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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5% 채널로 나머지 95%를 끌어올렸어요

한이룸

이커머스

2026. 8. 27.

새벽 두 시, 비행기 좌석. 목이 자꾸 옆으로 꺾여요. 어깨에 걸쳤던 U자 목베개는 진작에 바닥에 떨어졌고요.

2013년 10월, 공항에서 딱 이 장면에 질려버린 20대 후반 두 명이 있었어요. 글래스고 스트래스클라이드대 기계공학과 동기 마이클 코리건과 데이비드 켈록이에요.

둘이 만든 게 '트를(Trtl)'이라는 목베개인데, 생김새가 좀 이상해요. 그냥 목도리처럼 생겼거든요. 안쪽에 플라스틱 지지대가 숨어 있고요.

 

사진 한 장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물건

이게 이 브랜드의 첫 번째 저주였어요. 목도리 사진을 아무리 예쁘게 찍어놔도, 이게 왜 10만 원인지 아무도 몰라요.

목에 감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봐야 "아" 소리가 나오는 물건이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광고로 파는 물건이 아니라, 보여줘야 파는 물건이었어요.

시제품만 80개 넘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첫 판매는 온라인이 아니라 에든버러 크리스마스 마켓이었어요. 손으로 만든 걸 들고 나가서요.

6일 동안 160개를 팔았어요. 준비하는 데 쓴 돈은 그걸로 회수했고요. 코리건이 그때를 이렇게 회고해요. "우리는 열흘 동안 거의 못 잤어요. 브랜드랑 정반대죠."

수면 제품 만든다는 팀이 열흘을 못 잔 거예요. 그런데 이 좌판에서 답은 이미 나와 있었어요. 사람 앞에서 목에 감아 보여주면 팔린다.

문제는 그 시연을 어떻게 대량으로 하느냐였죠.

 

투자는 못 받고 방송만 타고 나왔어요

2015년, 두 사람은 영국 창업 오디션 프로그램 '드래건스 덴'에 나갔어요. 심사위원 앞에서 투자를 받아내는 그 포맷이요. 6만 5천 파운드에 지분 10%를 달라고 했어요.

심사위원 한 명이 손을 들긴 했어요. 그런데 조건이 달랐죠. 지분 30%짜리 전환사채로 주겠다는 거였어요. 하필 그 프로그램 규칙이 '현금 대 지분'만 인정이었어요. 계약은 무산됐고, 둘은 빈손으로 스튜디오를 나왔어요.

투자금 0원. 남은 건 방송에서 목베개를 목에 감아 보여준 몇 분이 전부였어요. 방송 다음 날 코리건이 남긴 말이 이거예요. "어제 방송 나가고 반응이 엄청나요. 전화기가 불이 났어요."

창업 첫 해 3,500개였던 판매량은 그 뒤 4만 1,500개까지 올라갔어요. 투자는 못 받았는데, 시연 한 번이 전국에 공짜로 나간 셈이죠.

비슷한 일이 한 번 더 있었어요. 미국 매체 허핑턴포스트가 이 목베개를 다뤘을 때요. 코리건 표현으로는 이랬어요. "하루에 몇 개씩 팔던 게, 열 시간 만에 천 개 넘게 팔렸어요."

 

그래서 12년 동안 시연을 사다 썼어요

패턴이 보이시죠. 이 팀의 매출은 광고를 늘릴 때가 아니라, 누군가 제품 쓰는 모습을 보여줄 때 튀었어요. 그래서 트를은 계속 시연을 사러 다녔어요.

2018년엔 높이 조절이 되는 신형을 킥스타터에 올렸어요. 목표 금액이 2만 파운드였는데 21만 1,460파운드가 모였어요. 목표의 10배요. 크라우드펀딩이라는 게 결국 3분짜리 시연 영상을 파는 자리거든요.

그해 연매출이 790만 파운드까지 갔고, 그중 80%가 수출이었어요. 판매국은 60개국을 넘겼고요. 그런데 시연을 사는 데는 매번 돈과 운이 들었어요. 방송도 한 번, 기사도 한 번이니까요.

 

5%밖에 안 팔리는 채널을 안 접었어요

2025년 봄, 코리건은 틱톡숍에 가게를 열었어요. 그리고 반년 가까이 아무 일도 없었어요. 반응이 오기 시작한 건 그해 10~11월이었고요.

보통 이쯤 되면 접죠. 매출 비중을 보면 더 그래요. 지금 트를의 매출은 아마존 50%, 자사몰 45%, 틱톡숍 5%예요. 5%요.

근데 코리건은 이 채널을 매출 채널로 안 봤어요. 12년 동안 돈 주고 사 오던 그 '시연'을, 남들이 대신 찍어주는 자리로 봤어요.

