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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만에 20억. 아마존 세일하는 날의 '안티-프라임데이'

한이룸

이커머스

2026. 7. 24.

지난 6월 말, 아마존 프라임데이가 나흘간 열렸어요. 그 기간 미국 온라인 쇼핑 전체에서 264억 달러, 우리 돈 약 36조 원이 움직였죠. 내 스마트스토어나 자사몰로 치면 쿠팡 와우세일에 광군제를 얹은 날이에요. 이런 날 작은 가게는 보통 숨을 죽여요. 주문 알림이 뚝 끊기죠. 손님들 지갑은 어차피 큰 데서 열리니까요.

근데 이거 보세요. 미국의 온라인 서점 하나는 정확히 그 날짜에 자기 세일을 열었어요. 이름부터 시비조예요. '안티-프라임데이(Anti-Prime Day)'. 그리고 나흘 만에 148만 달러, 약 20억 원어치를 팔았어요.

아마존이 제일 시끄러운 날, 이 서점은 확성기를 들어요

주인공은 북샵(Bookshop.org)이에요. 2020년 1월에 출판인 출신 앤디 헌터(Andy Hunter)가 만든 온라인 서점이고요. 구조가 특이해요. 책을 팔아 남는 이익을 자기가 챙기는 게 아니라, 미국 전역의 독립서점들에 나눠줘요. 손님이 좋아하는 동네 서점을 골라 결제하면 그 서점에 수익 몫이 가고, 그냥 사도 적립금이 쌓여 제휴 서점 전체에 배분돼요. 지금 손잡은 서점이 약 2,900곳이에요.

올해 안티-프라임데이엔 전 주문 무료배송에 토트백까지 얹었어요. 홍보 영상도 웃겨요. 마케터가 문구를 내밀 때마다 변호사가 자르는 콩트였거든요. 최종 승인된 멘트는 딱 이거예요. "북샵은 안티-프라임데이를 기념합니다. 전 주문 무료배송. 모든 구매는 동네 서점을 돕습니다."

성적표를 볼까요. 주문 3만 9천 건으로 작년보다 11% 늘었고, 매출 약 20억 원에, 동네 서점들 몫으로 21만 달러(약 3억 원)가 돌아갔어요.

포인트는 이거예요. 북샵은 아마존을 피하지 않았어요. 아마존이 광고비를 태워 모아놓은 전 국민의 관심을, 그대로 받아쓴 거예요. 프라임데이가 뉴스에 도배될수록 '그 방식이 불편한' 사람도 같이 늘어나거든요. 북샵은 그 사람들이 갈 곳을 정확히 그날, 그 시간에 열어줬어요.

파티는 2년 만에 끝났었거든요

사실 이 회사, 잘나가다 한 번 고꾸라졌어요. 2020년 1월에 문 열고 두 달 뒤 팬데믹이 터졌죠. 동네 서점들이 셔터를 내리는 동안 주문이 북샵으로 쏟아졌어요. '서점을 살리자'는 뉴스가 공짜 광고가 됐고요.

근데 여기까진 실력이 아니라 운이에요. 세상이 다시 열리자 2022년 매출이 40% 빠졌어요. 감동은 유효기간이 짧더라고요. 손님들은 착한 마음으로 한 번은 사줘요. 두 번째부터는 편한 데서 사요.


착한 것만으론 장바구니를 못 이겨요

헌터가 그때 한 일이 의외예요. 더 절절한 사연을 쓴 게 아니라, 사이트를 통째로 뜯어고쳤어요. 굼뜨던 검색엔진을 갈아치우고, 결제를 한 페이지로 줄이고, 문구마다 A/B 테스트를 돌렸어요. 2025년엔 아마존 킨들의 안방인 전자책까지 냈는데, 이것만으로 첫해 100만 달러를 더 벌었어요.

말 되죠. '착한 소비'는 클릭할 이유는 돼요. 근데 결제가 불편하면 손님은 조용히 아마존으로 돌아가요. 미션이 데려온 손님을, 결국 붙잡은 건 편한 사이트였어요.

숫자가 증명해요. 2024년에 팬데믹 시절 매출을 되찾았고, 2025년엔 약 6,800만 달러(약 950억 원)로 55% 성장했어요. 올해는 8,000만 달러를 바라보고 있고요.


근데 여기서 반전이에요, 나눠줄수록 컸어요

이익을 서점에 나눠주는 구조, 비용처럼 보이잖아요. 근데 이게 이 회사의 성장 엔진이었어요. 다음 달이면 누적 기부액이 5,000만 달러, 약 700억 원을 넘어요. 그리고 이 숫자가 쌓일수록 언론이 알아서 써주고, 서점들이 알아서 홍보해주고, 손님들이 알아서 인증해요. 3,000곳 가까운 서점이 전부 북샵의 영업사원인 셈이에요.

헌터는 이렇게 말해요. "서점은 미국 책 판매의 10~15%밖에 안 돼요. 근데 동네에 미치는 영향은 그보다 훨씬 크죠." 아마존 책 손님의 2%만 데려와도 서점들한텐 엄청난 돈이라는 계산이고요. 실제로 미국 독립서점은 다시 늘고 있어요. 2025년 한 해에만 605곳이 새로 문을 열었어요.

그러니까 북샵이 파는 건 책이 아니에요. '내 만 원이 누구를 살리는지'라는 확신이에요. 그건 아마존이 물류센터를 백 개 지어도 못 파는 물건이거든요.


자, 한국으로 가져오면요

쿠팡 와우세일이나 네이버 대목 행사 날, 자사몰이 조용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근데 북샵식으로 뒤집으면, 그날은 경쟁자가 내 잠재 손님을 한자리에 모아주는 날이에요. 최저가와 로켓배송이 불편하거나 지겨운 손님이, 그 인파 속에 반드시 섞여 있거든요.

그 손님에게 갈 곳을 만들어주면 돼요.

"우리는 로켓만큼 빠르지 않아요. 대신 이 주문 수익의 일부는 ___로 갑니다"든, "오늘 산 만큼 단골 적립을 두 배로 돌려드려요"든요. 거창할 필요 없어요. 대목날에 맞춘 메일 한 통, 공지 한 줄이면 시작이에요.

단, 순서는 조심해요. 북샵도 명분을 외치기 전에 검색이랑 결제부터 고쳤잖아요. 착한 이야기는 손님을 데려오고, 손님을 남기는 건 막힘없는 결제예요. 이 순서가 바뀌면 감동 마케팅은 일회용이 돼요.


공짜 광고주를 둔 기분

아마존이 내년 프라임데이를 더 크게 열수록, 안티-프라임데이도 같이 커져요. 세상에서 제일 큰 회사가 남의 세일 광고비를 대신 태워주는 셈이죠. 골리앗 옆자리, 알고 보면 명당이더라고요. 😅


지구 반대편 가게들 소식 물어오는, 박민지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