 정도로는 상표 사용권 계약을 제대로 관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곰표국수 상표의 등록 취소가 맞다고 판결했습니다.
일은 포장지 위에서 벌어졌습니다. 상표를 빌려 쓴 업체 7곳이 피자·브리또·토스트 포장에 '곰표' 글자와 곰 그림을 조금씩 바꿔 넣었거든요. 이 상품들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와 11번가에서도 팔렸습니다.
플래텀에 칼럼을 쓴 정태균 변리사는 이 판결을 "표장의 모습은 정하지 않은 사용 허락"이 어디까지 가는지 보여 준 사례로 읽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로고를 남에게 빌려줄 때 견본 한 장만 제대로 붙여도 협업은 마음 놓고 늘릴 수 있다는 얘기죠.
법원은 등록증 대신 포장지를 펴 봤습니다
곰표국수 상표는 1985년에 등록된 곰 그림과 '곰표국수' 글자 조합입니다. 그런데 업체들 포장에 찍힌 건 초록·노랑 띠에, 한 팔로 상품을 안고 다른 팔로 음식을 먹는 곰이었죠.
법원은 이 모습이 원래 등록된 그림보다 밀가루 '곰표'의 대한제분 디자인에 더 가깝다고 봤습니다. 손님이 두 회사 상품을 헷갈릴 수 있다는 판단이었는데요.
상표권자 쪽은 "등록 상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하지만 등록증은 서랍에 있고, 손님이 보는 건 냉동실 피자 상자입니다. 법원도 상자 쪽을 봤고요.
셀러 장부로 치면 이건 브랜드 메뉴와 이어집니다. 네이버 브랜드 패키지는 KIPRIS(특허정보검색서비스)에서 '등록' 상태인 상표만 심사하고, 쿠팡도 브랜드 프로그램 최종 승인 때 유효한 상표등록증을 요구하거든요.
OEM 공장에 로고를 맡긴 것도 사용 허락입니다
스마트스토어 셀러에게 제일 뜨끔한 대목은 여기일 겁니다. 법원은 위탁 생산(OEM) 계약도 상표 사용을 허락한 것으로 봤습니다.
공장에 로고 파일을 넘겼더니 "요즘 느낌으로 살짝 다듬었어요" 하는 시안이 돌아왔다고 해 보죠. 그대로 찍어 팔았다면, 다듬은 그 모습도 내 상표 관리 책임으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사용권자에게 나쁜 의도가 없었어도 취소될 수 있다고 법원은 못 박았습니다. 조문에 그런 요건이 없다는 이유였죠.
메신저 수정 요청은 감독으로 쳐주지 않았습니다
상표권자가 손 놓고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일부 계약엔 포장 디자인을 최종 확인한다는 조항이 있었고, 앞의 메신저처럼 고쳐 달라는 요구도 보냈거든요.
그런데도 법원은 '상당한 주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 기준은 주의나 경고로는 모자라고, 사용권자를 실질적으로 지배할 정도의 감독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대한제분이 문제를 제기한 뒤에도 사용을 바로 멈추게 한 자료가 없었다는 점도 걸렸습니다.
디자인 가이드를 건넨 쪽이 손님 기억을 가져갔습니다
여기서 반전이 하나 있는데요. 대한제분은 2021년부터 2년 동안 바로 이 상표들을 빌려 쓰던 쪽이었습니다.
2022년 세 회사가 함께 토스트·브리또·피자를 만들 때, 로고 디자인 가이드를 내민 건 대한제분이었습니다. 나중에 업체들이 쓴 포장 상당수는 그 가이드를 고친 모습이었고요. 그사이 협업으로 곰표의 2030 인지도는 25%에서 52%로 올랐고, 밀맥주는 출시 일주일에 30만 개가 팔렸습니다.
협업은 이만큼 남는 장사입니다. 다만 그 효과는 모습을 정해 둔 쪽에 쌓이더라고요. 정 변리사가 권하는 계약서 한 장은 이렇습니다.
- 표장 견본 첨부: 색·글씨체·그림·상품명 배치까지 그대로 쓰게 합니다. 다른 모습이 필요하면 먼저 출원해 등록받고 나서 허락하면 되죠.
- 승인 기준 두 개: 등록상표와 같은 모습인지, 잘 알려진 남의 표지와 헷갈리지 않는지. 점검 기록을 남기고, 문제 제기를 받으면 바로 사용을 멈추게 할 권한을 넣습니다.
- 사용 자료 받아 두기: 나중에 "안 썼다"는 취소심판이 들어오면 사용을 증명할 책임이 상표권자에게 있거든요.
곰이 어느 팔로 무엇을 드는지까지 계약서에 적으라니 유난 같죠. 이번에 갈린 게 딱 그 팔이었습니다.
다음 협업 시안 파일이 오면, 단가표보다 먼저 KIPRIS에 있는 내 등록 그림을 옆 창에 띄워 보세요. 둘이 같아 보이면 그 협업은 늘려도 됩니다!
— 김윤아 · 등록증 사본 옆에 협업 상품 포장 사진을 같이 철해 두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