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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화장품 사용법만 팔아서 1,500억원을 벌었어요

한이룸

이커머스

2026. 8. 13.

밤에 알림이 울려요. 해외에서 들어온 문의 하나예요.

"이거 순서가 어떻게 되나요? 토너 먼저예요, 앰플 먼저예요?"

번역기 돌려 답장을 쓰면서 생각하죠. 상세페이지에 다 써뒀는데, 싶고요.


유럽에서 이 질문을 매일 받던 부부가 있었어요.
차이가 있다면, 그 부부는 이 질문 하나로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거예요.

지금 연 매출 1억 달러(약 1,500억원)를 넘겼습니다.

한국 공장에서 만든 한국 화장품으로요.


친구들이 캐리어를 부탁하던 시절

산더 준영 판 블라델은 네덜란드에서 자랐어요. 아버지는 네덜란드 사람, 어머니는 한국 사람이에요.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해마다 한국에 들어왔대요.

그러면 유럽 친구들이 꼭 부탁을 했어요. 한국 화장품 좀 사다 달라고요. "한국에 갈 때마다 친구들이 화장품을 사다 달라고 했어요." 그가 인터뷰마다 반복하는 말이에요.

돌아가는 캐리어엔 옷보다 병이 많았죠. 그런데 재밌는 게, 친구들은 물건을 받고 나서 또 물었대요. 이거 언제 바르는 거냐고.

제품은 이미 훌륭한데 쓰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 아내 베로니카 슈트로트만과 함께 회사를 세운 게 그 지점이었어요. 2019년이었고요.


출시를 반년이나 미룬 이유

첫 출시일은 2019년 12월로 잡아뒀어요.

그런데 실제로 문을 연 건 이듬해 4월이에요.

한국 랩과 제조사부터 막혔거든요.
이름도 없는 유럽 신생팀 둘한테 선뜻 문을 열어주는 공장이 없었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따라나섰습니다. 비즈니스 어드바이저 자격으로 미팅에 앉아, 이 작은 팀과 일해도 손해 볼 일 없다고 설득했대요.

아들 회사 미팅에 어머니가 협상 파트너로 들어간 그림이에요. 그런 자리를 셀 수도 없이 돌았고요.

근데 여기서 반전이에요. 어렵게 랩을 뚫고 나니 이번엔 샘플이 문제였어요.

비타민C 제품이라고 내민 것을 열어보니 함량이 0.01%. 라벨에 성분 이름 한 줄 올리려고 넣은 극미량이었던 거죠.

"거기 비타민C가 0.01% 들어 있더라고요." 창업자가 지금도 그때 얘기를 이렇게 해요.


두 사람은 그런 샘플을 다 돌려보냈어요. 대표 제품이 될 클렌징 밤은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고요.

제품 하나를 내려면 다섯 가지를 다 통과해야 한다고 정해놨거든요.
한국 기술, 깨끗한 성분, 지속가능성, 실제 효과, 그리고 쓰는 재미.

기준을 다섯 개나 걸어두면 개발이 느려지는 게 당연하죠.
그러다 출시가 반년 가까이 밀렸습니다. 매출은 0인 채로 반년이요. 창업하고 제일 조용한 시간이었을 거예요.


이들이 판 건 제품이 아니라 순서였어요

문을 연 건 2020년 4월, 유럽 전체가 락다운이던 때예요.
화장품 브랜드 열기 좋은 때라고는 아무도 안 했겠죠.

이들이 홈페이지 맨 앞에 건 건 제품이 아니라 여섯 단계짜리 순서였어요.

1 오일 클렌즈, 2 워터 클렌즈, 3 프렙, 4 트리트, 5 너리시, 6 프로텍트.

그리고 각 단계에 제품을 딱 하나씩만 붙여놨어요.

이름도 다시 지었어요. 클렌징 밤은 더 캄 밤(The Calm Balm), 폼 클렌저는 더 버블 더블(The Bubble Double), 미스트는 더 미스트 해브(The Mist Have), 자외선 차단제는 더 에스피에프 베프(The SPF BFF). 유럽 사람이 발음할 수 있고 한 번 들으면 기억에 남는 말장난이에요. 성분표를 외우게 하는 대신에요.