방식은 단순해요. 크리에이터한테 샘플을 뿌려요. 받은 사람 다섯 중 하나 정도가 영상을 만들어요. 나머지 넷은 안 만들고요.

그래서 애초에 다섯 배로 뿌려요. 지금 디스코드 방에 크리에이터가 1,000명쯤 모여 있어요. 목도리처럼 생긴 이상한 물건이 누군가의 목에 감기는 장면이, 매일 수십 개씩 새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둘이 하던 일을 1,000명이 나눠서 하는 셈이죠. 올해 트를은 4,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50억 원어치를 팔 페이스예요. 미국이 매출의 60%고요.

매출 5%짜리 채널이 나머지 95%를 밀어올렸다는 게 코리건 본인의 설명이에요. 트를만의 얘기도 아니에요. 미국에서 반려견용 차량 시트커버를 파는 러프라이너스는 틱톡 영상을 늘린 뒤 아마존에서 브랜드명 검색이 26% 늘었어요.

팔린 곳은 아마존인데, 팔리게 만든 건 틱톡이었던 거죠.

 

그리스 선크림은 매대 높이까지 바꿨어요

이거 보세요. 여기서 한 발 더 나간 사례가 있어요. 그리스 선케어 브랜드 카로텐이요. 1년 반 전만 해도 미국에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게다가 가격이 30달러예요. 미국 소비자가 7~15달러에 사던 카테고리에서요.

이 브랜드는 크리에이터 1만 3,000명에게 제품을 맡겼어요. 영상이 1만 2,000개 넘게 나왔고 조회수 1억 5,200만이 쌓였다고, 캠페인을 맡은 마케팅사가 공개했어요. 결과는 아마존 태닝 카테고리 1위, 점유율 24%, 매출 224% 성장이에요.

재밌는 건 그다음이에요. 미국 대형마트 타깃이 이 브랜드 진열 위치를 맨 아래 칸에서 눈높이 칸으로 올려줬어요. 올해 노출량은 두 배로 잡혔고요.

브랜드가 커져서 매대가 올라간 게 아니에요. 팔리는 속도가 숫자로 찍혀서 올라간 거예요. 요즘 해외 유통이 사가는 건 딱 이거예요. 브랜드가 아니라, 이미 팔렸다는 증거요.

한국 셀러 앞에도 같은 문이 열려 있어요. 중국 징둥닷컴이 한국에 구매 법인을 세우고 대리상 없이 직접 사가기 시작했는데, 첫 상담회에 200개 기업이 왔고 9개사가 150만 달러 계약을 했어요. 티몰글로벌은 신규 입점 브랜드 연회비를 면제했고요. 심사대에 올라가는 게 회사 규모가 아니라 판매 기록이라는 뜻이에요.

 

이 팀에서 훔칠 건 딱 하나예요

트를이 잘된 이유를 "틱톡 했더니 잘됐대"로 정리하면 남는 게 없어요. 진짜 원인은 다른 데 있어요.

이 팀은 12년 내내 같은 걸 알고 있었어요. 자기 물건은 봐야 팔린다는 것. 그래서 시연이 일어나는 자리마다 돈이든 시간이든 걸었고, 시연 단가가 제일 싸진 자리로 옮겨갔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질문은 "숏폼 해야 하나"가 아니에요. "내 물건은 사진으로 설명이 되나"예요.

러닝 양말처럼 신어봐야 아는 물건, 주방 집게처럼 써봐야 아는 물건이라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어요. 그리고 그런 물건이라면, 시연 채널에서 나오는 매출이 5%든 0%든 괜찮아요. 그건 매출표가 아니라 광고비 항목이니까요.

대신 성적표는 다른 데서 봐야죠. 네이버에서 내 브랜드명 검색량이 늘었는지, 스마트스토어 유입 중에 브랜드명으로 들어오는 비중이 늘었는지요.

숫자 하나만 더 챙겨두면 좋겠어요. 코리건은 샘플 받은 사람 다섯 중 하나만 영상을 만든다는 걸 전제로 뿌려요. 영상 100개가 필요하면 500개를 보내야 한다는 계산이죠. 이걸 모르고 20개 보낸 뒤 실망하면, 채널이 나쁜 게 아니라 표본이 작았던 거예요.

트를이 처음 판 건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손으로 만든 160개였어요. 지금은 크리에이터 1,000명이 그 좌판을 대신 서 있고요. 장사의 본질은 그대로고, 좌판 크기만 달라진 거예요.

크리스마스 마켓까지 나갈 필요는 없어요. 대신 이번 주에 샘플 상자 몇 개, 부쳐보면 어떨까요!

박민지 기자