여기에 피부 문답을 붙였어요. 몇 개 고르면 자기한테 맞는 여섯 단계가 화면에 뜨는 방식이죠. 한국 제품의 성능은 그대로 두고, 처음 사는 사람이 걸려 넘어지던 턱만 깎아낸 거예요.

내 스마트스토어로 치면 이런 거예요. 상세페이지 맨 위를 성분표가 아니라 "1번 씻고, 2번 채우고, 3번 덮고"로 바꾸고, 제품마다 번호를 매겨 파는 것. 같은 물건인데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난이도가 확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지금은요

2024년 매출이 6,500만 유로, 약 7,100만 달러예요. 전년보다 120% 늘었고, 그걸 적자 없이 했어요.

2025년엔 1억 달러(1,500억원)를 넘겼습니다. 고객은 200만 명, 직원은 130명이 넘고요.

판매 지역은 천천히 넓혔어요.
독일에서 시작해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다음이 프랑스와 영국이었죠. 한 나라씩 붙이면서 자사몰만 붙들고 있었던 셈이에요.

한동안 자사몰로만 팔다가 유럽 세포라 100여 개 매장에 들어갔고, 8월 11일부터는 미국 세포라 온라인 판매도 시작해요. 가격대는 23~39달러예요. 그래도 오프라인 리테일 비중은 아직 전체의 10% 정도예요. 본진은 여전히 자사몰이라는 뜻이죠.

용기도 계속 손봤어요. 지금은 전체 제품의 60% 정도가 속만 갈아 끼우는 리필로 나오고, 회사는 B코퍼레이션 인증도 받았어요. 포장을 바꾸는 게 돈이 되냐고요? 다시 사러 오는 이유를 하나 더 만든 거예요.

미국 쪽 분위기도 나쁘지 않아요. 올해 초 기준 미국 K뷰티 판매는 28억 달러, 1년 새 48%나 늘었거든요.


제일 인상 적인건 따로 있어요.

이들이 지난봄 서울 성수동에 아시아 첫 매장을 냈다는 거예요.
"제품이 전부 여기서 만들어지니까, 진짜 고향에 온 기분이에요." 창업자가 개점 때 한 말인데요.

한국 제품을 생산에 해외에 팔다가 한국에 다시 매장을 낸 브랜드. 참 묘하지 않나요.

한국에서 만든 화장품이 유럽을 한 바퀴 돌아 성수동으로 돌아온 셈이네요.


예쁘다에서 우리가 훔칠 건 단 한가지

이 부부가 대단한 기술을 개발한 게 아니에요.
성분도, 공장도, 처방도 전부 한국 것이에요. 바꾼 건 하나예요.

사는 사람이 "그래서 이걸 언제 바르지?"에서 멈추지 않게 만든 것.

그게 왜 그렇게 컸냐면, 해외 고객이 결제를 포기하는 지점이 대개 거기라서예요.

제품이 의심스러워서가 아니라, 내 화장대 위 어디에 끼워 넣어야 할지 몰라서 창을 닫아요.

순서를 먼저 깔아주면 고객은 제품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라 자기 루틴을 고르게 되고요.

물론 이건 물건이 실제로 좋아야 성립해요.

0.01%짜리 샘플을 돌려보낸 반년이 그래서 중요했던 거고요.

순서를 팔았는데 효과가 없으면, 순서대로 실망만 하니까요.

해외 문은 지금 계속 열리는 중이에요.
남미 최대 이커머스도, 대만 로켓배송도 한국 중소 브랜드를 부르고 있잖아요.
문이 열린 다음에 남는 질문은 결국 똑같아요. "이거 어떻게 써요?"

그 답을 제품보다 먼저 보여준 브랜드가 고객 200만 명을 데려갔어요.
오늘은 상세페이지 맨 위에 번호 하나만 붙여보면 어떨까요. 캐리어에 화장품 채워 나르던 사람도 딱 거기서 시작했으니까요!

박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